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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1. 범어사 표훈스님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4-22

    스님은 의상대사의 십대제자의 한 사람으로서 도력이 매우 높았으며 특히 화엄학에 깊은 깨달음이 있어서 신라 십성(十聖)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범어사 창건사적에 올라 있는 것으로 보아 범어사와 깊은 인연이 있는 스님이다. 의상 스님을 도와 범어사를 창건하고 화엄사상을 전파하는 데도 진력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751년 신라 경덕왕 10년에는 김대성이 불국사와 석불사를 짓고 표훈과 신림 두 스님을 청하여 있게 하였다.

    삼국유사에는 표훈 스님에 대한 이런 이야기가 실려있다.
    "스님은 불국사에 있으면서 천국으로 왕래하였다. 경덕왕이 스님에게 '짐이 아들이 없으니 스님이 천제(天帝)에게 청하여 아들을 얻게 하라,' 하니 스님이 천제에게 다녀와서, 천제가 말하기를 '여자를 구하면 가능하거니와 남자는 마땅치 않다,' 하더이다. 하니 왕이 '원컨대 여자를 변하여 남자가 되게 하라,' 하니, 스님이 또 다시 천제에게 청하니, 천제가 '그렇게 할 수는 있으나 만일 남자가 되면 나라가 위태로우리라,' 하면서 '다시 하늘과 인간계의 한계를 어지럽게 할 수 없거늘 지금 스님이 왕래하기를 이웃같이 하여 천기가 누설되니 이후부터는 왕래하지 말라,' 하였다. 스님이 돌아와서 천제의 말을 전하니 왕이, '나라가 위태롭다 하더라도 남자만 얻는다면 만족하다,' 하였다. 뒤에 왕은 남자를 낳았고, 태자가 8세 때에 경덕왕이 죽고 태자가 즉위하니 곧 혜공왕이다. 태후(太后)가 조정에 참여하니 정치가 문란하여 사방에 도둑떼가 들고일어나서 나라가 매우 어지러웠다."라고 전한다.

    스님의 저서로는 {화엄경문의요결문답(華嚴經文義要訣問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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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범어사 의상스님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4-22

    통일신라 전후 오랜 전쟁에 시달린 대중들의 마음을 화엄수행과 신앙으로 달래준 분이 있으니 해동화엄 초조로 널리 알려진 의상스님(625-702)이다.

    스님은 범어사의 창건주로서 범어사의 스님으로서는 한국 불교사에 가장 빛나는 고승이시다. 속성은 김씨로서 29세에 황복사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당나라에 불교가 흥성함을 듣고 서기 650년 원효 스님과 함께 중국에 가려고 요동까지 가서, 원효 스님은 무덤사이에서 자다가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시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도리를 깨달아 돌아오고, 스님은 당나라에 갔다. 처음은 양주에 있다가 662년에 다시 종남산 지상사 지엄(智嚴) 스님에게서 현수(賢首) 스님과 함께 {화엄경}을 깊이 연구하였다.

    스님께서 연구에 열중하던 중 당나라에서 신라의 사신 김흠순(金欽純)을 가두고 신라를 치려고 하매 스님이 670년 본국으로 돌아와 그 사실을 보고하였다. 왕이 미리 그 대책을 세워 무사하였다.

    현수 스님이 화엄수현기(華嚴搜玄記)를 짓고 부본(副本)을 보내면서 편지 한 것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의상스님의 저서로 {법성게}라고 불리우는 {화엄일승법계도}와 {법계품초기}, {대화엄십문간법관}, {괄진일승추요}, {천세구경}, {백화도량발원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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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선찰대본산 금정총림 범어사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4-22

    선찰대본산
    선찰대본산(禪刹大本山)은 마음의 근원을 구하는 수행도량이라는 뜻으로 참선을 통해서 마음속에 일어나는 갖가지 잡념과 망상을 쉬게 하고, 자신의 내면세계의 참다운 불성을 깨닫도록 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구한말, 성월스님이 범어사 주지로 있을 때 범어사를 선찰대본산으로 명명하고 당대의 최고 고승 경허스님을 범어사 조실로 초빙했다.

