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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1. 부석사 자인당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 2구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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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인당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 2구 (보물 제220호)

    이 2구의 불상은 처음부터 부석사에 있던 것이 아니라 부석사 동쪽의 폐사지에서 옮겨 온 것이다. 양손이 깨어졌고 얼굴과 대좌 일부가 파손되었으나 광배와 대좌를 모두 갖추고 있다. 자인당의 두 비로자나불 좌상들은 세부 조각만 약간 다를 뿐 형태와 조각 양식이 거의 동일하여 같은 조각가의 작품으로 생각된다. 양감이 없는 경직된 신체와 형 식화한 옷주름을 지닌 불상이나 다양한 무늬로 화려하게 장식된 광배와 대좌는 모두 9세기 후기 불상의 전형적인 특징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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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인당 석불좌상
    자인당에 2구의 비로자나불상과 함께 봉안되어 있는 이 불상 역시 부석사 동쪽의 절터에서 옮겨 온 것이다. 여러 형식들이 9세기 신라 하대 불상들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2. 부석사 3층 석탑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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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제249호

    무량수전의 동쪽 약간 높은 지대에 위치한 신라시대의 3층 석탑이다. 이 탑은 자인당의 석불들과 함께 이웃 절터에서 옮겨진 것이다.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쌓은 전형적인 신라시대 석탑이다. 지대석과 하층 기단의 중석은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는데 모두 8매 석으로 짜였고중석 각 면에는 2개씩의 우주와 탱주가 새겨져 있다. 상층 기단의 중석은 각 면이 1매의 판석으로 짜였고 각 면에는 위 에는 2단의 탑신 받침이 있다. 그 위로 탑신부가 올려져 있고 옥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1매석으로 구성되었다. 각층의 탑신에는 각기 우주만 있을 뿐 조각을 새기지 않았다. 옥개석의 받침은 각층 5단이고 낙수면의 네 모서리는 약간 반전되었다. 3층 옥개석의 일부가 파손되었고 그 위의 상륜부엔 현재 노반과 넓적한 복발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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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래 탑은 법당 앞에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부석사 삼층석탑은 무량수전의 동쪽에 서 있어 궁금중을 자아낸다. 아마도 동쪽 을 향해 안치된 무량수전의 아미타불 방향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삼층석탑은 부석사 창건 당시 조성된 것으로 높이가 5.26m ‚ 기단폭 이 3.56m 이다.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삼층석탑의 양식을 가지고 있으며 건실하고도 장쾌한 느낌이 든다. 일주문을 거쳐 천왕문을 지나면 가파른 계 단 ‚ 몰아쉬는 숨을 들이키면 범종루가 눈앞에 들어온다. 이어 ‚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되었다는 동탑과 서탑이 나란히 반기고 서 있다. 이 탑은 원래 부석사 동쪽 일명사터에 있던 것을 1966년 경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석사의 경관을 흐트리지않고 잘 조화되어 있다. 탑은 지석대 위에 상   ·   하층 기단을 쌓고 우주와 탱주를 각각 새겨 격식을 갖추고 있다. 또 ‚ 서탑에는 익 산 왕궁리 5층탑에서 가져온 석존사리 5과가 분안되어 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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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부석사 석등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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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보 제17호

    부석사 석등은 無量壽殿 중심 앞 中庭 중앙에 세워져 있다. 따라서 무량수전을 진입하기 위해 安養樓 계단을 오르면 제일 먼저 바라다 보이는 위치에 있다. 또한 석등 앞에는 석등의 부속물인 방형의 拜禮石이 현존한다. 이들 석등은 배례석이 있는 부석사는 義湘(625~7 02)이 文武王의 뜻을 받들어창건한 이래 ‚ 그 제자들에 의해 法燈이 계속되었다. 특히 신라 하대에는 神琳 이후 번성하여 건물의 중창은 물론 많은 인재가 배출되므로써 華嚴宗을 크게 일으키면서 석등과 같은 조형물이 조성된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곧 이 무렵은 신라 景文王代(861~874)로서 ‚ 부석사가 위치한 太白山은 新羅五岳 중 北岳으로 숭앙되며 비중있는 화엄종 본찰의 중심 무대가 됨에 따라 ‚ 사찰 내에는 석등 이외에 大石檀 ‚ 石龍 ‚ 長臺石 ‚ 石搭 등이 이 무렵이 9세기에 조성되었던 것이다. 한편 무량수전 앞 석등 외에 또 다른 석등 郡材 2기가 더 있는데 하나는 무량수전 동쪽 언덕의 삼층석탑 앞에 위치한 석등이고 ‚ 다른 하나는 醉玄屢 앞의 옥개석과 간주석 파편 일부를 통해 알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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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사내용
    석등의 각 부재는 상륜부만이 일부 파손되었을 뿐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으며 ‚ 지표면에 하단부가 묻혀 대석의 하단부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지대석은 3매의 판석이 조립된 방형의 지대석으로 상면에는 하대하석을 받치기 위해 弧形의 받침대가 2단 각출되었고 ‚ 네 귀는 들림현상이 거의 없이 평이하다. 하대석은 방형의 하대하석 위에 하대상석인 팔각 원구형의 연화대석이 얹혀진 구조로 이들은 각각의 別石이다. 하대하석 상면에는 角形과 弧形의 2단 받침대가 마련되고 側斜面의 상하에는角帶 가 돌출되었다. 각대 내부에는 음각면의 안상이 2조씩 모두 8개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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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사내용

