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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1. 통도사 설법전(說法殿)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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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단일 목조건물로는 가장 큰 규모로 약 500평 넓이에 동시 수용인원 2천명까지 가능한 법당이다. 조석예불과 각종 큰 법회가 모두 설법전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특히 동지달(음력 11월) 한 달간 열리는 화엄산림 법회는 매일 수천 명이 모여도 모자람이 없다.

    정면 9칸, 측면 11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화엄산림법회 같은 큰 법회를 열 때 강당의 역할을 하는 건물이다. 건물에는 ‘설법전(說法殿)’, ‘국지대원(國之大院)’, ‘불지종전(佛之宗殿)’, ‘대방광전(大方廣殿)’ 등의 편액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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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통도사 응진전(應眞殿)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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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1677년), 경남 유형문화재 제196호

    응진전은 대웅전 서남쪽 동향한 불전으로 1677년(숙종 3)에 지섬대사(智暹大師)가 창건하였다 전한다. 현존의 건물은 원래의 것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 중기 이후 여러 차례 중수된 것으로 보인다. 건물의 형식은 정면 3칸, 특면 3칸의 주심포식(柱心包式) 맞배집으로 비교적 간결하지만 지대석(地帶石), 면석(面石), 갑석(甲石)을 갖춘 고식의 기단 위에 동향(東向)하여 있다.

    공포(拱包)는 기둥 위에만 짜여져 주심포식을 취하고 있고, 제공(諸貢)은 쇠서를 갖춘 다포식(多包式)의 모양을 하여 절충식의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주심포 형식으로 된 공포는 다포식을 많이 수용한 절충식이다. 현재 응진전에 봉안된 나한도는 근현대 불화사로 유명한 고산당 축연을 비롯한 화승들이 함께 그린 불화로 유명하다. 그리고 외벽의 달마도 또한 명작이다.

    불당 내부에는 중앙에 석가여래와 좌우에 미륵보살과 제화갈라(提華褐羅)가 동쪽으로 향하여 봉안되었고 그 주변에는 16나한상과 범천 및 제석천왕상을 좌우에 모셔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불과 함께 16제자상을 봉안한 셈이다. 곧 미륵보살은 석가여래의 일생보처(一生補處 : 다음생에 성불하여 부처님이 될 보살)이고 제화갈라보살은 과거불이기 때문이다. 응진전은 나한전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나한이 범어(梵語)의 아라하트(Arahat)를 한자로 음사(音寫)한 것으로서 그 뜻은 중생의 공양에 응할 만한 수행이 있다는 뜻인 ‘응공(應供)’ 또는 진리에 응하여 남을 깨우친다는 뜻에서 ‘응진(應眞)’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을 항상 추종하던 상수제자(上首弟子)는 1,250인으로 불경(佛經)에 기록되어 있지만 이들 가운데 중요한 위치에 있는 제자가 16나한이다. 그러므로 16나한을 봉안한 법당을 나한전(羅漢殿), 응진전(應眞殿), 또는 십육성전(十六聖殿)이라고도 하나 모두 같은 의미이다. 물론 부처님의 가장 대표적인 제자를 더 줄여서 말할 때는 십대제자를 들기도 하지만 나한전에 봉안되는 제자상은 십육나한(十六羅漢)이 보편적이다. 대체로 나한은 삼승(三乘), 즉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 가운데서 부처님으로부터 고(苦), 집(集), 멸(滅), 도(道) 사제의 법문(法門)을 듣고 진리를 깨친 분이다. 연각이 12인연의 도리를 스스로 깨쳐 독각이란 칭호를 듣는 데 비하여, 부처님의 진리의 법문을 듣고서 깨친 것이 다르다. 다시 말하면 보살승(菩薩乘)이 중생구제의 서원을 지닌 이타행을 본업(本業)으로 하는 대승임에 비하여, 성문승(聲聞乘)과 연각승(緣覺乘)은 자기(自己)의 수행이나 구원이 위주되는 자리(自利)를 근본으로 하므로 이를 소승(小乘)이라 말하게 된다. 그러나 아라한(阿羅漢) 역시 부처님의 사제법문(四諦法門)을 듣고 정신수행(精進修行)하여 아집(我執)과 번뇌를 끊어 생사(生死)를 초탈(超脫)한 성자(聖者)이다. 이들 16나한(羅漢)은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부처님의 유촉을 받고 영원히 이 세사에 계시면서 중생의 복전(福田)이 되어 불법(佛法)을 옹호하는 불제자(佛弟子)로 신앙된다.

