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총 76 건

소개
  1. 통도사 입장료 및 주차장 이용안내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4

    422f49f7395448dc71f5b7fe81fb53c8_1714827381_8.png
     

    개방시간 08시30분 ~ 17시 30분까지
    2023년 5월 4일부터 입장료 무료 적용 (성보박물관 매주 월요일 휴관입니다.)

    주차비
    경차 2,000원 / 중소형(17인승 미만) 4,000원 / 대형(17인승 이상) 9,000원
    ※ 단체 새벽예불 동참하는 경우 현금결제 또는 입금하면 됩니다.
    주차료 입금계좌 : 새마을금고 6269-09-005032-3 통도사
    입금 후 확인전화 요망 (회계실 : 055-382-7187)

    주차비 면제
    전국 신도증 소지자 (단, 해당년도에 회비를 납부한 경우)
    통도사 신도증 소지자 (단, 해당년도에 회비를 납부하고 있는 경우)
    복지카드 대상자 '장애인 주차가능' 스티커 부착 차량 무료(단, 주차불가 스티커 부착차량은 50% 부과함)

  2. 통도사 불교대학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4

    422f49f7395448dc71f5b7fe81fb53c8_1714827243_65.png
     

    세계문화유산 영축총림 통도사는 한국불교 7대 총림 가운데 하나로서 예부터 수많은 강사스님들을 배출한 부처님법 근본도량이자 한국불교 중심가람입니다. 통도사 불교대학은 이러한 도량 위에 설립된 50여 년 전통의 불교전문교육기관으로 매년 1000명의 불자를 교육시키고 있는 명실상부한 지역 거점 불교대학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대학 내의 다양한 교육과정은 초발심 불자로부터 심도있는 수행을 이어가는 불자에 이르기까지 보다 성숙된 신행으로 이끄는 화엄의 장을 마련해 드릴 것입니다.

    불교대학 1학년
    부처님의 가르침에 첫걸음을 내딛는 초발심 불자님들을 위한 신도기본교육과정입니다. 불자로서의 자세 및 도량예절로부터 기초교리, 법회의식에 이르기까지 불교신행에 입문하기 위한 기본소양들을 처음부터 쉽고 자세하게 가르쳐 드립니다.

    불교대학 2학년
    1학년 과정에서 배운 기본교리를 바탕으로 좀 더 심도있는 수행으로 나아가기 위한 신도전문교육과정입니다. 부처님 생애를 중심으로 불자로서의 삶의 지침을 얻는 동시에 불교교리를 유기적이고 능동적으로 이해하여 일상의 삶 속에서 녹여낼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본 과정의 목적입니다.

    불교대학원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긴 경전을 통해 진리의 세계를 이해하는 불교대학의 고급과정입니다. 경전이란 진실을 체득하도록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 이정표이며 길을 안내하는 지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의사가 환자의 병에 따라 약을 처방하는(應病處藥) 처방문과 같습니다. 불교의 대표적인 경전들을 통해서 불교를 보다 체계적으로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3. 통도사 금강계단(金剛戒壇)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4

    422f49f7395448dc71f5b7fe81fb53c8_1714825776_72.jpg
     

    영축총림 통도사는 646년(신라 선덕여왕 15)에 자장율사(慈藏律師)에 의해 창건되었다. 통도사에는 석가모니부처님의 정골(頂骨)과 지절(指節), 치아사리(齒牙舍利), 금란가사(金襴袈裟)가 봉안되어 있어 불지종가(佛之宗家)이자 국내에서 가장 큰 가람으로서 국지대찰(國之大刹)의 사격(寺格)을 지닌 사찰이라 할 수 있다. 『통도사사리가사사적약록(通度寺舍利袈裟事蹟略錄)』에 보면 원래 통도사가 위치하고 있는 이곳은 아름다운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을 메운 후 그곳에 금강계단을 쌓고 통도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또한 창건주인 자장율사에 대한 기록인 『삼국유사(三國遺事)』 「자장정률(慈藏定律)」의 기록에 의하면 스님이 643년(선덕여왕 12)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지고 온 불사리(佛舍利), 금란가사, 대장경 400여 함을 봉안하고 창건하였다고 한다. 창건 당시의 가람은 자장율사가 쌓은 금강계단을 중심으로 몇 동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 뒤 고려시대인 1085년(고려 선종 2) 통도사의 경내임을 나타낸 사지석표(四至石標), 즉 국장생석표(國長生石標)를 세울 만큼 사세가 확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1235년(고종 22)에 상장군(上將軍) 김리생(金利生)과 시랑(侍郞) 유석(庾碩)이 고종의 명을 받아 낙동강 동쪽을 지휘하던 차에 절에 와서 계단의 석종을 들어내고 석함 속의 사리를 예경했다고 한다. 이때 돌함 속에 있는 유리통 하나가 금이 가서 유석이 마침 가지고 있던 수정통을 기부하여 거기에 사리를 보관했다고 하는데, 이 기록은 문헌상으로 볼 때 사리에 손을 댄 최초의 예로 보인다.

