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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31 건

소개
  1. 불국사 전각 좌경루(左經樓)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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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經)을 수장(收藏)했던 누각으로 추측된다. 1593년 왜구의 침략으로 소실(燒失)된 뒤 1612 년과 1690 년에 중건하였으나, 1904 년경 무너진 것을 1973년에 복원하여 목어(木魚)와 운판(雲板)을 설치하였다.

    원래 목어(木魚)는 고사(庫司)의 방 앞이나 식당에 걸어 놓고 행자(行者)를 부를 때 두들기는 명고(鳴鼓)로, 뒤에 가서 경(經)을 독송할 때 사용하기도 하였다. 지금은 수중(水中)의 중생에게 불법을 전하는 법구(法具)이다. 특히 선원(禪院)에서는 물고기가 눈을 뜨고 있는 점을 들어 수행자가 항상 깨어 있기를 촉구하는 뜻을 지닌다. 목어(木魚), 법고(金鼓), 범종(銅鐘), 운판(雲板)과 함께 불전사물(佛殿四物)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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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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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판

  2. 불국사 전각 천왕문(天王門)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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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대천왕(四天王門)안에는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사천왕을 모셔 놓고 있다. 천상계(天上界)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천왕천에 살면서 제석천왕의 지시에 따라 사천왕천의 동서남북 지역을 관장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그래서 사바 속세와 경계지간 가까운 곳에 마련 되었다. 천상의 수문장이라고 볼 수 있다.

    불법과 세계를 지키는 사천왕을 봉안한 문으로써 가람(伽藍)의 삼문(三門) 중의 하나이다. 비파를 지니고 있는 신(神)은 동쪽을 지키는 지국천왕(持國天王), 손에 칼을 쥐고 있는 신(神)은 남쪽을 지키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이다. 서쪽을 지키는 신(神)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용(龍)을 쥐고 있고, 북쪽을 지키는 신(神) 다문천왕(多聞天王)은 탑(塔)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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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국천왕, 증장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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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목천왕, 다문천왕

  3. 불국사 다보탑(국보 제20호)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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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보탑 多寶塔

    다보탑과 석가탑(경주 불국사 삼층석탑,국보 제21호)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석탑으로, 높이도 10.29m, 10.75m로 비슷하다. 절내의 대웅전과 자하문 사이의 뜰 동서쪽에 마주 보고 서 있는데, 동쪽탑이 다보탑이다. 다보탑은 특수형 탑을, 석가탑은 우리나라 일반형 석탑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두 탑을 같은 위치에 세운 이유는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할 때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법화경』의 내용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탑으로 구현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석가탑을 보면 2단의 기단(基壇)위에 세운 3층탑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지만, 다보탑은 그 층수를 헤아리기가 어렵다. 십(十)자 모양 평면의 기단에는 사방에 돌계단을 마련하고, 8각형의 탑신과 그 주위로는 네모난 난간을 돌렸다.

    탑이 건립된 시기는 불국사가 창건된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으로 추측된다. 목조건축의 복잡한 구조를 참신한 발상을 통해 산만하지 않게 표현한 뛰어난 작품으로, 4각, 8각, 원을 한 탑에서 짜임새있게 구성한 점, 각 부분의 길이·너비·두께를 일정하게 통일시킨 점 등은 8세기 통일신라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안타깝게도 다보탑에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설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1925년경에 일본인들이 탑을 완전히 해체, 보수하였는데, 이에 관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또한 탑 속에 두었을 사리와 사리장치, 그 밖의 유물들이 이 과정에서 모두 사라져버려 그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기단의 돌계단 위에 놓여있던 네 마리의 돌사자 가운데 3마리가 일제에 의해 약탈되어, 이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 오래전부터 있었으나 아직까지 그 행방을 알 수가 없으며, 현재 1마리의 돌사자가 남아있다.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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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6년 이전의 다보탑 모습(조선고적도보 [朝鮮古蹟圖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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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불국사 삼층석탑 석가탑(국보 제21호)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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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층석탑 三層石塔 석가탑 釋迦塔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과 경주 불국사 다보탑(국보 제20호)은 절의 대웅전 앞 뜰 동서쪽에 각각 세워져 있는데, 서쪽탑이 삼층석탑이다. 탑의 원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釋迦如來常住設法塔)’으로, ‘석가탑’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두 탑을 같은 위치에 세운 이유는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하는 것을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법화경』의 내용에 따른 것이다. 석가탑(경주 불국사 삼층석탑)과 다보탑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석탑으로, 높이도 각 10.75m, 10.29m로 비슷하다.

