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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1. 청평사 전각 배치도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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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청평사 대웅전(大雄殿)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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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전은 현세불인 석가모니를 봉안하므로 사찰에서 중심을 이루는 건물이며 가장 중요한 곳으로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 협시보살(脇侍菩薩)로는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普賢菩薩)을 모셨다.

    문수보살은 '지혜'를, 보현보살은 '행을 실천'하는 보살이며 두 보살의 손에 든 연꽃 위에는 문수 동자와 보현동자가 두 손 모아 합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일반사찰에서 보기 드문 형태이다. 후불탱화로 석가모니께서 제자들에게 설법한 모임을 묘사한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와 불단 좌우로 모든 곳에 부처가 존재한다는 다불사상에 근거하여 천불을 묘사한 천불탱화(千佛幀畵), 영혼을 천도하는 불교의식에 사용된 감로탱화(甘露幀畵),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 중 대예적금강신(大穢跡金剛神)을 주축으로 묘사한 신중탱화(神衆幀畵)를 봉안하였다.

    1990년대 초에 중건된 대웅전은 정면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의 형태이며 1980년대 발굴조사보고서에 의하면 활주가 확인되었다는 것으로 보면 팔 작지붕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법당을 오르는 7단의 대형계단이 있는데 계단의 옆을 마무리한 소맷돌에는 태극문양과 연화문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이는 양주 회암사지의 계단과 매우 유사하다. 이 는 청평사와 회암사를 중창한 보우대사의 설계에 의한 것으로 생각된다. 태극문양은 왕실과 관련 있는 건축물에서만 새기는 것을 감안하면 청평사는 왕실과 연관이 있었음을 나타낸다.

    조선시대에는 대웅 전과 의미는 같지만 능인보전(能仁寶殿)이라고 불렀다.

    주련(柱聯)
    佛身普遍十方中 불신보편시방중 부처님 몸은 시방세계에 두루 가득하시네
    三世如來一切同 삼세여래일체동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도 이와 한가지시네
    廣大願雲恒不盡 광대원운항부진 크고도 넓은 원력구름은 항상 다함 없어라
    汪洋覺海玅難窮 왕양각해묘난궁 한 없이 넓은 깨달음바다 끝도 아득하여라

  3. 청평사 극락보전(極樂寶殿)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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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중심으로 협시보살(脇侍菩薩)로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셨다.

    아미타불은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부처님으로 죽은 이의 극락왕생과 함께 중생들의 수명장수와 안락을 도와주시며 관음보살은 지혜로 중생의 음성을 관하여 그들을 번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며, 대세지보살은 지혜의 광명으로 모든 중생을 비추어 끝없는 힘을 얻게 한다.

    이상향인 극락이 서쪽에 있으므로 보통 동향으로 배치하여, 예배하는 사람들이 서쪽을 향하도록 배치한다. 후불탱화로는 아미타극락회상도(阿彌陀極樂會上圖), 대웅전과는 다른 유형으로 제석천(帝釋天)과 대범천(大梵天), 동진보살(童眞 菩薩)을 중심으로 묘사한 신중탱화(神衆幀畵)를 봉안하였다.

    보우대사가 회전문과 함께 1555년경에 지었고 상량문을 1772년에 중수, 1889년에 다시 보수하였다. 극락전은 당시 최고의 기술로 지어 궁 궐 못지않게 화려한 건물로 국보(구 국보 115호)로 지정되기도 했었다. 이후, 한국전쟁 직전에 극락전이 불에 타고, 1977년에 새로 지어졌다. 불타기 전에는 전면 1칸, 측면 1칸이 실외로 설계되었다. 이 는 향교의 대성전과 같은 양식이다. 현재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 모두 실내로 새롭게 복원되었다.

    주련(柱聯)
    極樂堂前滿月容 극락당전만월용 극락전 앞에 보름달 같은 아미타불의 모습
    玉毫金色照虛空 옥호금색조허공 옥호의 금빛은 허공 가득 비추나니
    若人一念稱名號 약인일념칭명호 만약 누구든 명호를 일념 다해 부른다면
    頃刻圓成無量功 경각원성무량공 잠깐 사이 깨달아 한없이 큰 공덕 이루리라

  4. 청평사 나한전(羅漢殿)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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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가모니불과 이 세상에 머물며 정법(正法)과 중생을 수호한다는 집단으로서의 부처님의 열여섯 제자인 십육나한(十六羅漢)을 모신 곳으로 응진전(應眞殿)이라고도 한다.

    후불탱화로 석가모니께서 제자들 에게 설법한 모임을 간략하게 묘사한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를 봉안하였다.

    나한전은 맞배지붕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전면의 1칸은 퇴칸(좁은 칸)으로 향교에서 대성전처럼 실내 가 아니라 실외로 건축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관음전이 향적당(香積堂)이고 나한전이 사성전(四聖殿)이었으며 사성전 구역에 구광전(九光殿)도 함께 있었다고 한다.

  5. 청평사 관음전(觀音殿)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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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음보살을 모신 곳으로 관음보살이 주원융통(周圓融通, 두루 걸림이 없다는 뜻)하게 중생의 고뇌를 씻어주는 분이라는 뜻에서 원통전(圓通殿)이라고도 한다.

    관음보살은 모든 환란을 구제할 뿐 아니라 중 생의 안락을 불가사의한 인연과 신력으로 돕기 때문에 자비를 상징하는 보살이기도 하다. 관음전 내에는 감로병을 얹힌 연꽃을 들고 연화좌(蓮華座) 위에 앉은 관음상과 후불탱화로 관음보살과 협시(脇侍) 인 남순동자(南巡童子)를 묘사한 관음탱화(觀音幀畵)를 봉안하였다.

    관음전은 맞배지붕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전면의 1칸은 퇴칸(좁은 칸)으로 향교에서 대성전처럼 실내가 아니 라 실외로 건축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관음전이 향적당(香積堂)이고 나한전이 사성전(四聖殿)이었으며 사성전 구역에 구광전(九光殿)도 함께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