    계단(戒壇)이란 계(戒)를 수여하는 의식이 행해지는 장소로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 누지보살(樓至菩薩)이 비구들의 수계의식을 집행할 것을 청하자 석가모니 부처님이 허락하여 기원 정사의 동남쪽에 단(壇)을 세우게 한 데서 비롯되었다. 통도사 창건의 근본정신은 바로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한 금강계단에 있다. 통도사가 신라의 계율근본도량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는 것이 곧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계를 받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었다.

    본래 통도사의 절터는 큰 연못이 있었고, 그 연못에는 아홉 마리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자장율사는 이들 용을 교화하여 여덟 마리를 승천(昇天)하게 하고 그 연못을 메워 금강계단을 쌓아 통도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창건 이후 금강계단은 그 안에 안치된 사리를 친견하고자 열망하는 많은 사람들의 참배가 이어졌다. 이러한 사실은 사리의 영험담과 함께 많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특히 고려시대에 이르러 왕실과 사신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 사리를 친견하였을 뿐만 아니라, 몽고의 황실에서도 금강계단을 참배하는 등 참배객이 끊이지 않는 성(聖) 스러운 장소로 여겨져 왔다.

    고려 말에서 조신시대에 걸쳐 왜구들에 의한 사리 약탈기도가 여러 차례 자행되었는데 이때는 개성 송림사 · 서울 흥천사 · 금강산 등지로 옮겨 다니며 난을 피하는 등 사리를 보호하기 위한 스님들의 목숨을 건 노력이 이어졌다.

    현존하는 금강계단은 창건 이후 수차례 걸쳐 중수되었기 때문에 창건 당시의 정확한 구조는 알 수 없다. 다만『삼국유사(三國遺事)』의 ‘전후소장사리(前後所將舍利)에 2층으로 위층가운데는 마치 가마솥을 엎어 놓은 것과 같다’는 기록을 통해 그 형태가 현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현재 계단의 모습은 2중 사각기단 위에 종 모양의 부도(浮屠)가 놓인 석조계단의 일반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계단의 사방에는 불좌상(佛座像)을 비롯하여 천인상(天人像), 신장상(神將像) 등 다양한 조각이 새겨져 있는데 이들은 고려와 조선시대의 중수 과정에서 새롭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금강계단 주변에 는 층계의 소맷돌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이 있다.


    금강계단 참배안내
    금강계단에는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기에 통도사 대웅전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지 않으니 대웅전 참배 시에는 이 점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금강계단에서는 합장한 상태에서 묵언하며 느린 걸음으로 오른쪽(시계방향)으로 탑돌이를 3번 합니다.
    금강계단 입장가능시간은 아래와 같이 제한되어 있사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입장가능일자 안내
    매월 음력 초하루 ~ 초삼일 (음 1일 ~ 3일)
    매월 음력 보름(음 15일)
    매월 지장재일(음 18일)
    매월 관음재일(음 24일)
    참배가능시간 : 오전 11시 ~ 오후 2시까지(우천 시에는 개방하지 않습니다.)