    응진전 석가모니후불탱(應眞殿 釋迦牟尼後佛幀)

    조선(1775年), 견본채색(絹本彩色), 285 × 313cm
    나한(羅漢)은 부처님의 뒤를 따르는 아라한(阿羅漢)의 준말로, 부처님의 바로 아래 단계까지 깨달은 덕(德) 높은 고승(高僧)을 말한다. 특히 16나한은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미래의 부처님이 되리라는 수기(授記)를 받은 이들로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한 후 미륵불이 출현하기까지 열반에 들지 않고 불법(佛法)을 수호하도록 위임을 받았다고 한다. 이들 나한을 부각시켜 석가모니불과 함께 봉안한 전각을 응진전(應眞殿) 또는 나한전(羅漢殿)이라고 하며, 그림으로는 영산회상탱(靈山會上幀)과 나한탱(羅漢幀)이 봉안된다. 이들 나한은 보살상의 엄숙한 분위기와 달리 개성있는 표정과 다양한 동작으로 표현되어 화면에 생기를 더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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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진전 십육나한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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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련 : 응진전(應眞殿)
    有山有水承龍虎 유산유수승용호산수간에 용호를 타고
    無是無非伴竹松 무시무비반죽송시비장단 없으니 송죽을 벗하네.
    曾昔靈山蒙授記 중석령산몽수기일찍이 영산회상에 수기를 받은 분들이
    而今會坐一堂中 이금회좌일당중지금 한 집안에 모여 있네.

  3. 통도사 명부전(冥府殿)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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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1888년), 경남 유형문화재 제195호

    창건연대는 공민왕 18년(1369)이라 전하며 기록에 따르면 1756년 화재로 전소되었으나 영조 36년(1760) 춘파대사(春波大師)가 중건하였다. 고종 24년(1887) 또 다시 화재로 소실된 것을 이듬해 호성대사(虎星大師)가 재건하였다.

    건물 외부 측면에는 삼고초려도(三顧草廬圖)와 한강독조도(漢江獨釣圖) 등 조선후기에 유행한 영웅소설류의 내용을 표현한 다양한 벽화들이 그려져 있으며 건물 내부에는 민화(民畵)류의 토속적인 벽화와 수궁도(水宮圖). 봉황도(鳳凰圖). 풍교야박도(楓橋夜泊圖) 등으로 장엄하고 있다. 수미단에는 지장보살을 주불(主佛)로 모시고 좌우에 명부시왕(冥府十王)을 봉안한 전각으로 지장보살의 대원력(大願力)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다.

    지장보살은 도리천(忉利天)에서 석가여래 부처님의 부촉을 받고 매일 아침 선정(禪定)에 들어 중생의 근기를 관찰하여 석가여래 부처님이 입멸한 뒤부터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천상에서 지옥까지의 일체중생을 교화하는 대자대비한 보살이다. 지장보살에 관한 경전으로는 ≪지장십륜경 地藏十輪經≫과 ≪지장보살본원경 地藏菩薩本願經≫·≪점찰선악업보경 占察善惡業報 經≫이 있으며 다른 불보살의 원력과는 다른 것이 있는데 첫째는 모든 중생들, 특히 악도(惡道)에 떨어져서 헤매는 중생들과 지옥의 고통을 받으며 괴로워하는 중생들 모두가 빠짐없이 성불하기 전에는 자신은 결코 성불하지 않을 것을 서원(誓願)함이요. 두번째로는 누구든지 업보에 의해서 결정된 괴로움은 피할 수 없는 것인데 지장보살에게 귀의하여 해탈을 구하면 정해진 업을 모두 소멸시켜 악도를 벗어나서 천상락을 누리고 열반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신라시대 이후로 가장 일반적인 신앙으로 신봉 되었고, 특히 죽은 사람을 위한 49재(齋) 때에는 절대적인 권능을 가지는 보살로 받들 어지고 있다. 이러한 지장보살의 원력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일찍부터 지장보살에 대한 신앙이 성행하여 대표적인 불교신앙 중의 하나로 유포되었다.

