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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1.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보물 제 1200호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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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솔암의 서편 암벽 칠송대(七松臺)에 새겨진 높이 13m, 너비 3m에 이르는 거대한 마애불상이다. 전설에 의하면 백제 위덕왕(재위 554∼597년)이 검단선사(黔丹禪師)에게 부탁하여 암벽에 불상(마애불)을 조각하고 동불암이라는 공중누각을 짓게 하였는데, 조선 영조 때 무너졌다고 한다. 불상은 낮은 부조로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모습이며, 머리에는 뾰족한 육계가 있다.

    방형(方形)에 가까운 평면적인 얼굴에 눈은 가늘고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으며, 우뚝 솟은 코에 앞으로 내민 일자형의 두툼한 입술이 소박하고 익살스러운 미소를 띤 것처럼 보인다. 귀는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길게 늘어져 있고, 목은 표현하지 않아서 상체 위에 머리를 올려놓은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상체는 방형에 가슴이 넓고 평면적이며, 결가부좌한 넓은 하체에 손과 발 역시 체구에 비해 큼직큼직하다. 투박한 두 손은 활짝 편 채 아랫배에 가지런히 붙여져 있다.
    불의(佛衣)는 통견(通肩)으로 두꺼운 편은 아니나 옷주름선이 선각으로 형식화되어 있고, 평평한 가슴 아래로 선명하고 단정한 군의(裙衣)의 띠매듭이 가로질러 새겨져 있다.
    대좌는 비교적 높은 2단으로 되어 있는데, 상대(上臺)에는 옷자락이 늘어져 덮여 있고 하대(下臺)는 간략한 연꽃무늬의 연화좌로서 전반적으로 마멸이 심한 편이다.
    광배는 표현되지 않았고, 가슴에는 사각형으로 큼직하게 복장(腹藏)구멍을 나타내었다. 머리 위에는 사각형의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고 부러진 서까래가 꽂혀 있는 것도 있는데, 이는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지붕만 있는 누각 형태의 목조 전실(前室)을 마련하였던 흔적으로 보인다.

    이 불상은 고려 초기의 거대한 마애불 계통 불상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다. 사람들은 이 마애불을 미륵불이라 부르고 있는데 불상의 배꼽에 신기한 비결(秘訣)이 숨겨져 있다는 전설이 전하여, 동학농민전쟁 무렵에 동학의 주도세력들이 미륵의 출현을 내세워 민심을 모으기 위해 이 비기를 꺼내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2. 선운사 참당암 대웅전 보물 제 803호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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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운사 산내암자 참당암의 중심 건물로서 신라시대 의운화상(義雲和尙)이 창건하였다는 기록이 전하며, 그 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현존하는 건물은 조선시대의 것이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매 칸마다 4분합문을 달았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고, 지붕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다포양식의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다.

    앞면에 짜인 공포는 전형적인 18세기 다포양식인 반면 뒷면 공포는 굽면이 곡선이다. 석가여래를 본존으로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이 협시한 삼존불을 봉안하고 있으며, 1900년에 후불탱화로서 영산회상도를 조성하였다. 이 건물은 여러 차례의 중수가 있었음에도 여전히 고려시대 건축 부재(部材)의 양식을 지니고 있어 이채로우며, 조선 후기의 빼어난 건축미를 지니고 있다.

  3. 선운사 참당암 석조지장보살좌상 보물 제2031호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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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당암의 약사전(藥師殿)에 봉안되어 있는 납석제(臘石製)의 좌상으로서 높이 80㎝, 무릎폭 50㎝이다.

