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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통도사 약사전(藥師殿)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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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18세기), 경남 유형문화재 제197호

    약사전은 극락전과 함께 공민왕 18년(1369) 성곡대사(星谷大師)가 초창하였으며 이후의 중건에 대하여는 알 수 없으나 18세기초 극락전과 함께 중건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건물양식으로 보아 18세기 건물은 전면 3칸, 측면 1칸으로 하여 주칸에 공포를 배치하지 않고 다포식이면서도 앞뒷면에만 공간포를 배치한 점이 특색이다. 따라서 측면에는 평방(平方)을 생략하고 있는데 그 기법도 다른 건물과 비교해 보면 재미있는 처리라 할 수 있다.
    건물 내부에는 약사여래를 봉안하였으며, 현재 박물관으로 옮겨진 후불탱화(後佛幀畵)는 영조 51년(1775)에 그려진 것으로 약사여래와 함께 일광(日光), 월광(月光)보살을 위시하여 제대보살(諸大菩薩) 및 신장상(神將像)등을 함께 그렸다.

    약사여래는 동방정유리세계(東方淨留璃世界)의 교주로서 과거 인행시(因行時)에 십이대원(十二大願)을 발(發)하여 이 세계 중생의 질병을 고치고 목숨을 연장케 하며, 일체의 재화를 소멸하고 의식(衣食)을 구족하게 하여 부처님의 원만행(圓滿行)을 닦아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증득하게 하는 부처님이다. 과거에 약왕이라는 이름의 보살로 수행하면서 중생의 아픔과 슬픔을 소멸시키는 열두 가지 대원을 성취하였다. 즉 ‘약사십이대원(藥師十二大願)’의 공덕으로 성불하여 중생의 병고를 치료하므로 ‘대의왕불(大醫王佛)’이라고도 한다.


    약사여래후불도(藥師如來後佛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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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1775年), 견본채색(絹本彩色) / 287 × 210cm, 경남유형문화재 419호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불보살 신앙 가운데 하나인 약사여래를 봉안하고 있는 약사전(藥師殿)에는 주불이신 약사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일광보살(日光菩薩)과 월광보살(月光菩薩)을 협시로 봉안한다.약사여래후불도는 약사전에 봉안되기도 하고 대웅전의 격을 높인 대웅보전 안에 석가모니불·아미타불과 함께 약사여래를 모시고 그에 따라 후불을 각각 조성하여 모시기도 하나 그 형식은 다르지 않다.

    약사경(藥師經)에 의하면 약사여래는 과거 보살행(菩薩行)을 닦을 때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고뇌를 제거한다는 내용을 담은 12가지 서원(誓願)을 세워 부처님이 되었다. 따라서 약사여래는 현세 이익적 성격이 강한 부처님으로, 특히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하는 대중들의 간절한 바람속에 널리 신앙되었다. 약사여래가 머물고 계신 곳은 청정하고 안락한 동방유리광세계(東方琉璃光世界)라고 하며, 일광(日光)보살과 월광(月光)보살이 협시로 등장 한다. 그리고 호법신장(護法神將)으로는 12신장이 출현한다고 한다.

