소개글

총 15 건

소개
  1. 천태금강불교대학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4-19

    천태종단에서는 일반 신도들의 교육을 위해서 각 지역에 불교교양대학으로서 천태금강불교대학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천태금강불교대학은 서울 관문사와 부산 삼광사를 비롯한 전국 곳곳에 설립되어 있으며 매년 수백 명의 신도들을 체계적으로 교육시키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배출한 졸업생은 전국적으로 8천여 명 이상이며, 학생은 불교과와 법사과로 모집하고 있습니다. 천태금강불교대학의 강사진은 불교학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어서 누구나 어려운 교리를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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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불교천태종 역사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4-16

    천태종은 혼란한 불교를 통합하기 위해 고려시대 이 땅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대한불교천태종은 애국불교, 생활불교, 대중불교의 삼대지표를 통해 중생구제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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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법연화의 천태사상이 이 땅에 처음 뿌리내린 것은 고려시대였습니다.
    대각국사 의천대사는 당시 혼란했던 고려불교를 하나로 통합하고 바로잡기 위해 6세기경 천태 지의가 개창한 천태종을 한국에 들여왔습니다. 천태사상은 학문과 수행을 두루 겸비한 새로운 불교정신이었으며 불교사상을 모두 아우르고 통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천태종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용수보살의 맥을 타고 천태산의 지자대사와 대각국사 의천대사를 통해 불교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는데, 이를 근현대사 이후 소백산에서 중창하신 분이 바로 상월원각대조사입니다. 천태교학은 1세기 경의 용수보살의 공사상과 중관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 6세기 경 중국의 천태대사가 장통별원의 화법사교와 화의사교를 바탕으로 오시교판을 체계적으로 확립하였습니다.

    지자대사는 교종과 선종의 극심한 대립을 하나로 융합하기 위하여 천태종을 개창하였습니다. 교학적인 부분만 강조하는 교종과 수행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선종은 두 개와 같이 하나로 불도의 길을 가게 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주장하기 위해서 천태대사는 교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모든 부처님은 모든 중생들을 성불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출현하셨으며 성문, 연각, 보살의 수행자들이 모두 일불승에 들어 부처님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수행하는 것이 불교도의 목표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수행방법이 있지만, 천태종에서는 염불수행을 주요 수행방법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남녀노소에 관계없이 출가인, 재가인 모두가 관음정진을 함으로써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관음정진은 타력신앙으로 알려져 있지만, 목표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정진함으로써 스스로의 자율적인 노력이 필요한 면도 있습니다. 해방 후에 대한불교 천태종을 중창하신 상월원각대조사는 구인사를 창건하고,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애쓰셨습니다. 2대 남대충대종사와 3대 김도용대종사가 이 뜻을 받들어 현재 대한불교 천태종의 모습이 갖추어졌습니다.

    상월원각대조사는 삼대지표를 통해 구체적인 중생구제를 실천하셨습니다. 삼대지표는 애국불교, 생활불교, 대중불교입니다. 애국불교란 단합된 힘으로 자기가 사는 이 시대와 지역에 당면한 여러 가지 과제를 지혜롭게 해결하고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국가, 사회, 가정, 나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세계인의 한 사람으로서 세계평화를 위해 힘쓰는 것을 말합니다. 생활불교란 일상과 수행이 결코 둘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복을 바라는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스스로 복을 짓는 적극적인 태도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에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염불 수행하여 부지런히 복을 지어야 합니다. 대중불교란 재가자 또한 출가자와 마찬가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여건을 갖추어 개인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동시에 중생구제의 서원을 실천하는 것을 뜻합니다.

  3. 대한불교천태종 개창조 의천대각국사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4-16

    대각국사 의천대사는 1055년 고려 문종과 인예왕후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름은 후(煦)이고, 자는 의천(義天)이며, 대각국사는 그의 시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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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각국사 의천대사는 1055년 고려 문종과 인예왕후 이씨 사이에서 넷째 왕자로 태어났습니다. 이름은 후(煦)이고, 자는 의천(義天)이며, 대각국사는 그의 시호입니다.

    11세 되던 해에 아버지인 문종이 여러 형제를 불러서 누가 출가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때 어린 후가 원하여 1065년 경덕국사를 은사로 하여 왕궁에서 출가하였습니다. 영통사에서 공부하다가 같은 해 10월에 불일사에서 구족계를 받았습니다. 이후 학문에 정진하여 스승이었던 경덕국사가 세상을 떠나자 강의를 대신 맡게 되었는데, 이 강의가 매우 훌륭하여 명성이 온 나라에 드날리게 되었습니다.

