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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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1. 통도사 원주실(院主室)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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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양간과 후원의 사무, 노무를 주관하는 곳으로서 공양과 각종 재를 준비하고 객사를 관리하는 곳이다.

    * 각종 천도재나 49재 그리고 객사(숙박) 등에 대한 상담, 접수 : 055-382-7186

  2. 통도사 공양간(供養間, 공양 짓는 곳)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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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부대중과 일반 내방객의 공양을 짓는 곳으로 아궁이에 불을 지펴 가마솥으로 공양을 짓는데, 사시마지종(오전 10시 30분에 소종 5타)을 치면 먼저 공양을 불기에 담아서 각 법당으로 가져간다. 통도사 전통으로 이 소임은 강원에 학인스님들이 담당하고 있다.

  3. 통도사 후원(後院, 식당 주방)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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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부대중과 일반 내방객이 자유롭게 공양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약 천여명의 대중이 동시에 공양할 수 있는 좌석이 준비되어있으며, 서예나 회화 작품 등의 전시가 가능하도록 조명시설이 갖춰져 있다.

  4. 통도사 영산전(靈山殿)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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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1714년), 보물 제1826호 영산전은 하노전(下爐殿)의 중심 건물이다. 남향한 영산전의 전방 좌우에는 극락전과 약사전이 동서에 놓여 있고, 그 중앙 지점에는 신라 말기의 3층석탑 1기가 있다. 이 탑은 현 위치에서 동북쪽 약 1.5m 지점에 경사진 채 있었으나 최근에 현 장소로 이동하여 복원되었다.

    영산전의 초창 연대는 미상이나 현 건물은 숙종 30년(1704) 송곡대사(松谷大師)에 의하여 중건 된 것으로 짐작된다. 현재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는 <영산전천왕문양중창겸단확기(靈山殿天王門兩重創兼丹?記)>에 따르 면, 1713년 봄 영산전과 천왕문이 화재로 소실되었고 1714년 청인(淸印), 정안(正眼), 낭일(朗日), 치원(致源) 등 4분의 대선사가 중창하였다고 한다. 건물의 구조는 전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계 양식의 맞배지붕 양식이며 내외 벽화는 매우 주목되는 작품이다. 외벽의 그림은 풍화(風化)를 받아 많이 훼손되었으나 내벽의 그림은 그런대로 잘 남아있다. 특히 내부 벽화의 다보탑을 비롯하여 양류관음(楊柳觀音), 나한상, 여러 가지 경설(經說)의 내용들이 품격 높은 수작(秀作)으로 국내에서 보기드문 희귀한 작품이다. 서쪽 벽면을 거의 다 차지하였으며 탑신에는 석가여래와 다보여래가 분반좌(分半座)하는 『법화경』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묘사하였다. 탑의 주변에는 보살상과 제자상이 시립(侍立)해 있고 탑문(塔門)이 열린 내부로 2여래(二如來)가 병좌(竝坐)한 모습이며 탑 둘레는 온통 영락과 풍경장엄 속에서 하늘에는 오색(五色) 구름이 휘날리고 있다. 그림은 애석하게도 아랫부분이 손상되었지만 상태는 좋은 편이다.

    그외에도 내부 불벽(佛壁)에는 양류관음(楊柳觀音)이라든지 나한상과 함께 산수화풍의 그림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벽면의 요소 요소에 적당한 구도를 잡아 여러 가지 경설의 내용을 그림으로 나타내고 있다. 건물의 외부 벽면에 남아 있는 노승(老僧) 공양도(供養圖)의 경우 많이 훼손되었으나 그림은 품격이 높은 수작이다.

