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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1. 갑사 철당간 및 지주(鐵幢竿 및 支柱)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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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제256호 갑사 철당간 및 지주

    사찰에 행사가 있을 때 사찰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갑사(甲寺) 동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이 당간은 통일신라시대의 당간으로는 유일한 것이다. 네 면에 구름무늬를 새긴 기단(基壇) 위로 철당간을 높게 세우고 양 옆에 당간지주를 세워 지탱하였다. 철당간은 지름 50cm의 철통 28개를 연결하였던 것이나, 고종 35년(1899) 폭풍우에 벼락을 맞아 4절이 부러졌다고 하며 현재는 24절만 남아 있다.

    당간을 지탱하는 두 개의 지주는 동·서로 마주 서 있으며 꾸밈이 없는 소박한 모습이다. 기둥머리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안쪽에 구멍을 뚫어서 단단하게 고정시키고 있다. 기둥머리의 곡선과 기단부의 단순한 조각이 잘 어우러져 소박하면서도 장중한 느낌을 준다.

    통일신라 전기인 문무왕 20년(680)에 세워진 것이라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고, 양식상으로 보아 통일신라 중기의 양식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2. 갑사 부도(浮屠)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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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제257호 갑사 부도

    갑사 부도(浮屠)는 전체 높이가 205cm로 고려시대의 것으로 전하며 통일신라시대의 부도양식을 겸비하고 있다. 본래의 위치는 갑사의 중사자암에 위치했던 것을 현 대적전 앞으로 이전하였다고 전한다.

    대석(臺石), 탑신(塔身), 옥개(屋蓋)와 상륜부(上輪部)를 갖춘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으로 상륜부는 오래전에 결실되었다고 전한다. 전체가 8각으로 이루어진 모습이며 3단의 기단(基壇) 위에 탑신(塔身)을 올리고 지붕돌을 얹은 형태이다. 높직한 바닥돌 위에 올려진 기단은 아래·가운데·윗받침돌로 나뉘어지는데 특이하게도 아래층이 넓고 위층으로 갈수록 차츰 줄어든다.

    아래받침돌[下臺石]에는 사자·구름·용이 입체적으로 조각되어 그 표현이 힘차 보이고, 가운데받침돌[中臺石] 역시 8각형이나 볼륨있는 조각 수법으로 마치 원형에 가깝고 각 귀퉁이마다 꽃 봉우리가 솟아 있으며, 그 사이사이에는 주악천인상(奏樂天人像)이 양각되어 있다. 윗받침돌[上臺石]에는 32엽의 연꽃 연화문(蓮花紋)을 둘러 새겼다.

    탑신 역시 8각으로 각 면에 문과 열쇠를 새겨 놓았고, 그 사이에는 사천왕입상(四天王立像)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목조건물의 8각정 지붕형태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데 서까래, 부연, 용마루 등이 세밀하게 조각되어 있다. 상륜부는 후대에 만들어진 보주(寶珠 : 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를 올려 전체적인 모습은 섬세하고도 화려한 느낌을 주고 기백이 넘쳐 흐른다.

  3. 갑사 동종(銅鐘)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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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제478호 갑사 동종

    조선 초기의 종으로 국왕의 만수무강을 축원하며, 갑사에 봉안하기 위하여 선조 17년(1584)에 만들어졌다.
    높이 131㎝, 입지름 91㎝로 전체적으로 어깨부터 중간까지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중간 지점부터 입 부분까지 직선으로 되어있다. 종 꼭대기에는 음통이 없고, 2마리 용이 고리를 이루고 있다.

