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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1. 동화사 기성 쾌선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4-20

    역대 고승
    기성 쾌선


    기성 쾌선(箕城快善, 1693~1764) 스님은 1764년 동화사에서 입적한 조선 후기의 고승이다. 이 해에 세워진 스님의 부도가 동화사에 있으며, 이 외에도 여러 기록에서 동화사에 남은 스님의 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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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쾌선 스님은 1727년 동화사 대웅전의 삼존불을 조성할 때 불사의 과정을 검증하는 증명비구로 참여하였고, 1732년 가람의 중창을 마무리하고 그 과정을 적은 《팔공산동화사사적기》를 편찬할 때 서문을 썼다. 또한 대웅전의 편액과 일주문의 〈八公山桐華寺鳳凰門(팔공산동화사봉황문)〉이라는 편액을 썼다고 전한다. 경상북도 칠곡 송림사에는 1772년에 세워진 스님의 비가 있어서 이를 통해 스님의 자세한 행장의 알 수 있다.

    스님의 법명은 쾌선이고, 속성은 류씨(柳氏)로 경북 칠곡에서 태어났다. 13세에 칠곡 송림사로 출가하여 14세에 민식(敏湜) 대사의 문하에서 머리를 깎았다. 16세에 서귀(西歸)대사에게서 구족계를 받았다. 도덕산 태조(太照) 대사에게서 수학하고, 낙빈당(落賓堂) 홍제(弘濟) 대사의 강원에서 교학을 익혔다. 여러 경전을 공부하였으며 경의 뜻을 모두 이해할 때까지 궁리를 멈추지 않았다.

    25세에 고율엄(高律嚴) 낙빈(落賓) 대사에게 수학하여 인가(印可)를 받았다. 이후 주변에 이름이 알려져 배움을 청하는 자들이 날로 늘어갔다. 언변이 좋아 구애됨이 없었고 음성도 크고 밝았다. 가르치는 데 정성을 다하자, 배움을 찾아오는 자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었다.

    어느 날 동화사에 머물면서 “경전을 풀이하는 것은 단지 설법자의 생각일 뿐이고, 언어의 해설로는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며 강론을 그만 두고 초가(草家)를 지어 80권 화엄경을 읽는데, 전체를 다 읽으면 다시 처음부터 읽기를 반복하였다. 밤에는 홀로 가부좌하고 묵묵히 좌선하며 밤을 지새웠다. 스님이 입은 옷은 납의(衲衣)와 버선뿐이었으며 모두 검은색이었다. 성격이 담백, 간소하고 정직하였으며, 사람들은 대사의 법성(法性)이 걸림 없이 원만하여 팔공산의 정기를 밝게 한다고 널리 칭송하였다.

    1764년 팔공산에 머문 지 불과 1년이 지난 어느 날 열반경 강의를 마치고 조용히 입적하시니, 세수는 72년, 법납은 59년이었다. 동쪽 봉우리 아래에서 다비를 거행하였는데, 정수리뼈가 수백 개였다. 사리를 모시고 동화사의 동봉(東峰)에 부도를 세웠다.

    쾌선 스님은 선사이면서도 화엄ㆍ정토 등의 교학에 능통하였으며, 《염불환향곡(念佛環鄕曲)》과 《청택법보은문(請擇法報恩文)》 등의 저술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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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성대사 염불환향곡(箕城快善 念佛環鄕曲)
    이 책은 가요체 형식을 위한 아미타 정토신앙서로, 염불을 통해 본원이 마음일 뿐임을 깨닫고 그 본원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여러 가지 과정을 말하고 있다. 이 책의 발문을 통해 기성의 호가 모동산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 영조 43년에 경남 밀양군 화약산 봉천사 운주암에서 처음 간행하여 동화사로 이판하였다.


