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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1. 갓바위 주변 요도 하단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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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단에서 1~2분만 내려오면 삼성각과 범종루를 보실 수 있습니다.


    삼성각과 범종루, 대중 공양간이 있는 이 공간은 하단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삼성각에는 목각으로 제작된 칠성도, 산신도, 용왕도가 모셔져 있습니다. 삼성각 맞은편에 자리한 대중 공양간은 팔공산 관봉을 찾는 수많은 불자들과 탐방객들의 허기진 배를 든든히 채워줄 수 있도록 공양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삼성각의 우측으로 위치한 범종루에는 밀랍과 자연재료를 이용하여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과 같은 전통 방식으로 제작된 약사여래범종이 하루 두 번 삼라만상의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범음(梵音)을 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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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갓바위 주변 요도 3층석탑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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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단에서 지친 다리를 쉬며 공양을 마치고 내려오는 참배로에서 일주문으로 가는 다리를 건너기 전 좌측 산길로 300m 지점에 선본암 3층 석탑이 있습니다. 2중 기단위에 3층의 탑신이 있는 석탑은 1층 탑신에 사리공이 있다가 도괴된 것을 1979년에 복원하였습니다. 긴 세월을 견디며 서있는 선본암 3층 석탑은 선본사와 극락전을 내려다보며 다가올 불국토를 기다리고 있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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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갓바위 주변 요도 선본사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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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소지왕 13년인 491년에 극달화상의 창건설이 유력한 선본사 본 사찰을 이릅니다. 선본사의 중심 전각은 극락전으로 아미타부처님을 주존으로 좌우에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님이 봉안되어 있으며, 불보살님의 뒤로 후불탱화가(영산회상도) 모셔져 있으며, 법당의 좌우측으로 신중도, 칠성도가 모셔져 있습니다.


    극락전 좌우로 종무소 및 대중공양간 각 1동과 극락전 오른쪽에 산신각이 있습니다. 또 절은 경내가 축대 위에 자리잡고 있으므로 절 앞쪽에 범종각인 선종루를 세워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통한 주요 입구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신라 창건설이 무색하게 전각에 모셔진 불,보살님들은 근,현대에 조성되어 아쉬움이 남지만 사찰 주변에서 어렵지않게 볼수 있는 석등의 간주석이나 하대석, 석탑 기단과 기와 파편 등 여러 가지 부재들이 그 역사를 짐작케하는데 어려움이 없으며, 많은 신도들의 발걸음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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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선본사의 성보문화재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31

    본사는 멀리 관봉 (冠峰)이 바라다보이는 나지막한 언덕 위 평평하게 땅을 잘 골라 만든 터에 자리하고 있다. 아담한 경내는 팔공산의 지맥(支脈)이 뻗어 내린 끝자락에 포근히 감씨여져 있어 아늑하며, 좌향(坐向)도 전체적으로 서남향(西南向)이라 햇빛도 잘 들어 늘 따사로운 느낌을 갖게 한다. 깊이 따져 보지 않아도 예로부터 이 곳이 좋은 터로 여겨졌음을 넉넉히 알 수 있을 듯 하다. 아울러 절이 정남방(正南方) 正 으로 들어앉지 않은 것은 관봉 아래 있는 갓바위 부처님을 향하기 위한 배려로 풀이할 수 있다.


    지금 절에 남아 있는 성보문화재는 대부분 근래의 것들이다. 특히 극락전을 비롯한 전각 전부와 그 안의 불상(佛像) 불화(佛畵)에 모두 최근작들만 남아 있어 절에서 전하는 496년(소지왕 2) 극달(極達)스님의 창건설을 무색케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남아 있는 전각과 당우, 불상, 불화 등으로는 천년 고찰(古刹)의 분위기를 느끼기 어렵다. 하지만 옛 터야 어디 가지 않는 법. 눈을 조금만 낮추어 보면 이 곳이 그 옛날 신라의 옛 가람터임을 알아보는 데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우선 선정루(禪定樓)아래 계단을 지나 막 절 경내로 들어오면서 오른쪽을 보면 예전 이 곳 부처님이 앉아 있었던 석조 대좌(臺座)가 땅 위에 놓여진 것이 눈에 띈다. 팔각 하대석 위에 방형의 좌대가 있는 이 대좌에는 안상(眼象) 조각이 있어 한 눈에 통일신라시대 부처님이 앉던 대좌임을 알아 볼 수 있다.


