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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1. 갑사 석조약사여래입상(甲寺 石造藥師如來立像)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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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 유형문화재 제50호 갑사 석조약사여래입상

    갑사 석조약사여래입상은 고려시대에 조성되었으며 갑사 중사자암에 있었던 것을 현재 위치로 이안하였다고 전해진다.
    갑사 동쪽 계곡 약 100m 떨어져 있는 자연암석으로 이루어진 석벽 동굴에 남향으로 모셔져 있다.

    불두의 머리는 큼직하고 상호는 긴편이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새겨져 있고 법의(法衣)는 양 어깨에 걸쳐 무릎 아래까지 늘어져 있다. 가슴 아래로는 반원형의 옷주름이 표현되었고, 왼쪽 어깨 부근에서는 한 가닥의 주름이 어깨너머로 넘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손 모양을 살펴보면 오른손을 가슴까지 들어 손바닥을 밖으로 하고 왼손에는 약합을 들고 있어 약사여래임을 알 수 있다.

  2. 갑사 석조보살입상(石造菩薩立像)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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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 유형 문화재 제 51호 석조보살입상

    갑사 뒷산 중사자암에 약사여래입상, 갑사 부도와 같이 있던 것을 갑사에 옮겨 보관하고 있다. 화강암 석재로 만들었으며 목부분이 깨졌고 보주형(寶珠形) 두광(頭光)부분을 마애불처럼 붙여서 조각하였다. 얼굴은 마멸이 심해 분명하지 않으나 코가 오똑하고 눈은 감은 듯 하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데, 한 자락이 오른손 손목을 거쳐 등쪽으로 넘겨졌다. 하체에 걸쳐진 옷은 선이 부드럽고 얇아서 신체의 굴곡을 충실히 표현하고 있다. 가슴부분의 오른손은 뭔가 들고 있는 듯 하나 분명하지 않고, 왼손은 팔을 내려 무릎 부분에서 목이 긴 병을 들고 있다.

    전체적으로 잘록한 허리, 어깨 등 조각수법이 세련된 감을 주고 있으며 백제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3. 갑사 사적비(甲寺 事蹟碑)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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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 유형문화재 제52호 갑사 사적비

    갑사의 창건과정과 역사를 적은 비로, 자연의 암반에 장방형의 비받침돌[碑座]을 마련하고 그 앞에는 연꽃무늬를 조각하였다. 비몸[碑身]은 대리석으로 되어 있으며 비신 위에는 사모지붕형식의 머리를 올리고 꼭대기에 보주(寶珠)를 얹었다. 비신에는 4면 모두 비문을 새겼는데, 조선 효종 10년(1659)에 세웠으며, 비문은 여주목사(牧使) 이지천이 짓고 공주목사 이기징이 글씨를 썼다.

    비문 내용은 필설로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만큼 현묘한데, 비문 짓기가 어려움을 표현한 글을 보면 “선사(禪師)가 강력히 권하고 이상공의 뜻이 또한 얕지 않으니 어찌 감히 사양하겠는가, 다만 비문을 짓기가 어려운 것을 생각할 뿐이다. 진실로 조화(造化)[세상 이치 돌아가는 것]에 정통하고, 배운 것이 천인(天人)을 뚫고, 사림(詞林)에 근본하고 문원(文苑)이 우의(羽儀)하고 명성이 건필(健筆)하고, 금석풍류(金石風流)가 아니면 어찌 능히 산악(山岳)을 쪼을 수 있을 것이며 천하(天下)를 비출 것이며, 평범에서 빼어나 준례(準例)를 세울 수 있을 것이며, 깊은 촉망(囑望)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하고 뛰어난 재능이 있지 아니하면 비문을 지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기가 쉽지 아니함을 말하고 있다.

  4. 갑사 강당(甲寺 講堂)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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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 유형문화재 제95호 갑사 강당

    갑사 강당 보수공사시 나온 상량문에는 정문이라고 되어 있으며 창건된 것은 만력 42년(광해국 6년, 1614년)에 상량하였고 그 후 가경(嘉慶)2년(정조 22년, 1798년)에 중수하고 광서(廣西)16년(고종 27년, 1890년)에 중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후 강당은 스님들이 법문을 강론하던 건물로 정유재란(1597)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뒤로 다시 지은 것이다.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의 옆선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가운데 부분이 볼록한 배흘림의 기둥 위에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를 짰는데,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 건물이다. 단청은 완전히 퇴색되어 무늬의 흔적만 남아 있다. 절도사 홍재의가 쓴 ‘계룡갑사(鷄龍甲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전체적으로 기교를 부리지 않은 조선시대 후기의 웅장한 건축물이다.

  5. 갑사 대적전(甲寺 大寂殿)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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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 유형문화재 제106호 갑사 대적전

    갑사 대적전의 연혁은 정면 어간에 걸린 현판에 『도광6년4월목암서』(道光6年4月牧岩書)라는 기록이 있는데 도광 6년(순조 26년, 1826년)이 대적전의 건립연대로 추정된다.

    갑사 대적전은 현 갑사 경내 앞으로 흐르는 계곡 건너편의 원금당지(原金堂址)로 추정되는 곳에 요사채 1동과 일곽을 이루면서 서향하여 위치하고 있는데 대적전 우측으로 원금당지에는 한단의 쇠시리가 있는 원형 초석이 현재도 제위치에 남아 있다.

    대적전은 원래의 금당지 옆에 있는 건물로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으로 가장 화려한 팔작지붕이다.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 건물이다. 가운데 칸은 공포가 2개이며, 양 끝칸은 1개의 공포로 이루어졌다. 내부에는 불단을 설치하고 위에 천장을 한단 올림으로써 닫집의 효과를 나타내었으며 내부 단청이 매우 아름다운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