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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1. 금산사 석등 (보물 제828호)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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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장전 앞에 보물 제828호인 고려시대의 팔각석등이 있다. 지대석에서 보주까지 거의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고 전체 높이는 3.9m이다. 사각형의 지대석위에 하대석을 얹고 그 위에 간주석(竿柱石), 연화석(蓮華石), 화사석(火舍石), 옥개석, 보개, 보주의 순서로 조성되었다. 이 석등은 화창에 시설했던 창문만을 제외하면 현재 거의 완벽한 모습을 남기고 있다. 더욱이 오랜 가람의 변천에도 불구하고 제자리를 잃지 않고 은은한 법등을 밝혀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금산사의 귀중한 성보문화재라 하겠다.

  2. 금산사 혜덕왕사 진응탑비 慧德王師眞應塔碑 (보물 제24호)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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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덕왕사 소현(1038-1096)은 고려시대의 고승으로 금산사의 중창주이다. 11세 때 출가하여 진표율사의 법상종을 계승한 지광국사智光國師 해린海麟의 제자가 되었다. 1079년 금산사의 주지로 부임하면서 진표율사의 중건 이래 가장 큰 규모로 금산사를 중창하였다. 가람의 남쪽에 광교원을 설립하여 『법화현찬法華玄贊』『유식술기唯識述記』 등을 비롯한 장소章疏 32부 353권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1096년 12월 18일 금산사의 봉천원에서 입적하였다. 숙종은 혜덕왕사라는 시호를 내렸고, 탑호를 진응眞應이라 하여 탑비를 세웠다.

    글씨는 구양순법의 해서로 썼다. 비문은 마모가 심하여 알아보기 어렵지만 당시 대표적인 문벌가인 인주이씨仁州李氏 이자연李子淵의 아들로서 왕사의 가계와 탄생 그리고 출가와 수행을 서술하고, 금산사에 광교원을 설치하여 유식 전적을 간행한 사실과 입적 후 재를 지낸 경비를 조정에서 지원한 내용이다. 그리고 음기陰記에는 왕사의 문도를 열거하였는데 승통僧統, 수좌首座, 삼중대사三重大師, 중대사重大師, 대사大師로 나누어 인명을 열거한 자가 110여 명이고 언급된 인명은 1천8백여 명에 이른다. 이 비의 음기는 고려시대 스님의 문도를 성격에 따라 구분한 예를 보여주는 좋은 자료이다.

    고려 예종 6년(1111년)에 세운 것이다. 현재 탑비는 귀부와 비신만이 남아 있고 비의 머리부분은 결실되었다. 대리석의 비신은 높이 2.78m, 너비 1.5m로서 심하게 손상되어 비문은 판독하기 어렵다. 그러나 다행히 『해동금석원』등에 그 내용이 전한다. 비문의 글씨는 약 2cm의 크기로 구양순의 해서체인데 활달하고 쾌적한 멋을 지녔다. 비의 앞면에 43행 77자씩으로 스님의 출생과 교화활동, 입적 등을 적었으며 그 둘레는 당초문으로 장엄했다.

    서자(書者)와 찬자(纂者)의 이름은 판독할 수 없고 각자(刻者)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해동금석원』에 의하면 이오가 짓고 정윤(鄭允)이 썼으며 비음(碑陰)은 채추탄(菜推誕)이 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금속고』에서는 비음을 채추탄이 쓴 것으로 밝히고 있다. 귀부는 방형의 지대석위에 놓였는데 신체는 장대하나 머리는 작은 편이다. 등에는 육각의 갑문(甲文)을 새기고 등위에 비신을 얹는 삽입부를 마련했다. 역동적인 발과 비늘의 표현이 마치 살아 있는 듯하여 고려시대의 탑비 가운데 우수한 작품임을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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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금산사 당간지주 (보물 제28호)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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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문에서 동북쪽으로 50m쯤 떨어진 곳에 보물 제28호로 지정된 당간지주가 있다. 절에 중요한 행사나 법회가 있을 때 깃발을 걸어서 이를 알리는 일종의 안내판이 당간(幢竿)이고, 이를 지탱하는 것이 지주(支柱)이다. 그래서 당간지주는 반드시 절의 입구에 놓이게 마련이다. 장방형의 계단식 3층 기단과 그 위에 당간을 받치고 있던 간대(竿臺), 지주를 놓던 기단석 등이 잘 남아 있다.