    탱화
    명부전 지장탱(冥府殿 地藏幀)
    조선 (1798年), 견본채색(絹本彩色), 194 × 235cm
    지장탱화의 도설(圖說)내용은 지장삼부경(地藏菩薩本願經·地藏十輪經·占察善惡業報經)에 의하며, 일반적으로 중앙의 지장보살상을 중심으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의 양협시를 도설하고 좌우에 명부시왕·판관·녹사·사자·장군·졸사와 호법 사천왕 등을 도설한다.
    연화좌 위에 크게 나타낸 본존 지장보살은 당당하고 안정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지옥문을 깨트리고 견고한 보리심의 종자를 길러주는 석장(錫杖 또는 六環杖)은 직접 들지 않고 오른쪽 광배 속에 세워 놓은 것이 특이하며, 왼손의 여의보주(如意寶珠)는 어둠을 밝혀 주고 무량한 공덕의 보물로 무량 중생을 구제하는 작용활동을 나타낸다. 보관과 영락의 장엄한 일반적인 보살상과는 달리 지장보살은 『지장십륜경』의 내용에 따라 삭발한 스님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좌협시의 도명존자는 명부세계를 경험하고 지장보살의 협시가 되었고, 무독귀왕은 지장보살의 본생담 속의 안내자로 등장하는 재수(財數)보살의 전신이다.
    도명존자의 옆으로는 명부 시왕인 제1진광대왕이 시립해 있다. 진광대왕은 전광불을 원불로 하며, 착하고 의로운 일에 종사토록 권하면서 방탕하고 불효적악하면 도산지옥에서 과보를 받게 한다. 제2초강대왕은 약사불을 원불로 하며, 부부간에 화순하고 친구간에는 신의로 사귀고 불의의 행을 하지 않기를 권하며 악행에 종사하면 화탕지옥에서 고통을 받게 한다. 제3송제대왕은 현겁천불을 원불로 귀의하였고 한빙지옥을 관장하면서 가난하고 힘든 이들에게 도움을 베풀기를 권하고 있다. 제4오관대왕은 아미타불께 귀의하여 음해하면 검수지옥에서 그 과보를 받게 한다고 하였다. 시왕 중 중심인 제5염라대왕은 지장보살님께 발원, 귀의하였으며 발설 지옥을 관장하면서 남의 재물에 대한 탐심을 버리고 참되게 살기를 권한다. 제6변성대왕은 대세지보살님을 원불로 하며, 음해나 주색도박을 금하고 중생구제하여 덕을 쌓기를 권하고 독사지옥을 관장하시는 분이다. 제7태산대왕은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하 였으며 촤마지옥을 관장하면서 시비송사로 타인을 괴롭히는 일을 금하도록 권한다. 제8평등대왕 역시 불의의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하면서 중생구제에 뜻을 두도록 권한다. 비로자나불을 원불로 하며 추해지옥을 관장한다. 제9도시대왕은 약왕보살을 원불로 철상지옥을 관장하면서 빈민구제를 권하고 있다. 그리고 제10오도전륜대왕은 석가여래를 원불로 흑암지옥을 관장하며 모든 은혜를 잊지 말기를 권한다. 그와 함께 시왕의 권속들인 판관. 귀왕. 사자. 동자 등이 지장시왕도의 전체를 이루어 지장보살님의 대비한 육도중생 구제의 본원을 한층 더 전개하면서 중생들의 삶에 무한한 풍요를 부여해 주고 있다.

