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총 8 건

소개
  1. 수덕사 중창설화 조선시대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4-28

    '동국여지승람' 권 19 덕산현(德山顯) 불우조(佛宇條)에 16세기 전반에 편찬된 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 권19 덕산현(德山顯) 불우조(佛宇條)에 덕숭산내에는 취직루와 불운룽의 2개의 누각이 있다.

    "재덕숭산 사유취적불운이루(在德崇山 寺有翠積拂雲二樓)"라는 기록으로 보아 당시 수덕사는 대웅전 이외에 2개의 누각이 있을 만큼 대가람의 면모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으로 대부분의 가람이 소실되었으나 수덕사 대웅전은 다행히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1937~40년 보수 당시 발견된 대웅전 동측 내부 전면에 기록된 단청개칠기(丹靑改漆記)에 의하면 중종 23년(1528)에 대웅전 색채보수, 영조 27년(1751), 영조 46년(1770)에 대웅전 보수, 순조 3년(1803)에 대웅전 후면의 부연(浮椽)보수와 풍판(風板)의 개수 등 4차례 대웅전 보수가 있었음을 알수 있다. 1673년 조성된 수덕사 괘불과 18세기 제작된 수덕사 소종은 조선후기 수덕사의 꾸준한 불사활동을 보여주는 유물들이다.


    c84fd3620f061d2e08780367e39027fd_1714310950_82.jpg
    c84fd3620f061d2e08780367e39027fd_1714310950_71.jpg
     

  2. 수덕사 중창설화 고려시대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4-28
    고려시대의 수덕사는 관련 문헌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내용을 파악할 수 없으나 다행히도 충렬왕 34년(1308)에 건축된 대웅전과 통일신라말기 양식을 모방한 삼층석탑, 수덕사 출토 고려자기, 수덕사 출토 와당 등 여러 유물이 남아있어 대가람으로서 융성하였던 면모를 볼 수 있다.


    c84fd3620f061d2e08780367e39027fd_1714310904_05.jpg
     

  3. 수덕사 중창설화 백제시대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4-28

    "백제 침류왕(枕流王) 원년 (384) 동진(東晉)에서 온 인도승려 마라난타가.."
    백제땅에 불교를 전한후, "백제는 승려와 절과 탑이 많다” 라고 중국사서(史書)인 “북사(北史)", "수서(隨書)" , "주서(周書)"에 기록되어 있으며 이때부터 불교는 국교로서 융성하였다.

    문헌에 나타난 백제 사찰로는 흥륜사(興輪寺), 왕흥사(王興寺), 칠악사(漆岳寺), 수덕사(修德寺), 사자사(師子寺), 미륵사(彌勒寺), 제석정사(帝釋精舍) 등 12개 사찰이 전하지만 수덕사만이 유일하게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백제사찰인 수덕사의 창건에 관한 정확한 문헌 기록은 현재 남아있지 않으나, 학계에서는 대체적으로 백제 위덕왕(威德王,554~597) 재위시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수덕사 경내 옛 절터에서 발견된 백제와당은 백제시대 창건설을 방증할 수 있는 자료이다. 문헌에 수덕사가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삼국유사(三國遺事)'와 '속고승전(續高僧傳)'으로 백제의 고승 혜현(惠現)이 수덕사에서 주석하며 법화경(法華經)을 지송하고 삼론(三論)을 강(講)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당시 수덕사의 사격(寺格)이 갖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554~597년(백제 위덕왕)
    지명법사가 수도 사비성 북부에 수덕사를 창건

    601년(백제 무왕 2)
    혜현법사가 수덕사에 처음 주석하며 <법화경>을 독송하고 <삼론>을 강론함

    627년(백제 무왕 28)
    혜현이 58세로 입적함


    c84fd3620f061d2e08780367e39027fd_1714310866_32.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