    보통 약사여래가 불상이나 불화로 표현될 때는 왼손에 약합(藥函)을 지니는 것을 징표로 하며, 약사전(藥師殿)에 모셔진다. 그러나 통도사의 약사불화는 약합을 지니지 않고 설법인(說法印)을 취하고 있으며, 불ㆍ보살 주위로 다양한 표정을 띤 12신장과 사천왕을 배치하여 화면에 활력을 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 나라의 약사탱화는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약사여래 독존도 2.약사여래 삼존도 3.삼존·팔대보살·십이지신상 등을 함께 그리는 군도(群圖) 형식 4.동방유리광세계의 모습을 묘사한 동방정토변상도인데, 그 가운데 삼존도와 군도가 가장 많다. 군도형식은 주로 조선시대 후기에 많이 나타나는데, 이 시기에 조성된 송광사 약사전의 약사여래후불도를 도해(圖解)하면서 그 각각의 의미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균형잡힌 비례의 당당한 모습으로 중앙의 높은 연화대좌 위에 앉아 계시는 약사여래(1)는 십이대원(1. 자신의 광명이 두루 비쳐서 모든 중생이 자기와 같이 되며, 2.그 광명을 보고 중생이 어둠에서 벗어나 지혜로워지며, 3.중생으로 하여금 필요한 물건을 모두 얻게 하며, 4.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대승교에 들어오게 하며, 5.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깨끗한 업을 지어 삼취정계를 갖추게 하며, 6.일체의 불구자·병고자들이 그 이름을 듣고 지극한 마음으로 칭념하면 다 낫게 하며, 7.여러 가지 병과 가난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을 안락하게 하여 무상보리를 증득하게 하며, 8.여인으로서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면 대장부의 모습을 갖추어 깨달음에 이르게 하며, 9.천마·외도의 사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모두 정견을 얻게 하며, 10.악법 등으로 옥에 갇혀 고통을 받는 자가 그 이름을 듣고 외우기만 하여도 고난을 겪지 않게 되며, 11.일체 중생의 기갈을 면하게 하고 배부르며 온갖 기쁨을 누리게 되며, 12.가난하여 의복과 장신구가 없는 이에게 그 이름을 듣고 외우기만 하여도 원하는 대로 의복과 장신구를 얻을 수 있게 한다)외에도 극락왕생을 원하는 자, 악귀를 물리쳐서 횡사를 면하고 싶은 자, 온갖 재앙으로부터 보호받고 싶은 자들이 약사여래의 명호를 부르면서 발원하면 구제받을 수 있다고 약사경(藥師琉璃光如來本願功德經)에 설해져 있다.

    또 외적의 침입과 내란, 성수(星宿)의 괴변, 일월(日月)의 괴변, 비바람, 가문, 질병의 유행 등 국가가 큰 재난에 처하였을 때에도 약사여래의 본원력을 통하여 구제받을 수 있다고 하였으며 이러한 온갖 변고를 치유하는 본원력의 상징은 선정인(禪定印)을 취한 수인 위의 약함에 함축적으로 표현된다.

    협시보살로 약사여래의 왼쪽에 일광보살, 오른쪽에 월광보살이 그려진다. 일광보살은 번뇌를 제거하고 광명을 가져다 주며 주로 해를 보관에 얹고 있거나 손에 들고 있다. 월광보살은 달을 보관에 얹고 있거나 손에 들고 있으며 이 달은 중생 인도(引導)의 완성을 의미한다. 일광보살 뒤로는 문수보살과 약왕보살이, 월광보살 뒤로는 보단화보살과 약상보살이 계시는데, 이들은 모두 약사여래의 팔대보살에 속한다. 특히 문수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께 부처님들의 명호, 그 근본 원과 공덕에 대해 청법함으로 인해 약사경이 설해지게 된 연유가 되었고, 석가모니불께서는 그것은 오로지 업장에 얽힌 중생들을 제도하고 중생들의 이익과 안락을 주기 위함이라 찬탄하셨다.

    그 둘레에는 약사정토를 지키는 열두 야차대장이 배치되어 있다. 이들은 약사십이신장으로서,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에 해당된다. 각 야차대장의 명칭을 보면, 궁비라(子), 벌절라(丑), 미기라(寅), 안저라(卯), 안리라(辰), 산저라(巳), 인달라(午), 파이라(未), 마호라(申), 진달라(酉), 초두라(戌), 비갈라(亥) 등 열두 야차대장들이다. 이들은 모두 부처님께 귀의하여, 일체 중생을 보호하며 모든 고난에서 벗어나게 하고 원하는 바를 성취하도록 하겠다고 발원하였다.

    이상에서와 같이 약사여래후불도는 고난의 해탈과 함께 현세 이익과 정토왕생 사상을 모두 포괄하는 약사신앙을 총체적으로 시각화하여 보여 주고 있는 불화라 하겠다.