    석등의 각 부재는 상륜부만이 일부 파손되었을 뿐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으며 ‚ 지표면에 하단부가 묻혀 대석의 하단부는 확인 하지 못하였다. 지대석은 3매의 판석이 조립된 방형의 지대석으로 상면에는 하대하석을 받치기 위해 弧形의 받침대가 2단 각출되었고 ‚ 네 귀는 들림현상이 거의 없이 평이하다. 하대석은 방형의 하대하석 위에 하대상석인 팔각 원구형의 연화대석이 얹혀진 구조로 이들은 각각의 別石이다. 하대하석 상면에는 角形과 弧形의 2단 받침대가 마련되고 側斜面의 상하에는角帶가 돌출되었다. 각대 내부에는 음각면의 안상이 2조씩 모두 8개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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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면은 3단의 받침대가 마련된 후 外緣의 연화문과 연결되고 상면은 2단의 받침대가 마련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각형받침이 다. 上臺帶는 50mm로 굵기가 두꺼워 화사석과 상대석의 경계가 뚜렷하며 그 상면은 중앙으로 갈수록 귀솟음이 되어있다. 팔면체의 화문석은 내부가 비어있고 사면에 장방형의 창이 뚫렸으며 ‚ 나머지 사면 외부에는 보살입상이 浮彫되었다. 火窓높이 410mm ‚ 너비 170mm로 외곽에는 1단의 윤곽대가 마련되고 윤곽대 내부에는 鐵釘孔이 12개씩 돌려있고 이 구멍은 한쪽에만 14개가 있으며 그 배열도 특이해 개폐시설이 설치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바닥에는 가로 180mm ‚ 세로 150mm의 등화시설로 보이는 방형의 段이 한 단 파여 있다.

    화사벽에 장식된 보살들은 모두 원형의 두 광이 있고 삼면관을 머리에 쓰고 연화대에 서 있는데 목에는 三道가 분명하며 수인은 양 손을 모으거나 ‚ 늘어뜨린 천의를 잡 기도 하고 연꽃과 보주를 어깨와 가슴에 들고 서 있는데 ‚ 자세들이 모두 자연스러우며 신체가 날씬하다. 이 보살들은 상의는 입지 않고 천의만 양 어깨에 늘어뜨린 상태 고 하의는 군의를 입고 있다. 옥개석을 삿갓형태를 하고 팔각 옥개면은 仰曲과 안허리가 분명하며 처마선도 경쾌한 곡면을 나타내고 있다. 옥개 상면은 팔엽복 판연화 문의 蓮華冠이 덮혀 있고 ‚ 그 위로 호형과 각형의 층급 받침대가 2단 마련되었다. 상단 상륜받침대 동서측 중앙에는 엄지손가락 만한 홈이 파여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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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마 안쪽에는 깊이 28mm, 너비 20mm 切水溝가 돌려지고 중앙에는 옥개받침대가 2단 각출되어 있다. 내부 상면은 상륜부를 낄수 있는 竿孔이 지름 220mm로 뚫려있고 구멍은 처마쪽으로 갈수록 점차 옥개면의 형태로 넓게 벌어져 있다. 상륜부는 원래 보주형의 연봉이 있었는데 현재는 보륜의 중간부까지만 남아 있다. 상륜은 하단부에 촉이 있어 옥개석에 끼워지게 되고 외부에는 호형과 각형의 3단 받침이 있고 보륜 중앙허리에는 4엽의 만개한 연화문이 띠와 함께 돌려져있다. 이외에 석등과 동일한 시기와 양식으로 조성된 배례석이 석등 앞에 자리하고 있다. 석등과의 거리는 800mm이고 안양루와의 거리는 2,250mm 떨어진 상태로 ‚ 그 형태는 장방형이며 1,420mm x 850mm x 300mm 크기이다. 배례석 상면 중앙은 子房이 큰 팔엽단판에 간엽이 있는 연화문이 양각으로 시원스레 장식되어 있다. 특히 넓은 자방 외곽에는 원형의 線帶가 돌려 있다. 四面에는 상 ‚ 하에 걸쳐 角帶가 한 단씩 각출되어 있고 사이에 안상이 낮으막하게 파여 있는데 앞뒤에는 4개의 안상이 ‚ 좌우 측면에는 2개의 안상이 각각 장식되어 있다. 이들 안상 아랫면은 하단부에 마련딘 받침대와 바로 연결되는데 받침대는 3단이 넓게 마련되어 안정감 있다. 이 석등의 가장 큰 특징은 기단부가 방형의 지대석과 하대하석위에 팔각의 복엽 복련대석이 놓여 이루어진 점과 연화대 첨단부에 귀꽃이 장식되어 있는 점 ‚ 그리고 화사석 사면에 보살이 장식된 것을 들 수 있다. 즉 종래이 방형의 기단형태에서 팔각형태로 바뀌어 가는 변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기단부 하대석의 연화대 받침대가 원형에서 팔각으로 ‚ 그 상면은 간주받침대가 굽형으로 각출된 점 등 양식의 세부 변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간주석을 받치게 되는 연화대석 상면의 角形과 弧形의 4단의 받침은 형태가 장식적인 층단이 마련되므로 ‚ 연화대석 의 높이는 그 폭에 비해 매우 낮게 조성되었다.

