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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1. 통도사 개산조당(開山祖堂)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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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산조당은 용화전 옆 서쪽에 위치한다. 통도사의 창건주 자장율사의 영정을 봉안한 해장보각으로 들어가는 정문이다.

    전각 정면에 개산조당이라는 현판이 붙은 솟을문은 해장보각의 조사문으로서 ‘솟을삼문’형식이며 해장보궁(海藏寶宮)으로 통하는 문의 3칸 건물인데 중앙 칸이 양 측면 칸보다 높게 솟아 ‘솟을삼문’이라고도 한다. 3칸 모두 두 쪽의 널문을 달아 여닫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 건물형식은 조선시대 말기의 수법으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사당(祠堂)의 솟을삼문과 같다.

  2. 통도사 해장보각(海藏寶閣)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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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건물의 창건은 영조 3년(1727)이고 그 후 고종 4년(1900)에 고산대사(古山大師)가 중수하였다. 자장율사의 진영을 봉안한 해장보각은 정면 3칸, 특면 2칸의 맞배집으로 앞쪽에 툇간을 달은 형식을 취하고 있어 내부 앞쪽에 내진(內陣 : 안두리)기둥이 배치 되어 있다.

    이 전각을 해장보각이라고 한 것은 불경의 보관처를 용궁(龍宮)에 두기도 하고 또 대 장경(大藏經)진리의 내용이 바다 속의 수많은 보배에 비유되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 다. 즉 용궁보각(龍宮寶閣)에서 유래된 것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자장스님의 진영을 봉안한 전각을 해장보각(海藏寶閣)이라고 한 것은 『삼국유사』에 이미 기록된 바와 같 이 자장스님이 중국으로부터 가지고 온 대장경을 통도사에 봉안하였다는 사실에 기인 한 것으로 보인다. 즉 “정관(貞觀) 17년(643)에는 자장율사가 삼장(三藏 : 經藏, 律藏, 論藏) 400여 상자를 싣고 돌아와서 통도사가 국내 최초의 대장경 봉안하였다. “(『삼국 유사』전후소장사리조)고 한 내용은 이미 삼국시대에 통도사가 국내 최초의 대장경 봉안(奉安) 사찰이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며, 나아가 이 대장경이 다른 사람 아닌 창건주 (創建主) 자장율사에 의하여 봉안되었던 사실을 감안하여 그 전각에 들어오는 문을 개산조당이라 하였고, 전각 자체를 해장보각이라고 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장보각 자장율사진영(海藏寶閣慈藏律師眞影)

    통도사의 개산조(開山祖)인 자장율사의 진영이다. 좌팔분면(左八分面)의 의자상이나 가부좌한 자세이며, 왼손에는 불자(拂子)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불자의 술을 만지고 있는 모습이다. 배경은 크게 2단 구성을 보여 준다. 상단은 짙은 녹색이고 하단은 돗자리를 묘사하고 있는데, 백색이 어서 강한 색채대비를 준다. 이 진영의 봉안처인 개산조당(開山祖堂)이 1727년(영조 3)에 건립되었으나, 진영의 조성연대는 1804년이므로 이 진영에 앞서는 자장율사의 진영이 봉안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홍색 가사와 녹색 장삼이 강렬한 색채대비를 보여주나, 같은 농염의 채색을 반복해 사용하고 있고, 음영이 표현된 필선은 힘이 빠져 조성연대가 조선후기임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안면(顔面)에서 풍기는 인상은 고승의 위엄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화사(畵師)는 성인(成仁)과 계한(戒閑)비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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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련 : 해장보각(海藏寶閣)
    寶藏聚玉函軸 보장취옥함축보배스런 경을 모아 옥함에 보관했네.
    集西域譯東土 집서역역동토서역에서 모아 동토에서 번역했네.
    鬼神護龍天欽 귀신호룡천흠귀신이 보호하고 천룡이 흠모하니
    標月指渡海筏 표월지도해벌마음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요 고해를 건너는 땟목이네.

  3. 통도사 삼십칠 조도품탑(三十七 助道品塔)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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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도사 개산조당의 앞에 자리한 석탑으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수행하는 37가지의 방법을 말합니다. 즉 4염처(念處), 4정근(正勤), 4여의족(如意足), 5근(根), 5역(力), 7각지(覺支), 8정도(正道) 등을 모두 합한 것입니다. 37보리도법(菩提道法)이라고도 하는데, 이러한 수행 방법을 통해서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통도사 장경각(藏經閣)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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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18세기 이후), 문화재자료 제144호

    장경각은 절에 내려오는 경전과 목판을 봉안할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주심포 맞배지붕 건물로 초창 및 중수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주변 건물들과 비교해 18세기 이후의 건물로 생각된다. 장경각은 통도사에 전해지는 혹은 외부에서 유입된 경판(經板)들을 보관하는 곳이다. 현재 박물관으로 이전된 장경각의 목판은 정시한(1625~1707)이 저술한 산중일기에도 등장하는 17세 초반 활동한 대 각수 연희가 발원하여 직접 제작한 목판들로서, 통도사에서 약 10km 떨어진 울산 운흥사(雲興寺)가 조선말기에 폐사될 때 옮겨온 중요한 경판들이 보관되어 있다.

    건물 안에는 목판(木版)장경을 봉안하였는데, 이들 목판 대장경을 강원(講院)의 교과과정에 들어 있는 중요 경전들로『능엄경』,『기신론현수소(起信論賢首疏)』,『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법수(法數)』,『사집(四集)』 등 15종의 경판이 있다. 따라서 통도사는 사찰의 교육기관인 강원을 통해 교육에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5. 통도사 세존비각(世尊碑閣)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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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1706년) 양산 통도사 석가여래 영골 사리 부도비 , 경남 유형문화재 제544호

    이 비각(碑閣)은 1706(숙종 32) 계파대사(桂坡大師)가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중수(重修)하고 석가여래의 영골사리비(靈骨舍利碑)를 세우면서 건립(建立)한 것으로 비석(碑石)에는 불사리의 행적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곧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사리를 모셔온 일과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泗溟大師)가 불사리(佛舍利)를 왜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크고 작은 2개의 함에 봉안하여 보관하였다. 그 후 한 개의 함은 문수대성(文殊大聖)께서 자장스님께 부촉하신 승지(勝地)이므로 통도사 금강계단에 다시 봉안토록 하였고, 또 다른 한 개의 함은 태백산(太白山) 갈반사에 봉안되었음을 석비(石碑) 전면(前面)에 기록(記錄)을 통해 알 수 있다.

    비문은 수사간(守司諫) 채팽윤(蔡彭胤 1669~1731)이 짓고 글씨는 승정원(承政院) , 도승지(都承旨) 이진휴(李震休)가 썼다. 석비 뒷면의 비음(碑陰)은 성능대사(性能大師)가 짓고 보윤대사(普允大師)가 썼는데, 이곳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행적(行蹟)과 함께 각지(各地)의 시주(施主)내용을 적고 있어 참고된다. 석비의 건립은 숙종(肅宗) 32년(1706)이며 높이는 2.5m, 폭 1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