    종의 어깨에는 여의두입화형(如意頭立花形)으로 꽃무늬를 둘렀고, 바로 밑에는 위 아래로 나누어 위에는 연꽃무늬를, 아래에는 범자(梵字)를 촘촘히 새겼다. 그 아래 4곳에는 사각형모양의 유곽을 두었는데 밖에는 당초문(唐草紋)을 배치하였고 그 안에는 연화문(蓮花紋)을 9개 두었고 그 속에 돌기된 유두가 있다. 유곽 밑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구름무늬위에 연화문의 원형 당좌가 있다. 당좌와 당좌 사이에는 구름위에 석장(錫杖)을 잡고 있는 장신의 지장보살이 서 있다. 종 입구 부분에는 돌기된 2개의 띠를 만들고 그 안에 활짝 핀 연꽃과 보상화(寶相花)를 돌려 동종의 장엄미를 돋보이게 하였다.

    한편 이 종은 일제시대 때 헌납이라는 명목으로 공출해 갔다가, 광복 후 반출대기중이던 것을 찾아 갑사로 옮겨온 것으로 민족과 수난을 같이 한 동종(銅鐘)이다.

  4. 갑사 선조 2년간 월인석보 판목(月印釋譜木板)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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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제582호 갑사 월인석보 판목

    이 판목은『월인석보』(月印釋譜)를 새겨 책으로 찍어내던 판각으로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것 중 유일한 판목이다.

    월인석보』는『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본문으로 하고『석보상절』(釋譜詳節)을 설명으로 하여 세조 5년(1459)에 편찬한 불교대장경이다. 석보는 석가모니불의 연보 즉 그의 일대기라는 뜻이다.

    석보상절』은 조선 세종 28년(1446)에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수양대군(후의 세조)이 불경을 참고하여 지은 것이고, 『월인천강지곡』은 세종 29년(1447)에 세종이『석보상절』을 읽고 각각 2구절에 따라 찬가를 지은 것이다. 석보상절은 석가모니의 생애를 기록한 석가의 전기이지만 그를 골자로 하여 불교와 제경전을 종횡으로 인용하면서 조직화한 것이며, 월인석보는 여기에 월인천강지곡이라는 한글 찬송까지 덧붙인 종합적인 찬술이다.

    『월인석보』는 본래 57매 233장으로 모두 24권이었다고 하는데, 갑사에는 현재 21권 46매가 전해 지고 있으며.
    보물로 지정된 것이 31판이고 비지정이 15판이다. 이 판목은 선조 2년(1569) 충청도 한산에 사는 백개만(白介萬)이 시주하여 활자를 새기고, 충남 논산 불명산 쌍계사에 보관하였다가 현재 갑사에 소장되어 있다. 계수나무에 돋을새김으로 새겼고, 판목의 오른쪽 아래에 시주자의 이름과 새긴 이의 이름이 있다.

  5. 갑사 석가여래삼세불도(甲寺 釋迦如來三世佛圖)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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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제1651호 갑사석가여래삼세불도(甲寺 釋迦如來三世佛圖)

    갑사 삼세불도는 석가여래의 후불탱화로서의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와 아미타여래의 후불탱화로서의 아미타회상도(阿彌陀會上圖) 2폭이며 18세기 초,중반 당대 대표적 화사인 의겸이 1730년에 제작한 불화이다.

    영산회상도란 석가여래가 영취산에서 행한 법회내용을 도설한 불화이다. 그 구도내용을 보면 중앙에 설법하시는 석가여래, 그 주위에 대좌 및 좌우의 문수, 보현의 협시를 비롯한 4대보살, 그 위 좌우에 제석천과 대범천, 그리고 하방 좌우에 사천왕, 상방 좌우에 10대제자, 그 상방에 8부 금강상이 도설되어 있다. 아미타회상도란 일명 극락회상도라고 하며 아미타여래가 그의 국토인 극락정토에서 설법하는 광경을 도설한 불화이다.

    그 구도내용은 중앙에 설법하시는 아미타여래 대좌 하방 좌우에 협시 관음, 대세지보살을 비롯한 8대보살, 하방의 사천왕상, 상방에 4제자 이외에 금강상과 기타 신중상이 도설되어 있다. 각 설법장면을 세련되고 유려한 필치, 짜임새 있는 구도와 조화롭고 안정감 있는 색채로 부처의 세계를 장엄하게 묘사한 18세기 전반기의 대표적인 불화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