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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1. 통도사 영각(影閣)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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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건물은 역대(歷代) 주지(住持) 및 큰스님들의 진영(眞影)을 봉안한 건물로 정면 8 칸 측면 3칸의 긴 장방형(長方形) 평면(平面)으로 된 팔작집이다. 초창연대는 분명치 않으며 현재의 건물은 1704년(숙종 30)에 지었다고 전한다. 처음에는 영자전(影子殿) 이라 불리다가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련 : 영각(影閣)
    偶尋樵者問山名 우심초자문산명우연히 나무하는 아이를 만나 산 이름을 물으니
    上方月曉聞僧語 상방월효문승어한밤중에 봉우리에 경쇠 소리가 있네.
    野鶴巢邊松最老 야학소변송최노하늘에는 달이 밝고 스님들 말씀이 들리고
    願得遠公知姓字 원득원공지성자아래로는 수풀이 성글고 지나가는 객이 보인다.
    半夜中峯有磬聲 반야중봉유경성들의 학은 가장 늙은 소나무에 둥지를 틀고
    下界林疎見客行 하계임소견객행독룡이 숨은 곳에 물이 맑음에 치우치고
    毒龍潛處水便靑 독룡잠처수편청원컨데 원공의 성자를 알고자해서
    焚香洗鉢過餘生 분향세발과여생향 사르고 발우 씻고 남은 생을 보내리.

  2. 통도사 불이문(不二門)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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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18세기 이후), 경남 유형문화재 제252호

    이 문은 1305년(충렬왕 31) 처음 지었으나 현재의 건물은 언제 중건되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세부수법으로 보아 조선 중기 이후의 것으로 생각된다. 내부는 매우 단조롭게 처리되어 종래 수법(手法)과는 달리 중앙의 대들보를 코끼리와 호랑이가 이마로써 받쳐 이고있는 형태를 취하였다. 이 역시 코끼리와 호랑이가 건물의 하중(荷重)을 이마에 서로 의지해 있는 것이 바로 불이(不二)의 도리(道理)를 나타내는 것이라 한다. 대들보위에 두터운 솟을 합장태를 삼각형으로 짜 그 부재 위에 장혀[長舌]를 걸 쳐 중도리(中道理), 하중도리(下重道理), 종도리(宗道理)를 얹어 서까래를 받도록 하였다. 이는 고식(古式)의 가구법(架構法)으로 흔히 볼 수 없는 형식이다.

    불이문 현판에 ‘원종제일대가람(源宗第一大伽藍)이라는 글씨는 송(宋)나라 미불(米連 : 號는 元章)의 필체이다. 이것은 통도사가 한국불교의 근원으로서 불교의 근원이고 근본인 계율중심도량이고, 부처님이 성도하신 후 최초에 설법하신 화엄도량임을 모두 포함한 함축성 있는 현판이라고 할 수 있다.

    불이문(不二門)의 불이(不二)의 뜻은 법계의 실상(實相)이 여여평등(如如平等)하 여 피차(彼此)의 차별이 없는 것을 ‘불이(不二)’라 하며 이 법계불이(法界不二)의 진리가 불법의 궤범(軌範)이므로 ‘불이법(不二法)’이라 하고 일체 성인이 모두 이 불이(不二)의 법에 의하여 진리에 취입(趣入)하므로 불이법문이라 한다. 따라서 여기서부터 청정한 불법도량의 중심부가 되며 불이(不二)의 진리로써 세속의 모든 번뇌를 벗어난 다는 뜻에서 해탈문 이라고도 한다.

  3. 통도사 황화각(皇華閣)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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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화각은 통도사의 스님들이 경(經)을 공부하는 강원건물로 천자각이라고도 한다. 초창은 1317년(충숙왕 4)에 이루어졌으며, 1647년(인조 27) 탄변화상(坦卞和尙)이 중건하고 1906년 성해화상(聖海和尙)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ㄴ자 평면으로 두 개의 건물을 합친 큰방이다. 이곳은 강원과 학승(學僧)들이 거처하는 기능을 갖고 있는 건물이다. 그리고 이들 건물은 일반 신도와 격리되도록 북쪽과 서쪽에서 출입하게 되어 있어 경학을 공부하는 공간답게 처리하였다.

