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총 21 건

소개
  1. 봉정사 괘불대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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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전 계단 좌ㆍ우에 있는 석조물로 사찰의 행사나 법회 때 법당의 부처님을 대신하여 괘불(탱화)을 걸어두기 위한 지주이다.

  2. 봉정사 부도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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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 : 조선시대


    고승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하는 묘탑이다.

  3. 봉정사 만세루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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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도유형문화재 325호
    지정일 : 2001년 11월 01일
    시대 : 조선 숙종

    누문은 대부분 이층으로 건축되며 아래층은 사찰의 중정으로 통하는 통로로서의 기능을 하며, 윗층은 산사의 전망을 감상하거나 목어(木魚), 운판(雲版), 범종(梵鐘), 법고(法鼓)등을 걸 수 있는 종루(鐘樓)나 고루(鼓樓)의 기능을 겸하기도 한다.

    만세루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측면에 풍판을 달아 가구의 노출을 방지하고 비나 바람으로부터 보호받도록 하였다. 건물의 구조는 이층 누각식 건물로 일층인 아랫부분은 자연석 기단에 자연석 주츳돌을 놓고 기둥을 세웠다. 우하주는 누상주에서 사용한 것보다 더 굵은 부재를 사용하여 견고하게 보이며 사찰의 중정으로 오르는 통로의 구실을 한다.

    만세루는 우물마루 바닥에 평난간으로 둘러져 있으며 법고와 목어 판이 놓여져 있어 예불을 알리는 고루로서의 기능을 한다. 목어는 나무를 깎아서 잉어 모양을 만들고 속을 파내어 비게 한 다음 그 속을 막대로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불구이다.

    염불과 독경이나 예배할 때 쓰이는 것으로 물속에 사는 고기들을 구원하고 수중중생의 해탈을 위하여 두드리는 것이다. 불사에 쓰이는 이 기구를 목어라고 이름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하고 있다.
    「옛날 덕이 높은 고승의 제자 하나가 스승의 가르침을 어기고 속된 생활을 하다가 그만 몹쓸 병에 걸려 죽었다. 어느날 스승이 배를 타고 물을 건너는데 등에 커다란 나무가 있는 물고기가 나타나 전생의 죄를 참회하며 눈물을 흘리고 자신의 등에 달린 나무를 없애주기를 간청하는 것이었다. 그 물고기는 다름아닌 말썽을 부린 제자가 물고기로 다시 태어나 고통을 받고 있는 모습이었다. 스승은 가엾게 생각하여 수륙재를 베풀어 등에 난 나무를 없애주었다. 그날 밤 제자는 스승의 꿈에 나타나 자신의 업보를 벗겨준 것에 고마움을 표하고 자신의 등에 난 나무를 깍아 물고기 형상을 만들고 소리를 내면 그 소리를 듣는 수행자들에게 좋은 교훈을 주게 될 것인 동시에 물에 사는 물고기들을 구원하는 소리가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스승은 제자의 말대로 목어를 만들고 여러 행사에 두루 쓰이는 법구로 삼았다.」고 한다.

    민간 신앙에 있어서도 물고기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장석이나 노리개에 잉어 형상이 새겨지고 장농이나 소품들에도 잉어문양을 많이 사용한다. 이것은 물고기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눈을 감지 않으므로 물고기의 속성을 따라서 도난을 방지하는 부적으로 주로 사용한다. 불교에 있어서는 수행자들로 하여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행에 정진하라는 뜻으로 물고기 형상의 목어를 만들어 사용한 것이다.

    법고는 네 발 달린 짐승들을 구원하고 해탈하라고 치는 북이다. 북을 받치고 있는 북대는 구름 모양의 형태를 띠고 있다. 운판은 날아 다니는 짐승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대개 구름의 형태로 만들어서 걸어두고 친다.

    범종은 지옥에 빠진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울리는 것이다. 이상 네 가지 범종, 운판, 법고, 목어를 사물이라 한다. 누에는 '덕휘루(德輝樓)'라는 현판이 하나 더 걸려 있어 이 누문의 이름이 덕휘루였음을 알 수 있으나 언제 만세루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4. 봉정사 영산회괘불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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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제1642호
    시대 : 조선시대 예종

    탱화의 일종으로 야외에서 법회를 할 때 걸어놓고 예배하는 의식용 불화이다. 일반적으로 탱화는 법당의 본존불(本尊佛) 뒤에 후불탱화로 걸어놓고 예배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큰 재(齋)나 초파일과 같이 많은 대중이 운집하는 날에는 의식용의 큰 불화가 쓰이게 되는데, 이러한 의식을 거행할 때 법당 앞의 괘불대에 걸어 놓고 예불을 드리는 것이 곧 괘불탱화이다.

    괘불은 일반탱화와 마찬가지로 재료의 취약성으로 인하여 오래된 불화는 많이 남아 있지 않고 현재 남아 있는 작품은 대부분 조선시대 후기의 작품들이다. 그러나 현재 사찰의 뜰에 남아 있는 당간지주 등을 볼 때 훨씬 오래 전부터 제작 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봉정사 소장 괘불은 강희(康熙)49년(1710)에 조성된 것이다. 견본채색(絹本菜色)으로 제작된 것으로 크기는 가로 576cm, 세로 731cm 이다.

    괘불의 내용은 석가모니가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할 때의 모임장면을 그린 영산회상도이다. 괘불의 구도는 중앙에 거대한 입상의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좌우와 하단에 팔대보살이 시립하였으며 상단에 십대제자를 등장시킨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필법은 매우 견실하고 전체적인 색조는 적색과 청록색이 주조를 이루면서 우아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보관은 말아서 대웅전내에 함에 넣어 보관 하고 있다. 대웅전 앞에는 괘불을 걸 때 사용하는 괘불대가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의 좌우에 마련되어 있다. 괘불의 사용은 법당의 크기에 비해 많은 대중이 참여하는 법회에는 괘불대를 세우고 괘불을 걸어서 야외에서 법회를 개최할 때 사용하고, 방생재(放生齋)나 수륙재(水陸齋)와 같이 법당이 아닌 어떤 특정 목적을 가지고 특수한 장소에서 법회를 열어야 할 경우에 사용한다

  5. 봉정사 영산회상도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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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제1614호
    지정일 : 2009년 4월 22일
    시대 : 조선시대 전기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 대웅전에서는 현존하는 국내최고의 후불벽화 (後佛壁畵 : 불상뒤 벽체에 그린 그림)인 '미륵하생도(微勒下生圖)'가 발견 되었다. 봉정사 대웅전을 해체 수리하던 중 지붕아래 종보받침에서 '1428년(조선 세종 10년)에 미륵하생도를 그렸다' 와 '1435년(세종17년)에 대웅전을 중창했다.'는 내용이 적힌 묵서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1476년(조선성종7년)에 조성된 전남 강진의 무위사 극락전(국보 제13호)의 후불벽화보다 최소한 40-50년정도 앞서 제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가로 387.5cm, 세로 380cm 크기의 봉정사 후불벽화는 고려불화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본존 왼쪽상의의 금구장식과 왼쪽 팔꿈치의 Ω모양의 옷주름, 대의에 세필로 그린 그림의 세련된 둥근 꽃무늬와 옷깃의 보상당초무늬 등 고려시대 불화의 대표적인 특징이 선명하게 간직된 국보급 벽화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