    건물의 내부 천전에는 우물천정을 조성하여 고식(古式)의 연화문(蓮花紋) 또는 보상화문(寶相華紋)으로 단청하였다. 대들보에 그린 황룡, 청룡의 그림이 매우 화려하게 전개되고 있다. 영산전의 본존불로는 석가모니불상을 봉안하였고, 그 옆으로 돌아가면 거대한 팔상영화를 안치하였다. 팔상도라고도 하는 이 그림은 석가여래의 일생을 여덟 가지 중요 사실들로 정리하여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 외에도 영산전에는 『석씨원류응화사적』 벽화는 현재 48점이 그려져 있는데, 이 가운데 석가모니 부처님의 행적을 표현한 것이 26점이고, 전법제자의 행적을 표현한 것이 22점이 있어 주목된다. 영산전의 본존불로는 석가모니불상을 봉안하였고, 현존 하는 팔상도중 최고의 수작이라고 평가받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를 다른 팔상도나, 대광명전 삼신탱을 조성한 임한의 영산회상도가 있었으나, 현재 두 불화는 박물관으로 이전되었다. 팔상도의 조성은 영조 51년(1775)으로 연대뿐만 아니라 당시 불화(佛畵)의 화풍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대형그림이다.

    탱화
    영산전 팔상탱(通度寺 靈山殿 八相幀) - 보물 1041호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그린 가로 151㎝, 세로 233.5㎝의 비단에 채색한 그림이다. 팔상탱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도솔천에서 코끼리를 타고 사바세계로 내려오는 장면인 도솔래의상, 석가모니 부처님이 룸비니공원에서 마야부인의 옆구리를 통해 출생하는 모습을 그린 비람강생상, 태자가 성문 밖의 중생들의 고통을 관찰하고 인생무상을 느끼는 장면의 사문유관상,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가하는 장면을 묘사한 유성출가상, 설산(雪山)에서 수행하는 모습을 그린 설산수도상, 태자가 수행 중 온갖 유혹과 위협을 물리치는 수하항마상, 부처님께서 녹야원에서 최초로 설법하는 모습을 나타낸 녹원전법상, 부처님께서 쌍림수 아래에서 열반에 이르는 모습을 표현한 쌍림열반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 나라에서의 팔상탱은 조선전기의 예로 석보상절, 월인석보 등에 실린 판화가 있으며 후기에 들어서면서 통도사의 팔상도와 같은 대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통도사의 팔상탱은 대작이면서도 구성이나 색채의 조화가 뛰어난 작품으로 조선 3대 불모(佛母)로 평가되는 유성(有誠) 스님의 현존 유일한 팔상탱화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각 폭은 거의 빈 공간을 남기지 않고 건물과 나무, 구름 등의 배경으로 적절하게 구도를 나누어 해당되는 장면을 잘 표현하였다. 또한 각 묘사된 장면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글을 써 놓아 이해를 돕고 있다. 산악이나 바위는 뛰어난 필치로 처리되었고 인물의 묘사도 생동감이 넘친다. 화원(畵員) 포관(抱冠), 유성(有誠), 정관(定寬), 지언(志言), 단오(丹悟), 수민(守旻), 지열(志悅), 오수(悟守), 정순(定諄), 두명(斗明), 상오(尙悟), 광신(廣信), 후문(厚文) 등에 의해 1775년(영조 51년)에 조성된 것이다. 현재 보물 1041호로 지정되어 있다.