    가람의 형태
    통도사는 해발 1,050m의 영축산 상봉으로부터 흘러내린 봉우리들이 남쪽으로 이어져 오다가 금강계단에 이르러 멈추어서 명당을 만들어 주고 동으로 내려가면서 다시 한번 크게 몸을 일으켜서 문필봉(文筆峰)을 세워 놓고 산문입구 여의주봉에서 그 기운을 갈무리 하고 있다. 또하나의 지맥은 정상에서 흘러내리며 금강계단을 에워싸며 멀리 휘감아 돌아 나가면서 산문 여의주봉에서 두 지맥이 서로 만나고 있다. 풍수지리상으로 쌍룡농주형(雙龍弄珠形)이라한다. 이곳에서부터 산문을 들어서면 계곡을 따라 겹겹이 우거진 소나무 숲을 지나, 숲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조금 걷다보면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직진을 하면 주차장과 산내암자로 들어가는 길이고, 산모퉁이를 따라 오른쪽으로 돌면 경내로 들어가는 길이다. 산모퉁이를 돌아서면 오른쪽에 부도전이 자리하고 있다. 부도전에는 역대 통도사에 머물렀던 큰스님들의 부도와 탑비가 봉안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개산대재일(음, 9월 9일)에 이곳 부도전에 모셔진 스님들께 부도헌다를 올리고 있다. 부도전을 지나면 바로 정면 3칸 규모의 새로 세운 해탈문을 만나게 된다. 이곳 현판에는 ‘靈鷲叢林(영축총림)’이란 적혀있다. 보통 총림문이라 불리운다. 이 총림문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오른쪽으로 웅장한 청기와 건물이 위용을 드러내는데, 이곳은 통도사에 전래되는 유물들을 전시하고 연구하는 성보박물관이다. 곧이어 ‘영축산통도사’라는 편액이 걸려있는 일주문을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통도사 경내가 시작된다. 동쪽에서 진입하는 형식인 통도사는 큰 사찰답게 건물이 많은데, 전체적으로 남향을 했으면서도 지형 때문인 듯 가람배치가 동서로 길게 이루어져 있다. 또한 가람의 배치는 법당을 중심으로 세 지역으로 나누어 상로전ㆍ중로전ㆍ하로전이라 부르고 있는데, 노전이 3개라는 것은 통도사가 3개의 가람이 합해진 복합사찰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상로전 구역에는 금강계단을 중심으로 응진전ㆍ명부전ㆍ삼성각ㆍ산령각을 배치하고, 중로전 구역에는 대광명전을 위시하여 자장스님의 진영을 모신 해장보각. 용화전ㆍ관음전이 자리 잡고 있다. 하로전 구역은 영산전을 중심으로 극락보전ㆍ약사전ㆍ가람각ㆍ범종루 등이 있는 영역이다.

  4. 통도사 대웅전(大雄殿)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4

    422f49f7395448dc71f5b7fe81fb53c8_1714825720_91.jpg
     

    조선(1644년), 국보 제290호


    통도사 대웅전은 상로전의 주건물(主建物)이다. 대웅전의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5칸의 규모로 되어 모두 15칸 건물이며, 특이한 것은 두 개의 건물을 복합시킨 평면형이라 건물내부의 기둥배치가 다른 건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예이다.
    현재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44년(인조 22)에 중건하였지만 건물의 기단은 신라시대의 것으로 보이며, 내부에 불상을 모시지 않아 통도사 대웅전은 참배의 기능만을 갖고 있는 건물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불상을 모시지 않은 대신 불단 뒤편으로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된 금강계단이 위치하는 구조를 보여준다. 불당 내부에는 동서방향으로 길게 불단만이 있고, 그 앞쪽 중앙에 설법상(設法床)이 있어 대덕승려가 설법할 때 사용한다.

    지붕은 팔작지붕의 복합형인 정(丁)자 형인데 정면과 양측면에 박공(朴工) 부분이 보이게 하여 특이하며 기와 가운데에는 철제(鐵製) 기와도 올려져 있어 보통 건물이 아니었음을 짐작케 한다. 지붕 정상에는 청동제(靑銅製) 보주(寶珠)가 있는데 직경 약 70㎝에 달하는 이 보주의 윗부분에는 다시 높이 50㎝ 가량의 길다란 철주(鐵柱)를 설치해 놓았다. 이를 가리켜 통칭 찰간대(刹竿臺)라 하며 이는 대찰 또는 부처님의 연궁(蓮宮)을 뜻하는 상징물이다. 즉 불탑에서와 마찬가지로 불천(佛天)의 하강(下降)을 나타내는 조형물(造形物)이다. 그리고 지붕의 막새기와 상부에는 도자기 연봉장식이 있어 불사리 계단의 보궁 장엄에 온갖 정성을 쏟았음을 알 수 있다. 정확한 조성연대는 알수 없으나 대웅전 중건 당시의 유물로 짐작된다.