  2. 통도사 삼층석탑(三層石塔)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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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제1471호

    영산전 앞에 서 있는 이 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에는 기둥모양이 표현되고 특히 아래층에는 안상(眼象)이 얕게 조각되어 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을 교대로 올려 조성하고, 지붕돌 처마의 곡선처리와 귀퉁이에서의 치켜올림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붕돌 밑면에 새긴 4단의 받침도 탑의 외형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부분으로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탑 앞의 배례석과 함께 통도사의 석조문화재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배례석은 직사각형으로 연화무늬를 조식하였는데 음각된 명문(銘文)에 의하면 1085년(선종 2) 고려 전기에 건립된 것을 알 수 있다. 석탑은 전체 높이가 약 3.5m이고 구성은 4장의 큰 장대석(長臺石)을 다듬어 지대석(地臺石)을 설치하고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양식인 이중 기단을 형성하였다. 상층 기단에는 모서리에 각각 우주(隅柱)를 새겨넣고 그 사이에 탱주(撑柱)를 두었으며, 하층 기단에는 각 면에 안상(眼象)을 3개씩 조각하였다. 이러한 형식은 석탑의 장식적 기능을 강조하던 통일신라시대 말기, 즉 9세기 이후의 특징이다.

    각 탑신에는 우주만 새겼을 뿐 별다른 조각은 없으며 옥개석(屋蓋石)은 옥개받침을 4단으로 축소시키고 있어 역시 시대성을 반영한다. 상륜부는 3층 옥개석 위에 2단 받침형의 갑석을 가지는 노반(路盤)을 설치하고 그 위에 복발(覆鉢)과 보개(寶蓋)가 남아 있는데 노반 이상은 원래 이 탑의 부재였는지 의문이다. 이처럼 석탑 기단에서 불상이 발견된 예로 경주의 미탄사지(味呑寺址) 삼층석탑과 경주 남산의 천룡사지 삼층석탑(天龍寺址三層石塔:보물 1188), 그리고 목탑의 경우 부여 군수리사지(夫餘軍守里寺址:사적 44)의 목탑지 등이 알려져 있다. 이러한 예는 지진구(地鎭具), 즉 탑을 건립하기 전에 땅의 힘을 누르기 위해 매납된 유물이거나, 혹은 사리를 봉안하는 탑의 건립과정에서 소요되는 여러 단계의 의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건탑의식(建塔儀式)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이 탑은 1987년 해체 복원시 기단의 맨 윗돌에서 조선시대의 백자가 발견되어 이전에도 탑의 보수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현재 보물 제1471호 로 지정되어 있다.

  3. 통도사 화엄전(華嚴殿, 기도접수처)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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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엄전(華嚴殿)은 원통방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정면 7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이 자리는 원래 1368년(공민왕 17)에 초창된 건물이 있었고, 1762년(영조 38)과 1883년(고종 20)에 소실되었다가 다시 1887년에 구련대사(九蓮大師)에 의하여 중건된 건물들이 있었으나 현재의 건물은 1970년 새로 건립된 콘크리트로 된 건물이다. 이곳은 기도접수, 신도등록, 시주확인서 발급 등의 종무를 보는 곳이다. 신도들의 휴식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4. 통도사 만세루(萬歲樓, 불교용품점)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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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19세기), 경남 유형문화재 제193호

    만세루는 영산전의 정면 남쪽에 위치하며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집으로, 현재의 건물은 1746년(영조 22) 영숙대사(靈淑大師)가 중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여러 차례의 보수가 있었다. 이 건물은 본래 법회나 법요식을 거행할 때 사용하던 누각으로 창건 연대를 알 수 없으나 규모는 비교적 큰 편이며(162㎡) 전면 기둥에는 주련(柱聯)이 있으며, 어간의 좌우 기둥 상부에는 밖으로 용두(龍頭)가 새겨져 있고 안으로는 물고기 꼬리 모양의 용미(龍尾)가 새겨져 있다. 이는 출입구가 되는 정간(正間)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공포의 쇠서는 아래 윗몸에 연꽃과 연봉이 새겨져 있고 내부는 연등천장으로 되어 위엄이 느껴진다. 원래 누각은 땅에서 높이 들려 있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건물은 돌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누각이 아니면서 누(樓)라고 한 것을 보면 초창때는 누각 형식의 건물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은 건물 내부에 우물 정(井)자 모양의 우물마루가 깔려 있고 주로 법요의식 때 사용되었으며, 성보박물관이 새워지기 전에는 전시관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경남유형문화재 제193호로 지정되어 있다.