    또 극락전 계단 양쪽으로 기둥처럼 세워진 석조물도 한 번 찬찬히 살펴보면 곧 신라시대 석등(石燈) 좌대 위에 그렇게 세운 것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오른쪽 좌대는 영남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형식의 신라시대 석등 좌대이기도 하다. 불대좌(佛臺座)나 석등 대좌 모두 옛날의 제모습이 아니고 부서진 채 놓여 있지만 예전 신라 때의 모습을 상상케 해주는 단초(端初) 역할은 충분히 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극락전 등이 자리한 지금의 경내를 조금 벗어난 곳, 예컨대 극락전 뒤편이나 요사 왼쪽 밭둑을 거닐어 보면 무수한 와편(瓦片)속에 심심찮게 신라시대 와편도 눈에 띄고 있다. 게다가 극락전 뒤편 경사(傾斜)가 그다지 심하지 않은 언덕에는 상당히 오래 전에 조성된 듯한 석축(石築)더미가 무너진 채 남아 있어 역시 옛날의 자취를 말없이 전하고 있다.


    이렇게 일부 남아 있는 석물(石物)과 유적으로 보아도 통일신라 무렵 이 곳에 세워졌던 고사(古寺)를 확인하는 데 별 어려움은 없다. 다만 앞서 말한 석조물의 제작 연대가 통일신라 시대라서 이것만 가지고는 이 절의 5세기 창건설을 곧바로 뒷받침하지는못하고, 또 창건 당시의 절 이름이 지금과 같은 선본사였는가도 확증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아무튼 창건 이후 천 여년이 흐르는 동안 절은 성쇠를 거듭하였으므로 남아 있는 유물이 드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현재 있는 성보문화재를 살핌으로써 아쉬움을 달래 본다.


    절의 전각으로는 금당인 극락전을 비롯, 좌우로 선방및 요사 각 1동과 극락전 오른쪽에 산신각이 있다. 또 절은 경내가 축대 위에 자리잡고 있으므로 절 앞쪽에 선정루를 세워 범종각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통한 주요 입구로 이용하고 있다. 그 밖에 기와 건물은 아니지만 선방과 요사 옆으로 각각 자그마한 시멘트 건물을 지어 놓았는데 창고 및 처사 거처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한편 갓바위 부처님이 있는 관봉 아래에도 칠성각.산신각.용왕각을 비롯하여 요사 몇 채가 있다. 이 전각들은 주로 갓바위 부처님 봉안을 위해 세워진 것인데 절에서는 말하기 편하고 듣기 쉬우라고 흔히 밑에 있는 선본사를 '본절', 이곳을 '웃절'로 부른다. 웃절은 갓바위 부처님을 찾는 신도가 많은 탓으로 규모가 대단하다. 요사만 하더라도 식당으로 쓰이는 삼층 건물을 포함해서 전부 6동, 그리고 기타 건물도 6동이나 되어 오히려 본절을 능가한다.

  5. 선본사 관봉 석조약사여래좌상(갓바위부처님)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31

    지성으로 기도드리면 누구나 한가지 소원은 이루게 해준다는 약사여래좌상, 갓바위 부처님으로 더 잘 알려진 이 불상은 군위 삼존불과 함께 팔공산 불교 문화의 정수를 이루는 작품이다.


    팔공산의 남쪽 봉우리 관봉(冠峰)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불 좌상으로서, 전체 높이는 4m에 이른다. 관봉이 곧 우리말로 '갓바위'이므로 흔히 '갓바위부처님'이라고 부른다. 또 머리에 마치 갓같은 판석(板石)이 올려져 있기에 그렇게도 부른다. 관봉은 인봉(印峰).노적봉(露積峰)과 함께 팔공산의 대표적 봉우리로서 해발 850m의 고봉(高峰)이다. 그래서 이 곳에서는 팔공산의 서남쪽이 모두 두루 조망(眺望)된다.