    이 대웅전에는 건물의 4면에 편액을 걸었는데 동쪽이 대웅전(大雄殿), 서쪽이 대방광전(大方廣殿), 남쪽이 금강계단(金剛戒壇), 북쪽을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고 하며, 조선 중기 불당 건축의 특수형으로 불당연구 및 목조건축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주목받고 있다.

    대웅전의 내부 천정은 우물천정으로 이룩되었으며 이들은 목단, 국화문 등을 조각한 위에 단청(丹靑)하여 매우 화려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같은 목조조각은 전면 불단의 초자(草子)에도 매우 화려하게 나타났는데, 이는 곧 조선시대 목조 공예의 진수를 나타내고 있다.

    건물의 크기는 남북이 15.8m, 동서가 10.1m이며 동쪽 대웅전 현판 아래 두 장의 꽃살문 역시 조각이 우아하다. 연화문, 옥단문, 국화문 등을 새겨 문살을 장식하였다. 건물의 네 귀퉁이에는 버팀기둥, 즉 우주를 놓아 추녀의 하중을 지탱하도록 하였으며 외양(外樣) 역시 조화를 잘 이룬 뛰어난 목조물이다.

    주련 : 금강계단(金剛戒壇)

    初說有空人盡執 초설유공인진집처음에 공을 설하니 모두 집착하더니
    後非空有衆階捐 후비공유중계연뒤엔 공이 아니라 하니 모두 버리내
    龍宮滿藏醫方義 용궁만장의방의용궁에 가득한 경율론 의사의 처방과
    鶴樹終談理未玄 학수종담이미현학수에서 마지막 설법도 현묘한 이치는 아니로다.
    주련 : 대방광전(大方廣殿)

    楊柳梢頭甘露灑 양류초두감로쇄버드나무 초순에 감로를 뿌리고
    連華香裏碧波寒 연화향리벽파한연꽃 향기 속에 푸른 파도가 서늘하네
    七寶池中標玉子 칠보지중표옥자칠보 연못에 옥자[표주박]를 띄우고
    九龍口裡浴金仙 구룡구리욕금선아홉 용이 입으로 金仙을 목욕시키는데
    大聖元來無執着 대성원래무집착대성은 원래 집착이 없다네.
    주련 : 대웅전(大雄殿)

    月磨銀漢轉成圓 월마은한전성원아름다운 저 달이여, 은하수를 돌고 돌아 둥글어 졌는가
    素面舒光照大千 소면서광조대천하얀 얼굴의 잔잔한 빛이 온누리를 비추네
    連비 山山空捉影 연비산산공착영원숭이들 달을 맞대며 부질없이 못 속의 달을 건지려 하나
    孤輪本不落靑天 고륜본불락청천높이 뜬 저 달은 본래부터 푸른 하늘에서 떨어진 일 없다네
    默契菩提大道心 묵계보리대도심묵묵히 깨달음의 대도심에 계합하네
    통도사 대웅전에는 다른 사찰과 달리 동서남북 사면에 모두 편액(扁額)이 걸려있고, 또 각각 주련이 달려있는데, 사천왕문을 통해 들어가면 관음전 쪽에 ‘대웅전(大雄殿)’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편액이란 널판지나 종이 또는 비단 등에 글씨나 그림을 그린 것으로 대부분 가로로 길쭉하여 횡액(橫額)이라고 하는데, 보통은 현판(懸板)이라고도 부른다. 편(扁)은 서(署)의 뜻으로 문호 위에 제목을 붙인다는 말이며, 액(額)은 이마 또는 형태를 뜻하는 말로, 건물 정면의 문과 처마 사이에 붙여서 건물에 관련된 사항을 알려 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중국 진(秦)나라 때 건물 명칭을 표시한 것을 서서(署書)라고 한 것이 편액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쓰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는 사찰 건물은 물론 도성과 문루, 궁궐 전각, 지방관아와 향교, 서원 등 일반주택에까지 붙여졌다.

    대웅전 편액의 글씨는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1820~1898)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통도사에는 유독 흥선대원군 즉 석파(石坡)의 글씨가 많이 있는데, 일주문(一柱門)의 편액인‘靈鷲山 通度寺’의 글씨와 원통방 편액과 ‘금강계단’의 글씨 등이 모두 흥선대원군의 글씨라 한다.