    상대 앙련이 연판 내에는 花紋이 있고 상대석의 두께도 하대석의 연화대석처럼 얇은 편이며 ‚ 이들 상 ‚ 하대석의 間葉은 2단의 重瓣 구조를 하고 있다. 화사석의 4개의 화창이 개설된 벽면 四壁에 사천왕상 대신 보살입상이 장식된 것은 매우 특징적이며 ‚ 옥개석은 옥개마루 쪽이 갑자기 들려 안허리곡이 심해 날카로운 감도 없지 않다. 이와 같이 연화문의 간엽이 중판인 점 ‚ 기단부에 귀꽃과 간주석 받침대의 발생 ‚ 그리고 상대 연화문 내의 보상화문이 화사석의 보살상의 장식 등과 같은 세부양식으로 보아 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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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부석사 석축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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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호국의 기원으로 서라벌을 향한 것이라는 설이 재미있다. 부석사에 한 번쯤 다녀온 사람들은 누구나 석축과 돌계단을 특별히 기억한다.

    이 석축은 부석사를 창건할 당시 비탈을 깎고 평지를 고르면서 만든 것이다. 물론 석축의 목적은 사찰을 짓기 위한 땅다짐에 있지만 석축 돌계단 그 자체에도 상징 하는바가 있다. 즉 ‚ 극락에 이를 수 있는 16가지 방법 중 마지막 세 방법인 3품 3배관의 9품 만다라를 형상화한 것이다.

    천왕문에서 요사체로 오르는 세 계단이 하품단이며 ‚ 여기서 다시 세 계단 오른 범종루까지가 중품단 ‚ 범종루 에서 세 계단을 올라 안양루 밑을 지나 무량수전 앞 마당에 다다르는데 ‚ 마지막 계단으로 상품단이다. 이렇게
    부석사를 찾는 이는 상징화된 돌계단과 석축을 지나면서 극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반듯하게 다듬은 규격화된 돌들로 석축을 쌓지 않고 ‚ 돌의 자연 생김새를 그대로 이용해 잘 짜맞추어쌓았다 는 것이다. 둥글든 모났든 크든 작든 돌들의 본래 모 양새와 개성을 버리지 않고도 조화롭고 짜임새 있으며 견고한 석축이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현대의 우리들에게 커다란 가르침을 준다.

  5. 부석사 당간지주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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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제255호

    이 당간지주는 부석사 창건 당시 세워진 신라시대의 석조 유물이다. 1300여년전의 이 당간지주에는 화엄종찰을 알리는 깃 대와 깃발이 꽂혀 있었겠지만 지금은 한쌍의 돌기둥만이 남아 있다.당간지주는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에 다다르기 전 왼편 중 턱에 우뚝서 있으며 ‚ 그 키가 4.8m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