    명부전 시왕탱(冥府殿 十王幀)
    시왕은 명부세계의 사령관격으로, 사람이 죽으면 시왕 앞에 끌려가 자신이 살아생전에 지은 죄악에 대해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시왕탱은 직사각형의 화면에 상단은 시왕이 여러 권속을 거느리고 죽은 자를 심판하는 장면과 하단에는 죽은 자가 각자의 죄업(罪業)에 따라 지옥에서 벌을 받는 장면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따라서 시왕탱은 지옥의 고통스럽고 끔찍한 광경을 보여 줌으로써 악업(惡業)을 경계하고 선업(善業)을 장려하는 교화적인 성격이 강하다.
    명부신앙과 관련있는 사자(使者)는 사람이 죽었을 때 염라대왕을 비롯한 여러 왕들이 파견하는 지옥사자를 일컫는 말이다.
    대체로 불화로 조성될 때는 말 옆에 서서 칼이나 창, 두루마리를 들고 있는 감재사자(監齋使者)와 직부사자(直府(符使)者)가 등장 한다.

    제1 진광대왕(秦廣大王)
    사람이 죽은지 초칠일(初七日, 7일)이 되면 진광대왕 앞에서 처음으로 죄업을 심판받는다. 여기에는 죽은 자를 심판하는 왕청의 모습과 그가 다스리는 지옥 장면이 묘사된다. 무섭게 생긴 옥졸이 죽은 사람을 관(棺)에서 꺼내는 장면과 죄인들을 밧줄에 묶여 끌려 가는 장면이 묘사되며, 손이 묶인 채 칼을 쓰고 모여 있는 죄인들 위로 지장보살이 지옥 중생을 구제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제2 초강대왕(初江大王)
    초강대왕은 사람이 죽은 지 2·7일(14일) 째 되는 날에 심판을 맡은 왕이다. 여기에는 기둥에 죄인을 묶어 놓고 죄인의 배꼽에서 창자를 끄집어내는 장면과 목에 칼을 쓴 죄인 앞에서 판관이 죄과가 적힌 두루마리를 펼쳐 읽는 장면이 그려진다. 그 옆에는 죄인을 구제하기 위해 지장보살과 동자가 합장하고 서 있다.

    제3 송제대왕(宋帝大王)
    송제대왕은 사람이 죽은 지 3·7일(21일) 째 되는 날 죄업을 심판하는 왕이다. 여기에는 죄인을 기둥에 묶고 혀를 빼내어 그 위에서 옥졸이 소를 몰아 쟁기질 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살아서 말에 자애로움이 없고 남을 비방하고 욕하며, 나쁜 말로 사람을 현혹시킨 사람들이 받는 형벌이다.

    제4 오관대왕(五官大王)
    오관대왕은 사람이 죽은 지 4·7일(28일) 째 심판을 맡은 왕이다. 여기에는 파계(破戒)하거나 살생하여 죽여 고기를 먹은 사람이 주로 떨어진다는 확탕지옥(鑊湯地獄), 즉 펄펄 끓는 물에 죄인을 집어넣고 삶는 장면 등이 그려져 있다. 역시 한켠에는 죄인을 구제하기 위해 지장보살과 동자가 합장하고 서 있다.