    도솔래의상(兜率來義相)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장면 / 조선(1775年), 견본채색(絹本彩色), 233.5 × 151cm
    석가모니부처님이 호명보살로서 도솔천에 머물다가 마침내 사바세계로 내려오는 주제로 흔히 네 가지 장면이 묘사된다. 마야궁 안의 마야부인이 의자에 앉아 호명보살이 6개의 이빨을 가진 흰 코끼리를 타고 내려오는 꿈을 꾸는 장면, 입태하는 장면, 상(相)을 잘 보는 바라문에게서 꿈의 해몽을 듣는 왕과 왕비의 모습 등이 주 내용으로 묘사된다. 이 때 바라문이 이르기를 “반드시 태자를 잉태할 것이며 훗날 출가를 하면 정각을 이루어 삼계중생을 제도할 것”이라 하였다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과거에 쌓은 공덕으로 도솔천왕으로 머물다 부처님이 되기 위해 인간 세상에 태어나기 전의 장면들을 묘사한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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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룸비니 동산에서 탄생하는 장면 / 조선(1775年), 견본채색(絹本彩色), 233.5 × 151cm
    부처님의 탄생과 관련된 내용으로 대개 여섯 장면이 묘사된다. 따뜻한 봄날에 마야부인이 궁중을 떠나 궁녀들과 룸비니 동산에 올라 무우수 (無憂樹) 꽃가지를 붙들고 서서 오른쪽 옆구리로 태자를 낳는 장면, 하늘에서 제석천왕이 비단을 가지고 내려와 태자를 받으며 모든 천왕들이 온갖 보물을 공양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태자가 땅에서 솟아오른 연꽃을 밟고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움직이며 한 손은 하늘을, 또 한손은 땅을 가리키면서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 이라 외치는 장면, 아홉 마리의 용이 깨끗한 물을 토하여 태자를 목욕시키는 장면, 태자를 가마에 태워 궁궐로 돌아오는 장면, 아식타 선인을 불러 관상을 보이는 장면 등이 표현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정반왕과 마야부인의 아들로 이 세상에 태어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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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사문 밖에 나가 관찰하는 장면 / 조선(1775年), 견본채색(絹本彩色), 233.5 × 151cm
    태자가 사방의 문으로 나가서 중생들의 고통을 관찰하고 인생무상을 느끼는 장면이 네 가지로 묘사된다. 동문으로 나가서는 노인을 보고 사색 하는 장면, 남문 밖에서는 병자를 보고 인생무상을 느끼는 장면, 서문으로 나가서는 장례행상을 보고 죽음을 절감하는 장면, 북문 밖에서는 사문을 보고 깨달아 출가를 결심하는 장면 등이 표현된다.
    풍요롭고 화려한 성(城) 안에서만 자라던 태자가 성 밖으로 나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실상을 보고 출가를 결심하기까지의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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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성을 넘어 출가하는 장면 / 조선(1775年), 견본채색(絹本彩色), 233.5 × 151cm
    29세 되던 해 2월 8일, 태자가 왕위를 버리고 정반왕의 반대에도 성을 넘어 출가하는 내용이 보통 여섯 가지 장면으로 묘사된다. 태자를 감시하던 야수분인과 시녀 그리고 5백 장사들이 잠에 취해 있는 장면, 태자가 마부 찬타카에게 궁성을 뛰어 넘을 것을 지시하는 장면, 사천왕이 태자가 탄 말발굽을 하나씩 받치고 성을 넘으니 제석천이 호위를 하며 하늘에 오색광명이 환하게 비치는 장면, 마부 찬타카가 태자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눈물을 흘리며 태자의 금관과 용포를 가지고 궁궐로 돌아가는 장면, 정반왕과 태자비가 태자의 의관을 받고 슬피 우는 장면 등이 표현된다.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으로 얽힌 삶에 대해 번민하던 태자가 마침내 궁궐을 떠나 출가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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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설산에서 수도하는 장면 / 조선(1775年), 견본채색(絹本彩色), 233.5 × 151cm