    이 존상은 머리에 두건을 쓰고 이마에 테를 두르고 있는 점, 두건의 아랫자락이 어깨를 덮고 있는 점, 가슴에 늘어뜨린 목걸이 장식이나 두터운 귀 부분 등이 선운사 금동보살좌상과 흡사하다. 다만 수인(手印)이 금동보살좌상처럼 사실적이지 못하며, 두껍고 높은 무릎에 표현된 옷주름 등이 선운사 금동지장보살상의 형식을 따르고 있으나 더욱 간략화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인은 이례적으로 왼손이 무릎 위에서 촉지인(觸地印)을 짓고 있으며, 오른손은 가슴 앞에 두고 엄지와 검지 사이에 보주(寶珠)를 들고 있다. 이러한 납석제좌상은 그 크기나 상호ㆍ의관 등이 금동보살좌상과 공통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오른손에 얼핏 보아 약함인 듯한 지물을 들고 있어 '약사여래'라는 명칭이 붙여진 듯하나, 여래상에는 두건이 아닌 육계가 있어야 하고 보배영락을 장식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므로 여래상이 아닌 보살상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 상의 명칭은 약사여래불상이 아닌 지장보살좌상(地藏菩薩坐像)으로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4. 선운사 만세루 보물 제2065호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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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면 9칸 측면 2칸 규모의 강당건물로서, 고려시대에 지어진 건물이지만 19세기 말에 중건된 익공계(翼工系) 구조의 맞배지붕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절의 창건 당시부터 건립되어 여러 차례의 중수가 있었으며, 현재도 700년이 된 두 개의 아름드리 기둥이 남아 있어 옛 자취를 느끼게 한다.

    넓은 평면에 비해 높이가 낮고 비규격적인 누(樓)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정면의 중앙칸(御間)은 폭이 390cm로서 양쪽 협간(夾間)에 비해 2배 정도 넓다.

    자연석 기단에 기둥은 일부 배흘림이 있는 기둥을 사용하였고, 자연목을 다듬지 않은 채 껍질만 벗겨 쓰기도 하였다. 중앙 칸의 양쪽을 제외하고는 모두 판벽으로 처리하였으며, 내부의 서쪽 앞 두 칸씩은 칸막이로서 2층 구조를 만들어 종각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대들보 위에는 낮은 동자주를 얹었고 기둥 윗부분에는 작은 나무토막들을 포개 쌓았다. 특히 뒷면이 대웅전과 마주보며 개방된 것은 설법을 위한 강당의 기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전면의 판창(板窓)을 열면 대웅전의 앞마당에서부터 강당을 포함한 공간이 막힘없이 트이게 되어 통풍과 전망을 아울러 배려하였음을 알 수 있다. 천장은 연등천장이며 바닥은 우물마루로 하였다.

  5. 선운사 석씨원류 전북유형문화재 제 14호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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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인조 26년(1648)에 새긴 가로 39㎝, 세로 29.5㎝의 목판본으로, 선운사 관음전에 봉안되어 있다. 원래 103매의 목판으로 판각되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절반가량이 망실되고 50매 100판의 원판과 별도의 2매 4판이 남아 전해지고 있다.

    『석씨원류』란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석가모니 이후 서역 및 중국에서 불법이 전파된 사실을 기술한 것이다. 선운사 목판은 망실 부분이 많아서 편집내용을 확실히 알 수 없으나, 현종 14년(1673)에 경기도 불암사(佛巖寺)에서 새긴 『석씨원류』 목판이 현재까지 완질로 남아 있고 간행시기도 비슷하여, 유포 당시의 간행내력과 편집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선운사판 『석씨원류』는 먼저 명나라 헌종황제의 「어제석씨원류서(御製釋氏源流序)」가 실리고 이어 하호연(河浩然)이 지은 「석씨원류서」가 실려 있다.

    하호연의 서에 의하면, 이 책은 사명대사가 일본에 사신으로 가서 구해온 것을 인조 26년(1648)에 최서용(崔瑞龍)ㆍ해운법사(海運法師) 등이 간행한 것으로, 불암사 판보다 25년이나 앞서 있다.

    책의 편제는 글의 위쪽에 그림을 배치하여 책의 내용을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불암사판 등의 책이 왼쪽 면에 글을 싣고 오른쪽 면에 그림을 두어 한 항목이 2면을 차지한 양식에 비해, 한 항목의 도설(圖說)이 1면에서 모두 끝나게 하는 편제를 지니고 있다. 이 책은 우리나라 목판인쇄사에서 새로운 편제의 도설판형(圖說版型)을 채택하여 방대한 양의 서책을 간행함으로써 판식과 판화의 역사를 가늠하게 하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