    제5 염라대왕(閻羅大王)
    염라대왕은 사람이 죽은 지 5·7일(35일) 째 심판을 맡은 왕이다. 염라대왕청에는 업경(業鏡)이 있어 죄인들의 생전의 죄를 비추어 그에 따라 벌을 준다. 여기에는 옥졸이 죄인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은 채 업경대(業鏡臺)를 들여다보는 장면과 방아로 죄인을 찧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보통 업경대 안에는 몽둥이로 소를 때려 죽이는 장면이 그려지는데, 이는 생전에 가축을 도살한 사람의 죄가 업경에 나타나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제6 변성대왕(變成大王)
    변성대왕은 사람이 죽은지 6·7일(42일) 째 심판을 맡은 왕이다. 여기에는 날카로운 칼 숲에 갇혀 있는 죄인들과 죄인들의 머리와 다리를 잡아 칼 숲으로 집어던지는 장면이 묘사되는데, 주로 생전에 칼이나 몽둥이로 남을 괴롭힌 자가 받게되는 형벌이다. 그 옆에는 옥졸이 창으로 죄인을 찌르는 장면 등이 그려져 있다.

    제7 태산대왕(泰山大王)
    태산대왕은 사람이 죽은 지 7·7일(49일) 째 심판을 맡은 왕이다. 왕 앞에는 지옥·아귀·수라·인·천의 육도(六道)가 있어서 죄인을 그 죄업에 따라 태어날 곳과 지옥에 보내는 일이 정해진다. 이로 인해 불교에서는 망자(亡者)를 위한 49재가 행해진다. 여기에는 형틀에 죄인을 묶어 놓고, 양쪽에 톱을 든 옥졸이 마주서서 죄인을 반으로 써는 장면이 묘사되어있다.

    제8 평등대왕(平等大王)
    평등대왕은 사람이 죽은 지 100일 째 되는 날 심판을 맡은 왕으로 공평하게 죄복(罪福)의 업을 다스린다는 뜻에서 평등왕(平等王) 또는 평정왕(平正王)이라 한다. 여기에는 철산(鐵山) 사이에 죄인을 끼워 놓고 압사시키는 장면과 빠져나가려는 죄인을 옥졸이 저지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우측에는 죄인을 구제하려는 지장보살이 합장하고 서있다.

    제9 도시대왕(都市大王)
    도시대왕은 사람이 죽은 지 1주기 째 되는 날에 죄업을 심판하는 왕으로 도제왕(都帝王), 도조왕(都弔王)이라고도 한다. 여기에는 업칭(業秤)이라는 저울로 죄의 무겁고 가벼움을 다는 장면과 옷을 벗은 죄인들이 차가운 얼음산에 같혀 추위에 떨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제10 도시대왕(都市大王)
    오도전륜대왕은 시왕의 마지막 왕으로 사람이 죽은 지 3회기(三回忌) 째 되는 날 심판을 마무리하는 왕이다. 여러 단계를 거치며 죄를 심판받은 죄인들은 마지막으로 이 왕 앞에서 다시 태어날 곳이 결정 된다. 여기에는 법륜(法輪) 위에 앉아 있는 머리가 둘 달린 옥졸의 머리 위로 육도윤회(六道輪廻) 장면이 펼쳐져 있고, 그 주위에 재판이 끝난 후 육도윤회의 길을 떠나기 위해 모인 죄인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주련 : 명부전(冥府殿)
    慈因積善誓救衆生 자인적선서구중생자비의 인연으로 적선하고 중생 구하기를 서원하니
    당切歸依奚遲感應 당절귀의해지감응만일 간절히 귀의하면 어찌 감응이 더디리요.
    掌上明珠光攝大千 장상명주광섭대천손바닥 위에 밝은 구슬 대천세계를 비추고
    手中金錫振開玉門 수중금석진개옥문손가운데 쇠지팡이는 지옥문을 열어주네.
    常揮慧劒斷滅罪根 상휘혜일단면죄근항상 지혜칼로 죄의 뿌리 잘라 버리고
    業鏡臺前十殿調律虎 업경대전십전조율업경대 앞에서는 시왕이 법률로 다스리네.

