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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1. 화엄사 나한전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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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인 16분의 아라한(阿羅漢)을 모신곳이며 응진전(應眞殿)이라고도 합니다.
    번뇌의 적을 죽여 영원히 깨달음에 들어가서 어리석은 세계에 태어남을 받지 않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진리를 베풀어 바르게 이끌어 주시니 사람들에게 존경을 얻어 공양을 받을만한 자격을 갖춘 훌륭한 분입니다.

    인조10년(1632)벽암선사께서 중건하였는데 정조조(正祖朝)에 화재로 소실된후 정조19년(1795)에 담인(曇仁)선사가 중건했고,
    1984년 도광스님이 하얀나한상을 개채(改彩)를 했으며, 1997년 종열스님이 석가모니불상 개금, 주지 종걸스님 때 1998년 8월 8일 나한전 금강역사상 한분과 녹사 2분 도난 당했고 12월에 복원하여 모셨으며, 2005년에 명섭스님이 새로 후불탱화와 십육나한탱화를 조성과 주련을 달았다.

    덕문 스님이 2018년 9월 18일 없어진 나한님 한 분과 좌대 두 개를 조성하여 종삼 스님이 2010년 독성탱화와 나반존자상 특별전시회가 있었던 곳에 빌려 주었다가 전시회가 끝나고 나서 나반존자상은 성보박물관 수장고로 모셨던 빈두로존자상을 나한전으로 모시고 와서 오늘 봉안하니 16 나한님이 완성 되었다.

    2019년 1월 3일 나한전 오른쪽 지붕 붕괴로 인해 해채보수 하기 위해 원통전 왼쪽 공간에 임시 불단을 만들고 나한전에서 석가모니불상, 인왕상만 남기고 가섭존자, 아란존자, 16나한, 판관상과 후불탱화, 나한탱화를 옮겼으며 1월 5일 원통전에 나한전 불단을 밤색천 위에 유리를 올려놓는 불단으로 재정비하고 나한전에서 석가모니불상, 인왕상을 옮기고 난후 후불탱화, 나한탱화, 가섭존자, 아란존자, 16나한, 판관, 인왕상을 가지런히 배치하여 모셨다.

    2019년 9월 16일 나한전 해체 보수 하기 위해 2019년 1월 3일 부터 시작한 이후 공백 기간을 가졌다가 오늘부터 보수 공사를 하기 시작했다. 전에 법당 목재중 재활용이 가능한 것은 사용하는데 나한전 기둥 모두가 느티나무(괴목)인데 육송 2개로 교체 했으며 대들보 4개도 느티나무이며 육송 1개로 교체하였다.

    2019년 11월 2일 나한전에 해체된 수미단을 조립 설치를 시작 했으며 11월 5일 나한전 수미단 조립 설치를 끝내고 11월 8일 수미단에 옻칠로 법당안 내부와 밖에 해체 보수가 마무리가 되었으며 11월 9일 오후 12시 원통전에 임시법당으로 있던 나한전 나한탱화와 불상및 나한상을 나한전으로 옮겼지만 그중에서 후불탱화는 수미단에부터 천장까지 높이가 맞지 않아서 걸지 못하는 보수 하자(瑕疵)가 발생되여 다시 원통전에 모셨다. 11월 11일 원통전에 있던 임시 수미단을 철거하고 후불탱화는 나한전 법당안 오른쪽 문에 두었다.

    2019년 11월 16일 나한전 수미단 뒷쪽를 짤라서 공간을 만들어 후불탱화 높이를 맞춰 모시게 되니 2019년 1월 3일부터 시작한 나한전 해체 보수가 오늘 완전히 마무리가 되었다.

    2019년 11월 22일 오후에 나한전 십육나한님의 명패를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2. 화엄사 일주문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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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문은 절 들어가는 어귀에 우뚝 서 있는 문으로 기둥을 양쪽에 하나씩만 세워서 지은 것이며 이문을 들어서면 오직 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품에 안기게 되는 것입니다.
    조선 인조18년(1640년)에 벽암선사가 중건 했고 고종3년(1866년)주지 지선스님과 도감 회성스님이 연목과 부연보수, 1919년에 주지 진응스님이 도리일부, 부연, 연목보수, 하면서 지리산화엄사조계문중수연기(智異山華嚴寺曺溪門重修緣起)을 쓰고 상량에 넣었다.
    1998년 종걸스님이 보수을 하였다.
    영관 스님이 2015년 12월 18일에 해체하고  2016년 5월 13일 복원 되었지만 단청을 하지 않았다.
    덕문 스님이 2018년 6월 30일 일주문 단청을 맞쳤다.
    글씨는 선조대왕의 네 번째 부인의 네째 아들인 의창군의 글입니다.

  3. 화엄사 원통전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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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칭 : 화엄사 원통전
    원통전에는 관세음보살님, 칠성, 독성, 산신이 모셔져 있었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님은 크고 넓고 자비로운 덕이 있으신 분으로 가장 널리 우러름을 받으시며 극락세계에서 아미타 부처님을 도우시는 분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곳에 나타나 형편을 살피시고 모든 이들을 괴로움과 어려움에서 구해 주시는 인자하신 분으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라고도 합니다.
    칠성(七星)님은 사람들의 좋은일,나쁜일,복덕,수명장수를 도와 준다고 합니다.
    독성(獨聖)님은 부처님의 제자인 나반존자로 천태산에서 혼자 도를 닦아 연각(緣覺)을 이룬분입니다.
    산신(山神)은 산신령,산왕대신으로 산을 맡아 수호 하고 있는 분입니다.
    조선 숙종29년(1703) 계파선사께서 중건했고, 편액은 정조23년(1799)에 조종현에 의해 쓰어진 것이다
    도광 스님이 1969년 11월 20일 취임하면서부터 각 법당을 정비 불사를 하시면서 나한전에 없어진 제화가라보살상과 미륵보살상 좌대에 가섭존자 아란존자를 모셨고 나한님 한 분이 없어져서 양쪽으로 8분 씩 배열이 되어야 하는데 배열이 맞지 않아서 빈두로존자(나반존자)를 원통전에 독성탱화 앞으로 모셨다.