  2. 동화사 홍진국사 혜영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4-20

    역대 고승
    홍진국사 혜영


    고려시대 법상종은 고려 불교의 3대 종파 가운데 하나로서 흔히 유가종, 자은종이라고도 한다. 동화사는 법상종의 핵심 사찰이었다. 13세기 중엽 법상종의 대덕이던 홍진국사 혜영스님이 동화사에서 활동하였으며, 스님이 입적하신 후에는 1298년에 스님의 비가 동화사에 조성되었다. 비문의 제목은 〈高麗國大瑜伽桐華寺住持五敎僧統普慈國尊贈諡弘眞碑銘(고려국 대유가 동화사 주지 오교승통 보자국존 증시홍진비명)〉이다. 안타깝게도 비는 사라졌으나 탑본의 일부가 전하고 부도는 동화사 경내에 남아 있다. 탑본에 ‘대유가동화사’라고 하여 동화사가 법상종의 대찰이었음을 분명히 말해 준다.

    혜영스님의 성은 강씨(康氏)로 경상북도 문경 출신이다. 한림원 자원(子元)의 아들이다. 11세에 출가하여 남백월산(南白月山)의 수좌(首座) 충연(沖淵)의 제자가 되었고, 17세에 왕륜사 선불장에 합격하여 흥덕사(興德寺)에 머물렀다.

    1259년 선종의 높은 승계인 삼중대사(三重大師)가 되었고, 1263년에 수좌가 되었다. 1267년 속리사(俗離寺)이 이주하였으며, 1269년 승통이 되었다. 스님이 1274년 통도사에서 사리 여러 매를 얻어 항상 좌우에 두었더니 많은 분신사리가 생겨났으며, 이를 구하는 사람에게 나눠주었다고 한다. 이 해에 중흥사(重興寺)로 거처를 옮기고, 왕명에 의하여 9년 동안 서울에 머물렀다.

    1285년에는 유가사로 옮겼고, 1290년 사경승(寫經僧) 100명을 데리고 원나라에 들어갔다. 원나라 황제 세조가 스님을 경주사(慶州寺)에 머무르게 하였고, 만안사(萬安寺) 당두(堂頭)의 청으로 《인왕경》을 강의하여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다. 이듬해 금니(金泥)로 대장경을 사경하고 귀국하였다.

    1292년 국존에 봉해져 보자(普慈)라는 법호를 받고 오교도승통이 되어 동화사의 주지를 맡았다. 홍진국사가 동화사 주지로 임명될 때 충렬왕은 신하를 데리고 내려와 오배지례(五拜之禮)를 행했다고 한다. 고려시대 국사와 왕사는 왕에게 스승의 예를 받는 높은 위치였다.

    1294년 1월 24일 단정히 앉아 《화엄경》 〈십지품〉을 읽다가 입적하였다. 세수 67세, 법랍 56년이었다. 시호는 홍진, 탑호는 진응(眞應)이다. 문인(門人)으로는 금산사 승통 효도(孝棹) 등이 있다.

    스님의 저서로 《백의해(白衣解)》 1권 1책이 목판본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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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동화사 연혁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4-20

    근ㆍ현대시대
    2023년 임담의현대종사 팔공총림 2대 방장으로 추대 (2023. 6. 26)
    2017년 진제법원대종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4대 종정으로 추대 (2017. 3. 27)
    2016년 능담효광스님 28대 주지 취임(2016. 2. 24)
    2014년 종정예경실 준공
    2014년 불교문화관 내 부처님 진신사리 7과 봉안 (2014. 7. 1)
    2014년 능도 덕문스님 팔공총림 27대 주지 취임 (2014. 5. 24)
    2013년 진제 대종사 팔공총림 초대 방장으로 추대 (2013. 8. 19)
    2013년 국제선(禪)센터 개원 (2013. 5. 2)
    2012년 ‘팔공총림’으로 승격 (2012. 11. 7)
    2012년 국제관광선(禪)체험관(現 불교문화관) 개관 (2012. 4. 1)
    2012년 진제법원대종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3대 종정으로 추대 (2012. 3. 27)
    2010년 약수암(藥水庵) 중창
    2005년 염화실(拈化室) 준공
    1992년 통일약사대불 조성과 통일기원대전 건립
    1955년 석우 대선사 대한불교조계종 초대 종정으로 추대
    1931년 동화사 사적비(김정래 찬) 조성
    1911년 대구 아미산(峨嵋山) 포교당 ‘보현사’ 창건

