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진전은 고려 태조 14년(931) 능여 대사가 창건 하였으나,임진왜란에 전소되었던 것을 효종 7년(1656) 관음전으로 중건 하였다가 뒤에 응진전으로 개액 하였다. 이건물은 그 후 주지 녹원 화상에 의하여 중수 되었는데 이때는 기와 번와,단청 및 석조 축대까지 신축(1970.3.1~1971.11.30)되었다.
응진전(應眞殿) 나한상(羅漢像)
응진전에 모셔진 나한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많은 제자들 중 상수제자 16인이다. 이들은 일찍이 말세의 중생에게 복덕을 성취하게 하고 정법으로 인도하겠다는 원을 세운 성자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많은 영험담과 함께 민간에서 신봉되어 나한 신앙을 형성하게 되었다.
관음전은 일명 원통전이라고도 하며 관세음보살을 모신 곳이다. 협시로는 남순동자와 해상용왕이 있으나 이들은 대부분 후불탱화로 나타난다. 대승불교가 낳은 수많은 보살중에서 관세음보살 만큼 대중의 신앙대상이 된 보살도 드물다. 모든 중생의 애환을 대자대비로 거두어 주는 관세음보살은 중생의 근기에 맞게 32응신으로 화현하여 중생을 구제한다.
관음전(觀音殿) 현판
관음전(觀音殿) 내 관세음보살(觀世音普薩)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내재해 있음을 나타내는 연꽃을 들고 미소를 짓고 있다.
약사전은 동방유리광정토를 표출시킨 법당으로 약사여래가 봉안되어 있다. 아미타신앙이 사후의 신앙을 기본으로 하는 반면에 약사여래신앙은 현실적 이익을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약사여래는 인간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하여 줄 뿐만 아니라 죽음을 물리치는 힘을 갖고 있는 부처로 대중의 신앙대상이 되었다. 왼손에는 약사여래의 특징적 모습인 약합을 들고 있다.
약사전(藥師殿) 내 석조약사여래좌상 보물319호
오른쪽 그림의 약사여래좌상은 통일신라시대의 조성 양식을 반영하는 약사여래상은 마멸이 심하나,전체적인 윤곽은 광배와 함께 부드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성보박물관에 모셔서 상시 전시하고있다.
극락전은 서전(西殿)이라고도 하며,사적기에는 서전암(西殿庵)이라 하였다. 즉 큰절에서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으므로 이를 암자라기 보다는 서전 또는 극락전이라 일러왔다고 하겠다. 극락전은 주지 혜창 화상에 의하여 중창(1984.10.17~1986.5.26)되었다. 건물은 정면 7간,측면 4간의 팔작지붕이며 총 59.64평으로 비교적 큰 건물이다. 1999년 새롭게 개원을 하여 현재 천불선원으로 사용중이다.
극락전(極樂殿) 내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극락전은 서방정토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낸 듯 연꽃으로 장식된 법당의 내부는 화려하기만 하다. 좌우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측면 1.2층은 3간, 3층은 2간, 정면 11간의 팔각지붕으로 총 295평의 복합건물
시설현황
1층 : 100평 규모의 식당 (후원)
2층 : 스님 방사 및 템플스테이 숙소 3개
3층 : 설법전 법당 (템플스테이 운영 공간 및 숙소)
수용인원
최대 : 100명
최적 : 35명
최소 : 20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