    설산에 들어간 태자가 대신들을 보내어 환궁을 종용하는 정반왕의 권청을 물리치고 선인들과 함께 수도에 정진하는 내용이 일곱 장면으로 묘사된다. 정반왕이 교진여(橋陳女)등 5인의 신하를 보내는 장면, 이들이 태자에게 돌아가기를 간청하는 장면, 환궁을 거절한 태자에게 궁중에서 양식을 실어 보내는 장면, 6년 고행의 무상함을 깨우친 태자에게 목녀(牧女)가 유미 죽을 바치는 장면, 제석천왕이 못을 만들어 목욕을 하게 하고 천인이 가사를 공양하는 장면, 태자가 수도하면서 모든 스승을 찾는 장면, 풀 베는 천인에게서 길상초를 보시 받는 장면 등 많은 내용이 그려지고 있다.
    태자가 출가해 설산(雪山)으로 들어가 궁궐로 돌아오라는 청을 거절한 채 설산에서 수행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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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보리수 아래서 마군을 항복시키는 장면 / 조선(1775年), 견본채색(絹本彩色), 233.5 × 151cm
    보리수 아래에서 48일을 정진하시여 지금까지 그를 유혹하던 온갖 마중(魔衆)을 항복받고 새벽별을 보시고 오도(悟道)하시는 모습을 대개 다섯 장면이 묘사된다. 마왕 파순이 마녀로 하여금 부처님을 유혹하게 하는 장면, 마왕의 무리들이 코끼리를 타고 부처님을 위협하는 장면, 마왕이 80억 마군을 몰고 와 부처님을 몰아내려고 하나 창칼이 모두 연꽃으로 변하는 장면, 지신(地神)이 태자의 전생공덕과 계행을 마왕에게 증명하는 장면, 마군들이 작은 물병을 사력을 다해 끌어내려고 하나 조금도 요동하지 않고 오히려 돌비와 바람이 쏟아져 80억 마군들을 물리치는 장면, 드디어 마왕의 무리들이 항복하고 모든 천신, 천녀, 군중들이 수희 찬탄하는 장면들이 묘사된다.
    석가모니께서 보리수 아래 금강보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선정(禪定)에 들자 부처님의 성도(成道)에 위협을 느낀 마왕 파순이 여러 가지 비술로 방해하는 모습과 석가모니 부처님이 마군들을 항복시키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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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설법하는 장면 / 조선(1775年), 견본채색(絹本彩色), 233.5 × 151cm
    무상정각을 이루신 부처님이 녹야원(sarnath)에서 처음으로 사제(四諦)의 설법을 하시면서 최초의 다섯 제자가 탄생되는 모습과 함께 그 후 45년 동안 설법하여 중생을 제도하시는 모습 등이 보통 상하단에 구분되어 네 가지로 묘사된다. 상단에는 노사나불의 모습을 보이신 석가모니부처님이 처음으로 화엄경을 설하는 장면이 크게 펼쳐지고, 하단에는 세존께서 녹야원에 이르러 교진여 등 5인의 비구에게 고, 집, 멸, 도의 사성제를 설하는 장면, 수달다 장자가 아사세 태자의 동산을 사서 기원정사를 건립하고자 하는 장면, 흙장난을 하고 놀던 어린이들이 부처님께 흙을 쌀로 생각하고 보시하자 부처님이 이것을 탑으로 바꾸는 장면 등이 그려진다.
    부처님께서 정각(正覺)을 이룬 후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설법 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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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사라쌍수 아래서 열반에 드시는 장면 / 조선(1775年), 견본채색(絹本彩色), 233.5 × 151cm
    80세가 되신 부처님이 이월 보름 쿠시나가라(kusinagara)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마지막 설법을 마치시고 열반에 드시는 내용으로 보통 세 가지 장면이 묘사된다. 사라쌍수 아래서 길게 누워 열반에 드신 부처님과 그 주위로 비탄에 잠겨 있는 사부대중과 천룡팔부중의 모습들, 노가섭이 크게 슬퍼하자 부처님이 관 밖으로 두 발을 내보이시는 장면, 아나율존자가 하늘에 올라가 부처님의 열반소식을 전하자 마야부인이 천녀들과 허공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꽃을 뿌려 공양하는 장면, 관이 성 밖으로 저절로 들려 나가는 장면, 다비를 하니 사리가 비 오듯 쏟아지는데 이 사리를 차지하려는 여덟 나라의 왕들에게 바라문이 골고루 나누어주는 장면 등이 상세하게 표현되고 있다.
    쿠시나가라 니련선하(泥蓮禪河) 사라쌍수(娑羅雙樹) 아래서 80세의 생애를 마치고 열반에 든 모습을 그린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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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산전 벽화 - 보물 제1711호
    통도사 영산전 벽화는 우리나라 사찰벽화로서는 유일한 『法華經』 견보탑품(見寶塔品)변상도를 비롯해 조선후기 석가여래 팔상도의 도상에 기본이 된 『釋迦如來應化事蹟』의 내용을 그린 것으로 18세기 불교 회화사상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다.