    조선시대

    1838년 (헌종 4)퇴은(退隱)대사가 금당 중건
    1808년 (순조 8)인악대사비 건립
    1796년 (정조 20)인악(仁嶽)대사 입적
    1743년 (영조 19)무주(無住)대사가 양진암(養眞庵) 창건
    1732년 (영조 8)관허, 운암, 낙빈대사 등이 중창, 동화사 사적판 간행
    1727년 (영조 3)이의현(李宜顯)대사가 팔공산 동화사 사적 찬술
    1718년 (숙종 44)선원(善元)대사가 지장 원불전 창건
    1716년 (숙종 42)의균(儀均)대사가 운주암 창건
    1689년 (숙종 15)쌍밀(雙密)대사가 명월료 창건
    1677년 (숙종 3)상숭(尙崇)대사가 동화사 중건. 상은대사가 대웅전 중수
    1670년 (현종 11)상륜(尙倫)대사가 칠불전 연경전 건립, 칠불상 조성
    1668년 (현종 10)학찬(學贊)대사가 영산전 창건
    1666년 (현종 7)학령(學靈)대사 향로전 서상실 건립
    1658년 (효종 9)도오대사가 부도암(浮屠庵) 창건
    1656년 (효종 7)도오(道悟)대사가 화우당 창건
    1639년 (인조 17)혜기(惠機)대사가 관욕당 건립
    1634년 (인조 12)희윤(熙允)대사가 호법문 건립
    1633년 (인조 11)일주문 건립
    1626년 (인조 4)유찬(唯贊)대사가 내원암(內院庵) 창건
    1622년 (광해군 14)극락전 중창
    1606년 (선조 39)사명당 유정(惟政)대사가 중창, 학인이 대웅전 건립
    1605년 (선조 38)천령(天靈)대사가 심검당 창건
    1591년 (선조 24)비로전 창건
    1465년 (세조 10)금당 중건

    고려시대
    1375년 (우왕 1)동화사의 석가불골(釋迦佛骨)을 신효사(神孝寺)에 봉안
    1319년 (충숙왕 6)승려 현승이 통도사로부터 사리 5과를 얻어와 법회 개설
    1298년 (충렬왕 24)홍진국존의 유지를 받들어 중창
    1294년 (충렬왕 20)홍진국존 입적. 동화사에 부도 건립
    1202년 (신종 5)경주 별초군의 난에 가담
    1190년 (명종 20)보조국사 지눌이 중창
    1036년 (정조 2)영통사, 숭법사, 부인사와 함께 출가자의 경율을 시험하는 사찰로 지정

    신라시대
    934년 (경순왕 7)영조 선사가 중창
    928년 (경순왕 1)영조 선사가 염불암 창건
    863년 (경문왕 3)경문왕의 명으로 비로암 3층석탑,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 조성
    9세기 후반 금당암 3층석탑 조성
    832년 (흥덕왕 7)심지왕사가 중창. 동화사로 개칭
    493년 (소지왕 15)극달화상이 창건하여 유가사라 부름


