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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사사 석불입상 (藥師寺 石佛立像) 서울시유형문화유산 제40호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4-17

    대웅전 내부에 봉안된 약사사 석불입상은 머리에 둥근 돌로 된 갓을 쓰고 계십니다. 갓 밑에 남아있는 글에 의지하여 조성된 시기를 조선 초기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와 비슷한 유형의 불상을 이해하는데 하나의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석불은 통칭하여 미륵불로 보는 관습도 있었고, 일반적으로 갓을 쓰고 있는 부처님은 미륵불로 불리고 있어, 『개화산약사암중건기』의 일장미륵(一丈彌勒)과 같은 대상으로 보기도 합니다. 조선 순조 때부터 약사불을 모시면서 개화사가 약사암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과 관련하여 약사불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상이라고 하는 이도 있으나 합당하지 않아 보입니다. 한편 무덤을 지키는 석인상으로 격하하는 견해도 있으나 타당하지 않습니다.
    얼굴의 윤곽과 옷주름의 표현은 투박한 편이며, 두 손으로 가슴에 12 꽃잎 연꽃 한송이를 들고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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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둥글고 친근한 모습의 고려말기의 석불

    높이 132m인 개화산은 원래 이름은 주룡산이었다. 주룡 선생이 돌아간 후 기이한 꽃 한 송이가 피어 사람들이 개화산(開化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높이 3.3m, 어깨폭 0.9m, 보관(寶冠)의 직경 1m 규모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석불은 개화산 약사사 경내에 위치한다. 본래 석불의 형태는 기단을 마련하지 않고 아래쪽은 지하에 매몰되어 있다. 그러나 석불 이전 당시에 기단석을 새로 만들어 석불을 올려놓았다. 두부(頭部)에는 원형의 석조보관을 놓았다. 보관의 밑부분에는 상당수에 달하는 명문(銘文)이 있으나 판독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석불의 두 볼은 풍만한 편이며 코와 볼이 약간 손상된 흔적이 있다. 하지만 그런대로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특히 두툼한 두 눈과 엷은 미소를 머금은 엄숙한 입술 등에서 인상적인 조형기법이 두드러진다. 이와 동시에 약사사 3층 석탑과 거의 같은 고려 시대 말기에 건립된 것으로 여겨진다.

    약사사 석불은 금동삼존불상의 중심에 높게 자리하여 당당히 사찰의 본존불로서 맡은 역할을 해내고 있다. 그러나 불상의 일반적인 특징을 제대로 갖추지 않아 마치 무덤을 지키는 석인상(石人像), 혹은 민간신앙의 대상인 장승과 같은 형태를 보인다.

    얼굴은 몸체에 비해 크게 표현되어 있는 대신에 어깨가 좁고 위축되어 있어 목과 거의 붙어 있다. 얼굴 표현에서도 마찬가지로 약간 튀어나온 왕방울만한 눈과 삼각형의 코, 그리고 일자형(一字形)의 입술 등에서 기괴하면서도 투박하고 거친 듯한 조각기법이 나타나 있다. 또한 어두운 돌에서 잘 드러나지 않은 이목구비를 조금 더 뚜렷하게 보이도록 최근에 조각을 더한 흔적이 있다. 법의는 양어깨를 덮고 있는 통견(通肩)으로 걸쳤으며 가슴 위로는 X자로 여미어 입은 내의(內衣)가 표현되었다. 옷 주름은 형식적으로 간략하게 처리되어 있지만 팔목 안쪽으로 소맷부리가 보인다. 손목이 많이 드러나 있는 두 손은 가슴 앞으로 모아 연꽃 한 송이를 쥐고 있다.

    약사사 석불은 일반적으로 불상의 형태에서 매우 벗어나 있지만 법당 안에 본존불로 봉안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토속적인 경향이 강한 것으로 조선 시대 민간신앙에 의해 조성된 불상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