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총 38 건

소개
  1. 청평사 문수원기(文殊院記)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25

    6a9a189c84e948057024b653d1cc85ee_1716610034_96.jpg
     

    문수원기는 1125년에 이자현이 세상을 뜨고 5년이 지난 1130년 8월 고려 인종으로부터 진락공이란 시호를 받았는데, 그 3개월 후인 같은 해 11월에 세워진 비이다.

    비의 앞면은 청평사 창건과 중창, 이자현의 행적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고려 중기 문장가인 김부철(金富轍)이 짓고 대감국사 탄연(坦然)이 썼다. 비의 뒷면은 이자현을 추모하는 제문(祭文)으로 대각국사 의천(義天)의 제자인 혜소(慧素)가 짓고 역시 탄연이 썼다. 이 비문은 간화선(看話禪)과 굴산문(崛山門)의 법맥 등 고려시대 불교사, 사상사, 서예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조선 순조년간(1801∼1834)에 편찬된 『춘천읍지』에 의하면 문수원기는 글자가 벗겨지고 떨 어진 채로 절 앞에 서 있다고 되어 있다. 1914년 훼손이 심하자 극락전으로 옮겨 보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 이미 비문의 절반 이상이 멸실된 상태였다고 한다. 해방 이후에는 청평사가 북위 38°선의 경계선상에 있었기 때문에 주지승이 남한과 북한에 의하여 자주 연행되어 사상 조사를 받는 사태가 발생하자 부인이 부처님의 가피가 없기 때문이라면서 극락전을 불태우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때 다시 피해를 입은 문수원기는 현재의 대웅전 자리에 있던 요사에 옮겨 보관하게 되었다. 그러나 6‧25 전쟁 때 요사가 다시 불에 타면서 문수원기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 후 1968년 현재의 대웅전 자리에서 문수원기의 비편이 발견됨으로써 문 수원기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고 1985년 5월 25일에는 대웅전 터를 발굴하던 중 일부의 비편이 새로 확인되었다. 그 후 문헌, 탁본 등의 비교 분석 작업을 통해 2008년에 복원되었다.

  2. 청평사 문수사장경비(文殊寺藏經碑)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25

    6a9a189c84e948057024b653d1cc85ee_1716609921_63.jpg
     

    문수사장경비는 1327년(충숙왕14)에 원나라에서 청평사에 대장경과 돈을 보내 온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그 해에 이제현이 글을 짓고 이암(李嵒)이 써서 청평사에 건립한 비문이다.

    비의 앞면을 이제현이, 비의 뒷면을 승려 성징(性澄)이 지었다. 글씨는 비의 뒷면은 자료가 전하지 않기 때문에 누가 썼는지 알 수 없으나, 앞면은 이암이 쓴 2면비이며, 1327년 5월에 건립되었다.


    조선 후기에 파손되어 전하지 않으나 탁본이 남아 있어서 현재 복원 작업 중에 있다. 조선 순조년간(1801∼1834)에 편찬된 『춘천읍지』에 의하면, 장경비는 절단되어 자획도 보기 어렵다고 서술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 이미 파손 이 심각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3. 청평사 중창비(淸平寺 重創碑)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25

    6a9a189c84e948057024b653d1cc85ee_1716609824_19.jpg
     

    석진스님과 제원스님의 재임기간에 있었던 청평사의 중창을 기념하여 불기2535년(서기1991)에 건립한 비이다.
    대웅전 동쪽에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