     정연한 기단부와 지주의 다양한 조각 등이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당간지주 가운데서 가장 완성된 격식을 갖춘 작품이다. 지주에 세 곳의 홈을 마련한 예는 익산의 미륵사지와 경주 보문리 당간지주에서도 볼 수 있어 같은 조성연대, 곧 8세기의 조성으로 추정된다. 한편 진표율사가 절을 중창한 것이 766년(혜공왕 2)의 일이므로 당간지주의 조성시기를 이 무렵으로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4. 금산사 석련대 石蓮臺 (보물 제23호)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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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적광전에서 동남쪽으로 10여m 떨어진 곳에 보물 제23호 석련대(石蓮臺)가 있다. 불상의 대좌로서 정확한 이름은 석조연화대인데, 높이 1.67m, 둘레가 10.3m가 넘는 거대한 작품이다.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형의 연화대좌인데다가 더욱이 하나의 화강석으로 각 면에 조각한 수법이 정교하고 아름답다.

    이 석련대의 위치가 지금의 제자리인지 다른 자리에서 옮겨진 것인지 알 수 없다. 규모가 워낙 거대해서 이동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을 감안한다면 제자리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한다면 고려시대 이후 언젠가 절을 중창하면서 석련대가 놓였던 전각은 사라지고 그 위에 봉안된 불상은 다른 전각이 새로 들어서면서 그곳으로 옮겨갔을 것이다. 한편 이 정도의 대좌가 필요했던 불상이라면 그 규모도 엄청나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금산사의 역사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역시 이 대좌의 주인공은 미륵장륙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여기에는 하나의 전제가 뒤따라야 한다. 즉 석련대의 조성 시기가 미륵장륙상을 봉안했던 8세기 후반과 맞아 떨어져야 하지만 이 석련대를 대개는 10세기 초의 작품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정확한 문헌자료가 없을 때는 작품의 양식을 통해 조성시기를 판단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석련대의 경우는 충분한 역사적 정황이 성립될 수 있으므로 통일신라 하대의 작품일 것이라는 가능성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5. 금산사 대장전 (보물 제827호)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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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륵전의 정면 서쪽에 앞면과 옆면 각 3칸씩의 다포식 팔작지붕인 대장전(大藏殿)이 자리한다. 이 전각은 보물 제827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장전은 본래 진표율사가 절을 중창하면서 세워졌다. 미륵전을 짓고 이를 장엄하는 정중목탑(庭中木塔)으로서 가운데에서 우측 부분에 위치하였으며 정팔각원당형으로 조성했던 건물이다. 당시의 양식은 탑과 같이 산개형(傘蓋形)의 층옥(層屋)으로서 맨 꼭대기 옥개에는 솥뚜껑 모양의 철개(鐵蓋)를 덮고, 다시 그 위에 불꽃 모양의 석조 보주(寶珠)를 올렸다.

    그 뒤 조선시대에 들어와 1635년(인조 13)에 가람을 중창하면서 본래 목탑이었던 것을 지금과 같은 전각의 형태로 변형하면서 대장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지금의 위치로 이전된 것은 1922의 일이다. 이렇듯 여러 차례 변화가 있었지만 전각 꼭대기에는 복발과 보주 등이 아직 남아 지금도 신라 때의 목탑양식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삼면의 벽은 모두 10폭의 벽화로 장엄하였는데 흔히 볼 수 있는 십우도나 극락세계의 장엄 등이 아니라 구체적 인물과 사건이 등장하는 모습이다. 몇 개만 열거하면 ‘오달국사 인명창저지화상도담, 치계전생담(雉鷄前生譚), 부설거사 도술담(浮雪居士道術譚), 용파수상행(龍波水上行), 희운선사 행적기(喜運禪師行迹記)’ 등이다. 또한 외벽에도 좌우로 벽화가 그려져 있다. 한편 대장전의 내부 출입문 위에는 1974년 건물을 중수할 때 참여한 사람들의 인명과 불상의 개금불사에 시주한 사람들 이름을 적은 현판이 걸려 있다.

    <금산사 대장전 꽃살문 >
    금산사 대장전의 문살은 솟을빗꽃살문 형식이며, 문살이 교차하여 형성된 육각형의 영역 안에 꽃잎이 여섯 장인 관념적인 꽃을 새겼다. 붉은색, 푸른색, 흰색으로 화려하게 채색되었으며 같은 색의 꽃들은 일정한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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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미단 백로>
    금산사(金山寺) 대장전의 수미단에 조각된 백로이다. 건물의 내부를 보면, 천장은 중앙 1단을 높여서 우물천장을 가설하였으며 보상화문(寶相華文)으로 단청을 하였다. 전면의 수미단(높이 1.07m, 전면길이 4.0m, 측면 1.8m)은 4단으로 구획하여 정교한 장식문양을 투조(透彫)하였다. 바닥부터 제1단에는 용과 귀면 등이, 제2단에는 인물상과 꽃들이, 제3단에는 새와 꽃들이, 제4단에는 안상문이 각각 투조되었다. 특히 해오라기는 불단 정면 중앙부의 제3단에 새겨져 있다. 해오라기, 즉 백로는 길상적인 의미로는 일로(一路)라는 뜻을 나타내는데, 한 번에 순탄하게 급제함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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