    주련 : 만세루(萬歲樓)
    四海浪平龍睡隱 사해랑평용수은온 세상의 파도 잔잔하니 용이 숨고
    九天雲靜鶴飛高 구천운정학비고온 하늘의 구름 고요하니 학이 높이 날도다.
    千古金沙灘上水 천고금사탄상수천고(千古)의 세월을 금사위로 물이 흐르니
    琅琅猶作誦經聲 랑랑유작송경성낭낭히 들려오는 경 읽는 소리를 짓고
    天下溪山絶勝幽 천하계산절승유천하의 계곡 깊은 산 빼어난 경치 속에
    誰能把手共同遊 수능파천공동유뉘라서 능히 함께 하지 않으리요.

  5. 통도사 범종각(梵鍾閣)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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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19세기)

    범종각은 천왕문(天王門)을 들어서서 바로 남쪽에 위치한다. 이 건물은 2층 누각형식의 건물이다. 건물의 초창은 숙종 12년(1686) 수오대사(守梧大師)에 의해 이루어졌으나 현재의 건물은 원래의 건물이 아닌 중수된 건물이다. 건물은 전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기둥을 층단주(層斷柱)로 구성하여 하층은 사방을 터서 계단을 마련하여 상층으로 오를 수 있게 하였으며, 상층 주변에는 계자난간 을 둘러 장식하고 활주(活柱)는 상층 마루에 얹도록 하였다. 지붕은 팔작누각형(八作樓閣形)이며 내부 상하층에는 범종(梵鐘), 홍고(弘鼓), 목어(木魚), 운판(雲板) 등 사물(四物)을 비치하고 있다.

    불가의 종을 범종이라고 하는데 ‘범(梵)은 범어(梵語) ’브라흐마(Brahma)'를 음역(音譯)하여 범(梵)이라 한 것이다. 즉 ‘청정하다’ 또는 숙정(淑淨)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범종이란 “청정한 불사(佛寺)에서 쓰이는 맑은 소리의 종”이란 의미를 지닌다. 하겠다.

    불전사물은 조석 예불(禮佛)의식에 사용되는 불구인데 이들은 모두 소리를 내는 도구(道具)이다. 범종을 치는 것은 지옥중생을 위하여, 홍고(弘鼓)는 축생의 무리를 위하여, 목어는 수중(水中)중생을 위하여, 그리고 운판은 허공의 날짐승을 위하여 사용된다. 물론 목어의 유래는 고기는 잠잘 때도 눈을 감지 않으므로 수행자로 하여금 경책하게 하는 뜻도 지니고 있으나 이들 사물(四物)은 태(胎), 난(卵), 습(濕), 화(化), 4생(四生)의 중생들을 위하여 치는 것으로 돼 있다. 범종각의 대종(大鍾)은 본래 이 건물 초창 당시 함께 조성되었으나 근래의 신종(新鍾)을 주조(鑄造)하여 함께 두었고 홍고(弘鼓) 역시 최근에 새롭게 만들었다.
     주련 : 만세루(萬歲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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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禪窓夜夜梵鍾鳴 선창야야범종명선창(禪窓)에 밤마다 범종이 울리니
    喚得心神十分淸 환득심신십분청심신이 십분 맑아짐을 얻네.
    檜樹蒼蒼山勢頑 회수창창산세완창창한 노송나무 숲 완고한 산세 속에
    葉間風雨半天寒 엽간풍우반천한숲 사이로 비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오네.
    老僧出定忘聲色 노승출정망성색노승은 선정(禪定)에서 깨어 빛과 소리 잊고
    頭上光陰似轉丸 두상광음사전환머리 위로 광음은 총알처럼 빠르네.
    玉鏡涵空波不起 옥경함공파불기맑은 물 잔잔히 흐르고
    煙繞繞坐雨初收 연환요좌우초수자욱한 안개 속에(푸릇푸릇한 산세에 감겨) 비가 개어
    牢籠景象歸冷筆 뇌롱경상귀냉필아름다운 경치는 한데 모여 적적함으로 돌아가고
    揮斥乾坤放醉眸 휘척건곤방취모거친 하늘과 땅 취한 눈에 어리는 듯.
    白水低徊氣尙秋 백수저회기상추흰 머리에는 추상같은 기운 감도네.
    紅塵謝絶心如水 홍진사절심여수시끄러운 시곡을 애의니 마음은 물과 같고
    鷲背山高風萬里 취배산고풍만리독수리 배 아래 산은 높아 기풍 만리에 뻗치고
    鶴邊雲盡月千秋 학변운진월천추학이 날아 구름 걷히니 천추의 달이 밝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