    의천대사는 송나라로 유학을 가고 싶었지만, 의천대사의 안위를 염려한 왕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1085년, 마침내 의천대사는 왕과 어머님께 편지를 남기고 유학을 단행하였습니다. 이후 송나라에서 의천대사는 다양한 불교철학을 배우고 이에 대해서 토론하며 많은 종파의 많은 학승들과 교류하였습니다.

    천태산에서 본국에 돌아가면 천태교학을 널리 선양하겠다는 서원을 한 의천대사는 어머니인 모후의 뜻을 받들어 1086년 귀국하였습니다. 의천대사는 본국에 도착하자마자 왕과 태후에게 허락 없이 외국에 간 죄를 빌었으나, 왕실에서는 대사를 성대히 환영하였습니다.

    대각국사는 귀국할 때 불교서적을 3000여 권 가지고 와서 송나라의 모든 불교학을 섭렵하고, 천태학을 조직하였습니다. 한편 제자들을 양성하고 송나라에 있을 때 사귄 벗들과 교류하여 더욱 심도있는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흥왕사의 주지로 있을 때에는 경율론 삼장의 정본 외에 그 주석서인 장소만을 수집하여 목록을 작성한 최초의 신편제종교장총록 3권을 편집하였습니다. 이후 흥왕사 교장도감에서는 이 목록에 의거하여 ‘고려속장’을 간행하였습니다.

    1097년 국청사가 완성되자 대각국사는 첫 번째 주지스님이 되어 천태교학을 강의하였는데, 이때 모여드는 사람들이 무려 천여 명이 넘었다. 이때 한국불교 역사상 처음으로 천태종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각국사는 그해 8월에 병이 나서 1101년 47세에 입적하십니다.

    대각국사는 한국불교의 진흥과 발전에 공헌한 바가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천태종의 개립은 교단을 넘어 국가적으로 중대한 의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신라시대에는 교종과 선종이 대립함으로써 종파가 서로 대립과 투쟁하여 불교계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대각국사는 고려불교의 혼란함을 바로잡아 올바른 사상을 확립하고자 하였으며, 바른 전통을 세우고자 천태종을 개창하였습니다. 선학과 교학을 융화시켜 분쟁을 화합하고, 모든 철학과 신앙, 교학을 귀일하여 불교의 통일을 기하였던 것입니다.

    의천대사는 300여권은 많은 저술을 남겼으나 대부분이 소실되어 현재에는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 3권, 대각국사문집, 대각국사외집의 낙장본, 원종문류(圓宗文類), 석원사림(釋苑詞林) 의 잔편, 간정성유식론단과(刊定成唯識論單科)의 서문만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4. 대한불교천태종 종조 천태지자대사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4-16

    천태종의 제 4대 조사인 지의대사는 중국 천태종의 실질적인 개조(開祖)로서 천태교학을 완성하였습니다.
    '지자대사'는 교학적 토대를 통해 불교의 이상적인 인간상을 마련하고 일생을 통해 자리이타행을 실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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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태종의 제 4대 조사인 지의대사는 중국 천태종의 실질적인 개조(開祖)로서 천태대사 또는 지자대사라고도 합니다. 형주(荊州)사람으로 속성은 진(陳), 자(字)는 덕안(德安)으로 천태교학을 완성하였습니다.

    538년에 태어나 부모님의 여의고 18세에 출가하여 지의라는 법명을 받았습니다. 이후 혜광율사에게 구족계를 받은 뒤에 560년 광주(光州) 대소산(大蘇山)의 혜사대사 문하에서 수행하여 법화삼매를 얻고 스승의 인가를 받았습니다.

    31세에 스승과 헤어져 금릉 와관사에 머물며 법화경, 대지도론, 차제선문 등을 강설하였습니다. 38세에 천태산에 들어가 화정에서 두타행의 고된 수련을 하고, 수선사를 세웠습니다. 본래 천태산은 도교의 성지였으나, 지자대사가 천태산에 머무른 이후 천태산은 천태종의 본산이 되었으며, 지자대사는 천태대사로 불릴 만큼 천태산과 관련이 깊습니다.

    578년 법화문구를 강의하고, 591년 진왕 광의 부름을 받고 왕에게 보살계를 베풀어 지자대사의 법호를 받았습니다. 이후 남악으로 가서 혜사대사의 은혜에 보답하고, 다시 고향 형주로 가서 옥천사를 창건했습니다. 593년에 옥천사에서 법화현의를 강의하고 이듬해에 마하지관을 강의했습니다. 이후 양주(楊州)로 가서 정명소를 진왕 광에게 올리고, 595년 천태산으로 돌아가 황폐해진 절을 수리하고 제법십조를 지었습니다. 이후 병을 얻어 석성사에서 입적하셨는데, 입적 후 진왕이 대사의 뜻을 받들어 천태산에 국청사가 세워지고, 천태종의 근본 도량이 되었습니다.