    이 부처님은 화강암 한 돌로 만든 것인데, 몸뿐만 아니라 대좌도 역시 한 돌로 되어 있다. 불상의 광배(光背)는 없지만 뒤쪽에 마치 병풍을 친 듯 기다랗게 바위가 둘러져 있어 혹시 이 자연 바위를 광배로 삼았기 때문에 따로 광배를 만들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머리는 소발에 육계가 큼직하고 그 위로 두께 15cm정도의 흡사 갓모양을 한 얇은 바위가 얹혀졌다. 바위 아랫면에는 육계에 맞닿는 곳에 둥근 구멍을 파서 육계에 맞도록 하였으며, 웃면 가운데는 같은 식의 둥근 구명을 도드라지게 하고 그주위에 화판(花瓣)을 조각했다. 그래서 어느정도는 인공적 조각임을 느끼게 한다. 얼굴은 양쪽 볼이 두툼하게 되어 있는 등 비교적 둥글고 풍만한 편이다. 입술은 굳게 다물어 대체로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으며 이목구비가 조화스럽게 잘 표현되어 있다. 이마 한 가운데는 백호(白毫)가 둥글게 솟았고, 오똑한 코 아래의 인중도 두드러지고 있다. 두 귀는 길게 양쪽 어깨에까지 늘어졌으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두 어깨는 반듯하고 넓어 당당한 신체와 잘 어울리고 있다.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 위에 올려놓고 손가락을 아래로 향하고 있어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과 비슷한 수인(手印)을 하고 있다. 이 수인은 석굴암(石窟庵) 본존불의 그것과 양식상 흐름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왼손은 결가부좌한 왼쪽 발 부근에서 손바닥을 위로 향해 약합(藥盒)을 올려놓았다.


    불상에 표현된 불의(佛衣)는 통견(通肩)인데 두 팔을 거쳐 두 무릎을 덮고 대좌 아래로 흘러내려 있으며, 불의의 옷주름을 표현한 선각(線刻)이 매우 유려하다. 그리고 가슴 앞에는 속옷의 일종인 승가리(僧伽梨) 혹은 군의(裙衣)의 띠매듭이 보인다. 불상의 뒷면에는 옷의 표현이 없고 그냥 평면으로 되어 있다.


    대좌는 신체에 비해 작은 편이다. 대좌 윗부분에는 길게 입은 옷의 끝자락이 엎고 있는데 이같은 대좌 형식을 상현좌(裳懸座)라고 한다. 이것은 팔공산 부근에 있는 군위(裙衣) 삼존불 가운데 본존불의 대좌형식과도 유사하다. 이 갓바위 부처님은 절에 전하는 바로는 원광법사(圓光法師)의 수제자인 의현대사(義玄大師)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638년(선덕왕 7)에 조성한 것이라 한다. 그러나 전체적 양식으로 보아 8~9세기 작품으로 보이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정설이다. 현재 보물 제 43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불상의 학술상 정식 명칭은 '관봉석조여래좌상'. 이름에서 굳이 약사불인 것을 밝히지 않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간 이 부처님의 명칭에 대해 미륵불, 아미타불 등 이론(異論)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위에서도 말했듯이 왼손에 보면 약합이 있는 것이 뚜렷하다. 또 옛날부터 이 부처님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약사여래로 생각하고 있었다. 단순히 전하는 말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근거 없이 전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리고 어쨌든 손위의 약합이 분명한 이상 앞으로는 약사여래로 부르는 것이 옳을 듯 하다.


    현재 갓바위 부처님 앞에는 약 80평 가량 널찍하게 터가 닦였고, 바닥에 돌이 깔리고 주위에는 철제 난간이 둘러쳐져 있다. 또 그와 함께 선본사에서 올라오는 길이 좀 더 넓혀지고 계단과 철제 난간이 많이 보완되었다. 그래서 예전에 비해 한결 기도드리기 편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