  4. 통도사 삼성각(三聖閣)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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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각의 초창은 고종 7년(1870) 영인대사(靈印大師)에 의하여 이룩되었으나 현 건물은 1935년 경봉선사(鏡峰禪師)에 의하여 중건되었다. 삼성(三聖)은 고려말의 고승이었던 지공(指空). 나옹(懶翁). 무학(無學) 세 분의 큰스님을 지칭하는데 지공스님은 고려 말 충선왕대(1309~1313년)에 인도로부터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온 스님으로서 통도사에서 성대한 법회를 개최하였다고 한다. 나옹스님 역시 고려 말에 생불(生佛)로 존경받던 큰스님이시고, 무학스님 또한 고려 말기 태조 이성계의 왕사(王師)로서 조선 건국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 헸던 스님이다. 모두 고려 말기에 고승으로 추앙받는 분 이기에 세분의 진영을 모시고 삼성각이라고 하며 건물내부에는 중앙에 석조독성좌상 (石造獨聖坐像)과 독성탱화(獨聖幀畵)를 모셨고 오른쪽에는 삼성탱화(三聖幀畵). 왼쪽에는 칠성탱화(七星幀畵)를 봉안하여 복합적 기능으로 사용하고 있는 전각이다.

    주련 : 삼성각(三聖閣) 편액 - 九河스님 절
    응진전 석가모니후불탱(應眞殿 釋迦牟尼後佛幀)
    松巖隱跡經千劫 송암은적경천겁송암에 자취를 숨기고 천겁을 지내고
    生界潛形入四維 생계잠형입사유중생계에 모습을 감추고 사방으로 왕래하네.
    隨緣赴感澄潭月 수연부감징담월인연따라 감응함은 맑은 못에 달비치듯
    空界循環濟有情 공계순환제유정허공계에 순환하며 중생을 제도하네

  5. 통도사 산령각(山靈閣)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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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령각(산신각)은 삼성각의 동북쪽에 거의 붙어 있다. 정면과 측면이 단칸으로 남향하고 있는 아주 작은 건물로 맞배집이다. 처음의 건립은 영조 37년(1761)이며 哲宗代 : 1850 - 1863)에 중수(重修)를 거쳤으나 현 건물은 1986년에 소실되었다가 당시 주지 원명(圓明)화상에 의하여 중건되었다. 건물 내부에는 일반적으로 산신탱을 안치하였으며 산신은 옆에 호랑이를 거느리고 있어 산신(山神)과 호랑이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 1600여 년이 흐르면서 불교는 토속신앙(土俗信仰)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예가 바로 사찰(寺刹)안의 산신각이나 칠성각(七星閣) 등이다. 산신은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산악신앙(山岳信仰)과 밀접한 연관을 지닌 것으로서 산속에 위치하는 사찰의 일각에서는 별도로 산신각을 지어 신앙하게 된다.

    통도사에는 일종의 호랑이 혈맥(血脈)이라 할 수 있는 호혈(虎血)이 있다 하여 사내(寺內) 두 곳에 이를 진합할 호혈석(虎血石)을 배치하고 있는 것도 산악신앙과 함께 흥미로운 일이다. 이 호혈석은 현재도 응진전 바로 옆 남쪽과 하로전(下爐殿)의 극락전(極樂殿) 옆에 위치한다. 이처럼 산신은 산악숭배사상(山岳崇拜思想)에서 나왔고 칠성(七星)은 도교신앙과 관련이 깊은데 이러한 것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이 조선시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전(殿)이란 명칭을 쓰지 않고 대개 각(閣)이란 명칭을 쓰고 있다. 산신각은 불교와 토속신앙이 융합되어 있는 좋은 예(例)라 할 수 있다.

    산신탱화(山神幀畵)

    산신은 가람의 외호신(外護神)인 까닭에 사찰의 뒤쪽 외각에 산신각(山神閣, 또는 山靈閣)을 짓고 그 안에 호랑이와 노인의 모습으로 묘사한 산신상이나 산신탱화를 봉안한다. 산신탱화는 독성탱화와 도상면에서 일견 유사한 면도 있으나 엄격한 이미지의 독성과는 달리 산신은 인자한 미소에 복스러운 모습으로 호랑이와 함께 나타나는 점이 다르다.