    다음으로 주련(柱聯)을 살펴보면, 우선 글씨는 천보구하(天輔九河)스님의 글씨이다. 통도사의 많은 주련들이 구하스님의 선필(禪筆)로 쓰여져 있다. 주련의 내용을 살펴보자면, 주련의 문장은 모두 다섯 구절로 이루어졌다. 앞의 네 구절은 칠언절구의 한시(漢詩) 형식으로, 중국 송(宋)나라 때의 대문호로서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소동파(蘇東坡1036-1101) 거사(居士)의 누이 동생인 소소매(蘇小妹)가 지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불교의식문 중의 하나인 관음예문(觀音禮文)에 실려 있다.

    관음예문은 중국과 우리나라에 전승되어온 의례문(儀禮文)으로 관음신앙을 중심으로 여러 불보살님에 대한 귀의, 예경, 찬탄, 발원의 글이 한데 어우러진 법문집인데, 이중 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의 삼신불을 찬탄하는 문장 중 화신불을 찬탄하는 구절에 나와 있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 구절은 앞의 내용과는 별 관계없이 기둥의 수에 맞추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데, 출처는 금강경오가해 선현기청분(善現起請分) 중 종경장(宗鏡章)에 나오는 글이다. ‘마음을 어떻게 항복 받아야 하겠습니까?’하는 수보리의 질문에 부처님께서 답하시는 대목에서 종경스님이 글을 단 것이다.

    주련의 내용은 관음예문에 나와 있는 화신불(化身佛)을 찬탄하는 아름다운 문장이다.

    至心歸命禮 兜率陀天上 象駕日輪 摩竭提國中 龍蟠覺樹 敎談三百餘會 度脫衆生 住世七十九年 利樂郡品 應物隨形化 阿羅縛左那 裟婆一代敎主 千百億化身 釋迦牟尼佛 月磨銀漢轉成圓 素面舒光照大千 連臂山山空捉影 孤輪本不落靑天

    중생에게 천백억 화신 나퉈 보이신 석가모니 거룩한 부처님께
    목숨바쳐 지심으로 절하옵나니 부처님은 도솔천 하늘 위에서
    눈부신 햇빛 속에 코끼리 타고 마야부인 태속에 드시었으며
    룸비니 꽃동산에 태어나실 땐 아홉 용이 맑은 물로 목욕시키고
    마가다국 보리의 나무 아래서 위없고 바른 깨침 이루시었네

    삼백여회 진리를 연설하시사 고통받는 많은 중생 건져 내시고
    칠십구년 이 세간에 머무르시사 중생에 이익주고 기쁨 주시니
    천백억 화신 석가모니 부처님께선 중생의 서로 다른 모습을 따라
    그에 맞는 여러 모습 나타내시네

    은하수에 달이 갈려 둥글어지니 흰 얼굴 빛을 펴서 온누리 비치네
    원숭이들 서로 서로 팔을 이어서 공연히 물 속의 달을 건지려 하지만
    홀로 밝은 저 달은 원래로부터 하늘에서 떨어지지 아니하였네.


  5. 통도사 구룡지(九龍池)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4

    422f49f7395448dc71f5b7fe81fb53c8_1714825656_88.jpg
     

    자장스님께서 중국 오대산 문수보살로부터 부처님 진신사리와 가사 및 발우를 전 해 받고 귀국하여 사리를 모시고자 할 때 당시 통도사는 큰 연못자리이었다. 사중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할 것 같으면 연못을 메우고 계단을 쌓고자 할 때 연못 속에는 아홉 마리의 악한 용이 살고 있었다. 자장스님께서 설법을 하여 교화시키니 그중 다섯 마리는 통도사 앞산 넘어 오룡골로 날라 가고 세 마리는 울산 삼동골로 급 히 도망가면서 산문 어귀 큰 바위에 부딪혀 피를 흘리고 갔는데 지금도 바위 표면에 핏자국이 남아 있어 사람들이 ‘용혈암(龍血岩)’이라고 부르고 있다. 나머지 한 마리는 눈이 멀어 떠나지 못하고 사찰에 남아서 도량을 지키고자 간청하여 연못 한 귀퉁이를 메우지 않고 남겨 살도록 하고 천왕문 옆에 조그만한 전각을 지어 ‘가람각’(伽藍閣)이 라 이름 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