  4. 동화사 창건기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4-20

    동화사의 창건에는 두 가지의 주장이 있다.
    첫번째로 동화사는 493년에 극달 화상(極達和尙)이 창건하여 유가사(瑜伽寺)라 하였다. 그 뒤 832년(신라 흥덕왕 7년)에 심지 왕사(心地王師)가 중창하였는데, 그때가 겨울철인데도 절 주위에 오동나무꽃이 만발하였으므로 동화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두번째로 〈삼국유사〉에는 진표(眞表) 율사에게서 영심(永深)에게 전하였던 불간자(佛簡子)를 심지(心地)가 다시 받은 뒤, 팔공산에 와서 불간자를 던져 떨어진 곳에 절을 이룩하니 곧 동화사 첨당 북쪽의 우물이 있는 곳이라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러나 극달 화상의 창건연대인 493년은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기 이전의 시기이므로 공인되기 전에 법상종의 성격을 띤 유가사라는 사명이 붙여졌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우므로, 심지의 중창을 실질적인 창건으로 보는 것이 보통의 견해이다.
    창건 뒤 863년(신라 경문왕 3년) 경문왕이 비로암 3층석탑과 석조비로자나불을 조성하였으며, 934년(경순왕 7년)에는 선사 영조가 절을 중창하였다. 고려에 들어서는 1036년(고려 정조 2년) 영통사, 숭법사, 부인사 등과 함께 경∙율을 시험하는 사찰로 지정되었으며, 1190년(고려 명종 20년)에는 보조국사 지눌이 중창하였다. 1294년(충렬왕 20년)에는 국사 홍진이 절을 중건하였다. 1319년(충숙왕 6년)에는 현승이 통도사에서 부처님 진신사리 5과를 얻어와 이를 봉안하고 법회를 열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1465년(세조 10년) 금당(金堂)을 중건하였으며, 1606년(선조 39년)에는 사명대사 유정(惟政)이 절을 중창하였고, 이어 학인이 대웅전을 건립하였다. 유정은 영남도총섭으로 절에서 승군을 지휘했으며 사서원은 격문을 지어 많은 의병들을 모집, 절에서 훈련을 시키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31본산의 하나로 일대 55개의 사찰을 거느렸던 대본산(大本山)이었으며, 현재는 대구광역시와 청도군, 칠곡군, 성주군의 사암(寺庵)을 관장하고 있다. 근래 평화통일의 발원을 담은 약사여래대불을 조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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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동화사 팔공총림 소개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4-20

    팔공총림 동화사는 1,5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한국불교의 대표 총림으로서, 조계종 종정예하이신 진제 법원 대종사께서 주석하시며 선원, 율원, 강원에 100여 명의 대중이 상주하며 여법히 정진하는 청정 수행도량입니다.
    세계최대의 석불인 약사여래대불을 비롯한 수많은 보물과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동화사는 동아시아 10대 관광명소로 지정되어 연중 내내 수백만 명의 내외국인들이 참배하는 동양의 대표 성지입니다.
    또한 국내 유일의 선(禪) 체험관인 불교문화관에는 오색영롱한 부처님 진신사리 7과가 모셔져 있으며, 법화경 7만자를 석각과 판각의 황금경판으로 조성하는 대작불사가 진행중입니다.
    약사여래대불 24시간 개방으로 365일 꺼지지 않는 수행기도 도량으로 거듭나고 있는 동화사는 대구시민들의 정신적인 쉼터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총림이란?
    총림(叢林)은 선(禪)•교(敎)•율(律)을 겸비하고 학덕과 수행이 높은 본분종사인 방장(方丈)의 지도하에 스님들이 모여 수행하는 종합적인 수행도량이다. 범어로는 빈타바나(vindhyavana)라고 하는데, 많은 대중이 화합해 한 곳에 모여 사는 것이 마치 수목이 우거진 숲과 같다고 해서 이렇게 부르고 있다.
    총림(叢林)이 되기 위해서는 승려들의 참선수행 전문기관인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律院), 염불 전문교육기관인 염불원(念佛院) 등을 모두 갖춰야 한다. 그러나 염불원을 별도로 갖춘 사찰이 거의 없다 보니 일반적으로 총림이라고 하면 “선원, 강원, 율원을 두루 갖추고 있는 사찰”이란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총림은 일반 사찰과 달리 총무원으로부터 상당한 자율권을 보장받아 사찰을 운영한다. 또, 큰 사찰이나 선원의 최고 어른스님을 '조실'이라고 하지만 총림에서의 최고 어른스님은 방장(方丈)스님이라고 칭하고 있는데 이는 ‘일방의 큰 선지식(一方之師)’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방장스님은 총림의 모든 대중들을 통리하며 화합을 이루고, 각종 행사와 결제ㆍ해제 때 법어를 통해 불제자들을 이끌어 가는 지대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