    지자대사는 오시교판 등 천태교학을 확립했을 뿐 아니라, 8년동안 ‘와관사’에서 중생을 위한 교화활동을 펼치면서 백성들의 의지처가 되는 등 스승 혜사대사와 마찬가지로 중생들을 위한 불교교화행을 실천하였습니다. 또한 법화문구, 법화현의, 마하지관을 강의하였는데 이를 법화삼대부 또는 천태삼대부라고 하고, 장안관정이 이를 기록한 이후에는 법화사상의 중심되는 저술이 되었습니다.

    지자대사는 제 4대 조사이지만 천태종은 실질적으로 천태지자대사에 의하여 세워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남북불교는 남조의 이론적 불교와 북조의 실천적 불교로 서로 대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지자대사는 남조불교와 북조불교를 융합하여 천태종을 개창했는데, 이는 한쪽에만 치우친 문화적인 차이를 통합한 것입니다.

    지자대사가 천태학을 교학적 체계로 완성함으로써 중국의 다른 종파들도 많은 영향을 받았음은 물론, 인도불교를 중국의 주체적인 불교로 확립시키는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교학적 토대를 통해 불교의 이상적인 인간상을 마련하고 일생을 통해 자리이타행을 실천한 지자대사는 중국의 작은 석가모니라고 불립니다.

  5. 대한불교천태종 소의 경전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4-16

    [법화경]은 천태종의 철학과 사상을 담고 있는 소의경전입니다.
    법화경은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의 삼승(三乘)이 일불승(一佛乘)의 하나로 돌아간다는 회삼귀일(會三歸一)의 논리에 입각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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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화경은 천태종의 철학과 사상을 담고 있는 소의경전입니다. 부처님이 설하신 많은 가르침 가운데 그 깨달으신 내용을 그대로 드러낸 법화경은 천태종의 사상과 철학뿐만 아니라 신앙과 수행의 근본이 되었습니다. 법화경은 제목에서 경의 내용과 사상을 드러내고 있는데, 법화경이라는 뜻은 ‘바른 흰 연꽃의 가르침’으로 직역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전의 제목을 통해 법화경이 나타내는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법화경은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의 삼승(三乘)이 일불승(一佛乘)의 하나로 돌아간다는 회삼귀일(會三歸一)의 논리에 입각해 있습니다. 일불승의 가르침은 가장 뛰어난 교법으로, 이를 아름답고 빼어난 흰 연꽃에 비유함으로써 그 위대함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싹을 틔우지만 이는 진흙에 물들지 않는 점 때문에, 오탁악세의 더러운 세상에서도 이와 같이 깨달음의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에 비유되는 것입니다. 법화경은 모두 28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반의 14품은 적문(迹門)이라 하고, 후반의 14품은 본문(本門)이라고 합니다. 적문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그 흔적을 드리운 것을 말하며, 본문의 내용은 부처님이 실은 아주 오래 전에 성불하셨으며 그 수명이 무량하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즉,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항상 머무르며 멸하지 않는 존재인 법신불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응신불로 그 모습을 드러내어 법을 설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적문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본문은 이미 오래 전에 성불하여 영원히 머무르는 근본 진리의 부처님을 나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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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법연화경 제6권 변상도


    천태지자대사는 부처님의 가르침의 기간을 총 다섯 부분으로 나누고 각각의 시기에 설했던 경전들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이를 오시교판(五時敎判)이라고 합니다. 이 가운데 시기상 가장 마지막에 설했던 법화열반시(法華涅槃時)에 부처님의 온전한 깨달음을 모두 설했다고 하여 법화경의 내용을 원교(圓敎)라고 이릅니다. 원교는 원만하고 완전한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법화경은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그 내용이 다른 경전에 비해 간결하고 비유가 많은 것을 물론이고, 법화경을 믿고, 지니고, 쓰고, 독송하는 공덕이 무량하기 때문입니다. 크고 많은 죄가 있더라도 법화경을 지니고 독송하면 그 사람의 공덕은 불가사의하다고 합니다. 또한 제25품인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는 중생들이 겪는 온갖 어려움을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설하고 있어, 천태종의 오랜 전통을 이어가는 수행방법인 염불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