    탑은 불국사가 창건된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때 조성된 것으로 추측되며,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석탑으로, 경주 감은사지 동ㆍ서 삼층석탑(국보 제112호)과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8호)의 양식을 이어받은 8세기 통일신라시대의 훌륭한 작품이다. 탑 전체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도록 2층의 기단이 튼실하게 짜여 있으며, 목조건축을 본따서 위·아래층 기단의 모서리마다 돌을 깎아 기둥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탑신에도 그러한 기둥을 새겼으며, 지붕돌의 모서리들은 모두 치켜올려져 있어서 탑 전체에 경쾌하게 날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더한다.

    1966년 9월에는 안타깝게도 도굴꾼들에 의해 탑이 손상되는 일이 있었으며, 그해 12월 탑을 수리하면서 2층 탑신의 몸돌 앞면에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던 사각형의 공간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기서 여러가지 사리용기들과 유물을 찾아냈는데, 그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국보 제126호)이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로 닥나무 종이로 만들어졌다.

    탑의 머리장식(상륜부)은 16세기 이전에 유실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1973년 남원 실상사 동ㆍ서 삼층석탑(보물 제37호)의 머리장식을 본따서 복원하였다. 탑 주위로 둘러놓은 주춧돌 모양의 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이를 부처님의 사리를 두는 깨끗한 곳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 탑은 ‘무영탑(無影塔: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탑)’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여기에는 석가탑을 지은 백제의 석공(石工) 아사달을 찾아 신라의 서울 서라벌에 온 아사녀가 남편을 만나보지도 못한 채 연못에 몸을 던져야 했던 슬픈 전설이 서려 있다.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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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6년의 석가탑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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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구정광대다라니경 無垢淨光大?羅尼經(국보 제126호,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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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리기 (국보 제126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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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복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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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 진신사리 (현재 석가탑 사리함에 있음)

  5. 불국사 연화교 칠보교(국보 제22호)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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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화교 蓮花橋 칠보교 七寶橋

    불국사의 예배공간인 대웅전과 극락전에 오르는 길은 동쪽의 청운교와 백운교, 서쪽의 연화교와 칠보교가 있다. 연화교와 칠보교는 극락전으로 향하는 안양문과 연결된 다리로, 세속 사람들이 밟는 다리가 아니라, 서방 극락세계의 깨달은 사람만이 오르내리던 다리라고 전해지고 있다.

    전체 18계단으로, 밑에는 10단의 연화교가 있고 위에는 8단의 칠보교가 놓여있다. 청운교 ·백운교보다 규모가 작을 뿐 구조나 구성형식 등이 매우 비슷한데, 계단을 다리형식으로 만든 특이한 구성이나 경사면을 45°각도로 구성한 점, 다리 아래가 무지개 모양을 그리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비슷한 구성 속에도 이 다리만의 독특한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연화교의 층계마다 연꽃잎을 도드라지게 새겨놓았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오랜 세월동안 스쳐간 사람들의 발자국 탓에 많이 닳아서인지 조각이 희미해져 있어, 지금은 통행을 금지하고 있다.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창건 당시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 다리를 오르내리며 극락왕생을 기원하였고, 비구니가 된 신라 헌강왕비도 이곳을 오가며 왕의 극락왕생을 빌었다고 전해진다. 동쪽의 청운교와 백운교가 웅장한 멋을 보여주는데 비해, 섬세한 아름다움을 내보이고 있어, 불국사의 조형에 조화와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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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화교 칠보교 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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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화교 칠보교 계단에 새겨져 있는 연꽃잎 문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