    범어사는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구 청룡동) 금정산 동쪽 기슭에 위치한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이다. 합천 해인사, 양산 통도사와 더불어 영남의 3대 사찰로 불리운다. 2012년 11월 사부대중의 수행정진과 화합을 바탕으로 지유대종사를 초대 방장으로 모시고 총림으로 지정되었다.

    신라 문무왕 18년(678년), 의상대사가 해동의 화엄십찰(華嚴十刹) 중 하나로 창건하였다. 전국 사찰중에서 유일하게 국보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소장하고 있으며, 가장 오래된 판본 중 하나로 권4의 5편에 들어 있는 '의상전교(義湘傳敎)'에는 의상대사가 열 곳의 절에 교를 전하게 해 화엄십찰을 창건하는 내용이 나오고, 이 가운데 '금정지범어(金井之梵魚)' 즉 금정산 범어사가 들어있음이 언급되어 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금빛 나는 물고기가 하늘에서 내려와 우물에서 놀았다고 해서 산 이름이 금정산(金井山)이고 그곳에 사찰을 지어 범어사(梵魚寺)를 건립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화엄경의 이상향인 맑고 청정하여 서로 돕고 이해하고 행복이 충만한 아름다운 삶을 지상에 실현하고자 설립된 사찰로 범어사는 역사적으로 많은 고승대덕을 길러내고 선승을 배출한 수행사찰로 오랜 전통과 많은 문화재가 있는 곳이다. 의상대사를 비롯해 원효대사·표훈대덕·낭백선사·명학스님과 그 대에 경허선사·용성선사·성월선사·만해 한용운선사·동산선사 등 고승들이 수행 정진하여 명실상부한 한국의 명찰로서 그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1950년대 동산스님이 불교정화운동을 주도하였고, 이후 한국근대불교를 이끌었으며, 총림지정 이후 조사스님들의 뜻을 받들어 수행공간을 지속적으로 확충하였다. 특히 2019년 범어사의 오랜 숙원사업인 선문화교육관과 2021년 전국사찰 최대 규모의 범어사 성보박물관의 대작불사를 완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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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범어사 창건유래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4-22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동래현 북쪽 20리에 있는 금정산 산마루에는 금빛을 띤 우물이 항상 가득차 있으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 속에 금빛 나는 물고기가 오색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놀았다고 하여 '금샘'이라고 하였다.

    하늘에서 내려온 금빛고기와 황금우물 그리고 산 이름을 따서 금정산 범어사라고 절 이름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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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범어사 중건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4-22

    임진왜란의 병화로 소실된 범어사를 다시 중건하다

    범어사는 창건 이후 고려와 조선 중엽에 이르기까지 그 면모를 유지해 오다가,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의 병화을 만나 모두 소실되어 10여년 동안 거의 폐허나 다름이 없었는데 선조 35년(1602년)에 관(觀) 선사가 중건하였으나 얼마있지 않아 또 다시 화재로 소실되고 말았다.

    그 후 광해군 5년(1613)에 묘전(妙全) 스님 등이 대웅전, 용화전, 관음전, 나한전, 일주문, 심검당(현 원주실)을 건립하였다. 또한 1684년에는 해민(海敏) 화상이 비로전을, 1700년에는 명학 화상이 팔상전, 종루, 불이문, 보제루, 천왕문을 건립하였다. 이후에도 사세의 확장에 따라 크고 작은 개수 및 중수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1800년대 말에 근세의 고승인 경허 성우스님을 중심으로 선풍진작을 통한 항일민족불교운동의 구심정이 되었다. 경허스님은 1900년에 범어사에 선원 개설을 주도하였다.

    또한 범어사 주지 성월 스님은 1899년 범어사 금강암에 선원을 창설하고 다음해에는 안양암에, 1902년 4월에는 계명암에, 1906년 6월에는 원효암에, 1909년 1월에는 안심료에, 1910년 10월 대성암에 선원과 선회를 창설하여 선풍을 크게 진작시켰다.

    1966년 2월 28일에는 대웅전 건물이 보물 제434호로 지정되었으며, 1969년에는 대웅전의 일부 목부가 교체되고 마루는 고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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