    그런데 산신에 대하여는 일반적으로 오해가 적지 않다. 즉 산신이 원래는 불교와 관계가 없는 토속신 이었으나 불교가 재래 신앙을 수용할 때 호법신중의 하나로 삼아 불교를 보호하는 수호신의 역할을 부여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견해가 나름대로 충분한 설득력을 지니고는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 일컬어지는 산신에 대한 개념의 근거는 화엄법회에 동참했던 39위의 화엄신중 가운데 제 33위에 엄연히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산신을 불교와 관계가 없는 토착신앙만으로 보는 견해는 재고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석문의범』의 산신청(山神請) '가영(歌詠)'에서는 산신은 "옛날 옛적 영취산에서 부처님의 부촉을 받으시고, 강산을 위진하며 중생을 제도하고 푸른하늘 청산에 사시며, 구름을 타고 학처럼 걸림 없이 날아다니시는 분(靈山昔日如來囑 威鎭江山度衆生 萬里白雲靑障裸 雲車鶴駕任閑情)" 이라고 찬탄하고 있는 것으로도 이를 더욱 뒷받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전 국토의 2/3가 산이기에 선조들에게 있어서 산은 곧 생활의 터전이었다. 산을 의지하여 살았고 또 죽어서는 그 곳에 묻혀야 했던 사람들이 산에 대한 경외심을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산악 숭배가 전국의 곳곳에 산신당(山神堂)을 짓고 숭배한 것은 사실이겠으나 그런 이유만으로 불교의 수호신으로 수용된 것이 아니라, 주지하였다시피 화엄경 등의 교의적 근거가 있었기에 소재강복(消災降福: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내리는)의 외호신으로 무리없이 습합될 수 있었던 것이다.

    산신은 조각상보다 탱화로 도상화하여 봉안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19세기 말에 조성된 문경 김용사(金龍寺)의 산신탱화를 보며 산신의 위의를 교의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산수와 노송을 배경으로 가운데 큼직이 앉아서 인자한 미소와 눈빛을 보이는 산신은 왼손으로는 수염을 만지며 오른손에는 백우선(白牛扇)을 잡고 있다. 산신청 '거목(擧目)'에, "만 가지 덕을 갖추고 뛰어난 성품을 한가롭게 가지고 계시며(萬德高勝性皆閑寂山王大神)", '사찰이 자리한 산에 항상 계실(比山局內恒住大聖山王大神)'뿐만 아니라 '시방법계에서 지극한 영험을 나타내시는 분(十方 法界至靈至聖山王大神)'임을 한눈에 느낄 수 있도록 덕성스럽게 표현되어 있다.

    이렇듯 가서 의지 하고픈 생각이 들 정도로 넉넉한 산신의 왼쪽에 있는 호랑이는 무섭고 위엄스럽기보다는 애교스러운 자태로 표현되어 친근감을 주고 있다. 산신의 왼쪽에는 차를 준비하는 동자와 오른쪽의 경서를 든 동자 그리고 산신의 뒤로는 힘찬 소나무의 뻗은 가지와 잎이 화면의 상단을 가득 메우고 있으며 청록산수 기법으로 표현된 화려한 산수에는 장수와 청정을 의미하는 소나무, 해 등이 있고, 새들이 노닐고 있으니 이런 기쁨과 즐거움이 항상하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드러나 있는 것이다. 오른쪽의 주렁주렁 달린 복숭아는 다자(多子)를 뜻한다. 동자와 동녀의 모습은 산신에게 올리는 기원의 시각적 표현이기도 하다.

    이 같은 불화의 많은 도상들은 그 자체의 의미와 함께 신행자의 심중소구(心中所求)를 담은 복합적, 동시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모습의 산신탱화가 전국의 사찰에 모셔져 있다는 것은 토속신으로서의 소박한 수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불교적으로도 교리적 근거가 분명하며, 나아가 각종 공해로 강산의 폐해가 심한 요즈음 산신신앙의 재조명을 통해 환경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해답을 찾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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