    주련 : 황화각(皇華閣) - 천자각

    敎融海嶽恩廓乾坤 교융해악 은확건곤가르침은 산과 바다를 꾸리고 은혜는 하늘과 땅에 퍼지네.
    大護法不見僧過 대호법불견승과크게법을 보호하는 사람은 승려의 허물을 보지않고
    善知識能調物情 선지식능조물정선지식은 능히 세상 물정을 살필 줄 아네.
    百戰英雄知佛法 백전영웅지불법백전영웅은 불법을 알고
    再來菩薩說家常 재래보살설가상거듭 화현해서 보살은 일상 속에서 도리를 설해주네.
    永使蒼生離苦海 영사창생이고해영원히 중생들로 하여금 고해를 여의게 하고
    恒敎赤子有慈航 항교역자유자항항상 어린아이 같이 보살펴 자비의 배를 타게 하네.

  4. 통도사 원통방(圓通房)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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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통방과 감로당은 화엄전, 황화각과 함께 중로전의 대방(大房)이다. 원통방과 화엄전은 법회시 대중을 수용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조선 고종19년(1882)에 화엄전, 원통방, 감로당이 함께 소실되었고, 잇따른 화재로 1887년 덕명(德溟)대사가 중건했다고 한다.「통도사사적비」에 따르면 고종 19년(1882) 화엄전에서 실화하여 원통방과 감로당이 소실(燒失)되었으나 다음 해에 중건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불과 4년 만에 다시 감로당에서 실화하여 명부전과 함께 원통방, 화엄전까지 소실되었고 그 다음해인 1887년 덕명대사(德溟大師)가 중건했다고 한다. 이 건물은 정면 7칸, 측면 2칸 건물로 강원의 학인 대중방으로 쓰이고 있으며 이 건물과 동, 서 그리고 남쪽에 객실 3채가 있어 口자형 평면으로  구성되어 중앙에 중정(中庭)이 생겨 주택의 평면형과 같은 구조이다. 감로당을 비롯한 口자형 건물들은 약 86칸으로 거실, 마루, 부엌, 창고, 식당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원통방과 감로당은 원래 口字형 건물이었으나 2009년 원통방과 공양간 중창으로 지금은 다소 변화되었다. 감로당 동쪽 측면에 위치한다. 초창은 1341년(충혜왕 복위 2)이지만 영조 때에 탄해대사(坦亥大師)가 중건하였고 1886년 감로당과 함께 소실되고 다음해에 매예대사(每藝大師)에 의해 중건되었다. 원통방의 ‘원통’ 의미는 ‘관음보살 이근원통(耳根圓通)’에서 유래된 것이다.

  5. 통도사 감로당(甘露堂)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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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통방과 감로당은 화엄전, 황화각과 함께 중로전의 대방(大房)이다. 감로당은 사중 대중스님들의 일상생활에 따른 후원(後院)으로 사용 되었다.

    감로당은 고려 충혜왕 원년(1340)에 건립되었으나 조선 고종19년(1882)에 화엄전, 원통방과 함께 소실되었고, 잇따른 화재로 1887년 덕명(德溟)대사가 중건했다고 한다.「통도사사적비」에 따르면 고종 19년(1882) 화엄전에서 실화하여 원통방과 감로당이 소실(燒失)되었으나 다음 해에 중건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불과 4년 만에 다시 감로당에서 실화하여 명부전과 함께 원통방, 화엄전까지 소실되었고 그 다음해인 1887년 덕명대사(德溟大師)가 중건했다고 한다. 이 건물은 정면 7칸, 측면 2칸 건물로 강원의 학인 대중방으로 쓰이고 있으며 이 건물과 동, 서 그리고 남쪽에 객실 3채가 있어 口자형 평면으로 구성되어 중앙에 중정(中庭)이 생겨 주택의 평면형과 같은 구조이다. 감로당을 비롯한 口자형 건물들은 약 86칸으로 거실, 마루, 부엌, 창고, 식당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원통방과 감로당은 원래 口字형 건물이었으나 2009년 원통방과 공양간 중창으로 지금은 다소 변화되었다. 감로당 동쪽 측면에 위치한다. 초창은 1341년(충혜왕 복위 2)이지만 영조 때에 탄해대사(坦亥大師)가 중건하였고 1886년 감로당과 함께 소실되고 다음해에 매예대사(每藝大師)에 의해 중건되었다. 원통방의 ‘원통’ 의미는 ‘관음보살 이근원통(耳根圓通)’에서 유래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