  5. 통도사 극락보전(極樂寶殿)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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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1801년), 경남 유형문화재 제194호

    극락전의 초창은 고려 공민왕(恭愍王) 18년(1369) 성곡대사(성곡대사)에 의하였고, 현재의 극락전은 건물 해제 수리시에 발견된 상량문에 의해 순조1년 (1801)에 중건하였음이 확인되었다. 법당에는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極樂世界)의 교주이신 아미타불(阿彌陀佛)과 좌우에 협시보살(脇侍菩薩)로 관음(觀音), 세지(勢至) 보살상을 봉안하였다. 건물은 전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양식이며 외벽(外壁)에는 험한 바다를 건너 극락세계로 향하는 소위 반야용선(般若龍船)을 표현하였다. 배의 모습은 용두(龍頭)와 용미(龍尾)를 나타내었고 그 전후에는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 과 지장보살로 보이는 양대(兩大) 보살이 서서 배를 인도하며, 배에는 합장한 사람들이 가득 차 있다. 이 그림은 근세의 제작이나 그 구도나 내용이 보기 드문 우수한 작품으로 주목되고 있다. 극락세계란 이 세계로부터 서쪽으로 10만억 불국토를 지나가면, 이 우주(宇宙)공간에서 가장 즐거운 세계가 있으며 이곳에서는 아무런 고통이 없으며, 편안하고 즐거운 안양국(安養國)또는 극락세계라고 불려지는 세계가 있다고 한다. 그 세계에는 현재 아미타부처님이 설법하시는데 그 세계에서 왕생하는 사람은 연화(蓮花)위에 화생(化生)한다고 말하여 진다. 즉 연화(蓮花)생이다. 모든 것은 생각만 하면 저절로 이룩되고 땅은 유리로 이룩되었으며 . 온갖나무와 꽃과 궁전이 모두 법(法)을 설하여 이곳에 왕생하는 중생은 필경 성불한다고 하였다.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불은 과거 인행시(因行時) 법장비구(法藏比丘)로서 48원(願)을 성취하여 성불하였으며 극락세계를 장엄하여 누구든지 일념으로 아미타불을 열 번만 부르면 극락세계에 왕생케 한다는 일념왕생원(一念往生願)의 믿음을 지니는 부처님이다. 즉 아미타불(阿彌陀佛)은 한량없는 빛으로서 ‘무량광(無量光 : Amitabha)' 또는 한량없는 생명(生命)으로서의 ’무량수(無量壽, Amitayus)' 등으로 번역되므로, 토함산 석굴암의 경우 ‘수광전(壽光殿)’이란 현판을 갖게도 되었다. 아무튼 불교신앙의 종교적 이상국토를 상징하는 부처님과 전각(殿閣)이 곧 극락전(極樂殿)이며, 이를 무량수전(無量壽殿)이라고 할 때도 있다.


    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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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1740年), 견본채색(絹本彩色) / 235 × 295cm

    극락보전은 서방극락정토(西方極樂淨土)를 관장하고 중생들의 극락왕생을 인도하는 아미타부처님을 모신 불전(佛殿)으로 무량수전(無量壽殿) 또는 미타전(彌陀殿)이라고도 한다. 아미타신앙은 살아서는 수명장수(壽命長壽)하고 죽어서는 극락왕생(極樂往生)을 바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소망을 근거로하여 불교의 전래와 함께 가장 대중적으로 신앙되었다. 아미타불이 삼존으로 나타날 때는 관음(觀音)과 세지(勢至) 혹은 지장보살(地藏菩薩)이 좌우 협시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림으로 그려질 경우 내용에 따라 왕생(往生)자를 서방극락세계로 맞이해 가는 장면을 그린 아미타 내영탱(阿彌陀來迎幀)과 관무량수경의 내용을 표현한 관경변상탱(觀經變相幀), 그리고 이 작품과 같이 본존(本尊)을 중심으로 8대보살과 사천왕 (四天王) 및 여러 성문중(聲聞衆)이 복잡하게 구성되는 아미타 극락회상탱(阿彌陀極樂會上幀) 등 세가지 형식이 주류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