    명선스님이 1978년에 해체중수 했으며, 1978년 원통전 나한탱화에 있는 나비그림 부분만을 오려내어 없어져 도난 당했으며 몇 달후 그 부분을 다시 그려 넣었다.

    종열스님이 1997년에 관세음보살상을 개금했다.
    종삼스님이 2006년 10월 기와번와를 하였다.
    종삼 스님이 2010년 독성탱화와 나반존자상 특별전시회가 있었던 곳에 빌려 주었다가 전시회가 끝나고 나서 나반존자상은 성보박물관 수장고로 모셨다.

    법당 왼쪽에 목판 보관실에 부휴집(浮休集), 염불직지(念佛直指)등 많은 귀중한 목판본이 보관 되어있으나 영관스님이 2013년 7월 원통전안 왼쪽 목판 보관실에 있는 목판을 박물관 지하보관실로 옮겼으며, 2015년 1월 28일 목판 비어있는 목판 보관실을 해체해서 없에버렸다.

    덕문 스님이 2019년 1월 3일 나한전 오른쪽 지붕 붕괴로 인해 해채보수 하기 위해 원통전 왼쪽 공간에 임시 불단을 만들고 나한전에서 석가모니불상, 인왕상만 남기고 가섭존자, 아란존자, 16나한, 판관상과 후불탱화, 나한탱화 를 옮겼으며 1월 5일 원통전에 나한전 불단을 밤색천 위에 유리를 올려놓는 불단으로 재정비하고 나한전에서 석가모니불상, 인왕상을 옮기고 난후 후불탱화, 나한탱화, 가섭존자, 아란존자, 16나한, 판관, 인왕상을 가지런히 배치하여 모셨다.
    덕문 스님이 2019년 2월 14일 원통전 오른쪽에 있던 독성탱화와 산신탱화를 탑전 칠성각으로 옮겼다.

    2019년 11월 9일 오후 12시 원통전에 임시법당으로 있던 나한전 나한탱화와 불상및 나한상을 나한전으로 옮겼지만 그중에서 후불탱화는 수미단에부터 천장까지 높이가 맞지 않아서 걸지 못하는 보수 하자(瑕疵)가 발생되여 다시 원통전에 모셨다. 11월 11일 원통전에 있던 임시 수미단을 철거하고 후불탱화는 나한전 법당안 오른쪽 문에 두었다.
    2023년 6월 15일 원통전 칠성탱화를 덕문 주지 스님이 성보박물관 수장고로 이운하라고 지시했다.
    이로써 그동안 원통전에 모셔져 있었던 칠성탱화, 독성탱화, 산신탱화 중에서 독성탱화, 산신탱화는 탑전에 삼성각으로 이운되고 칠성탱화는 화엄사 성보박물관 수장고 이운되었으니 원통전에서 사라져 버려서 이 곳 법당에서는 삼성의 존재가 잊어지고 말았다.

  4.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국보 336호)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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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전 불단 중앙에 모신 불상으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며 수인(手印)은 지권인(智拳印)으로 신라시대의 전통적인 비로자나 수인과 달리 왼손을 오른손으로 감산 모양을 짓고 있다. 오른손은 불계(佛界), 왼손은 중생계(衆生界)를 표하며 이 결인으로서 중생과 부처님이 둘이 아니며, 번뇌와 깨달음이 일체인 뜻을 나타낸다.

    비로자나불 왼쪽에 모신 불상인 원만보신 노사나불은 두 손을 들어 설법인(說法印)을 짓고 있는데 보관(寶冠)을 머리에 쓴 보살상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비로자나불 오른쪽에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은 오른손을 무릎위에 두고, 왼손은 엄지를 중지에 대고 왼쪽 무릎위에 올려놓고 있는 이 수인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으로서 악마를 항복시키는 인상(印相)이며 부처님깨서 성도한 모습이라고 한다.
    인조 10년(1632년)에 청헌(淸憲), 인균(印均)이 조성을 했으며 비로자나불상 크기는 2.7m, 노사나불상 크기는 2.5m, 석가모니불상 크기는 2.4m이다. 도광 스님이 1973년 9월 6일(음력 7월 29일) 개금불사 점안식, 종열 스님이 1997년 개금불사를 했다. 2006년 3월 12일 보물 1548호 지정되다.

    2018년 4월 26일 덕문 스님이 부처님 오신날을 앞두고 각황전과 대웅전 불상에 부분 개금을 시작했다. 에어건으로 먼지를 불어내는 작업을 마친후 남은 먼지를 극세사 천으로 다시 한번 제거한 후 옷칠 마치고 개금을 한다. 부분 개금을 4일간에 걸쳐 29일에 마쳤다.
    2021년 6월 1일 오전 10시 보제루에서 국가무형문화재 139호 볼복장작법보존회 경암스님께서 대웅전 삼신불 복장의식을 1시까지 봉행하고 2시부터 대웅전에서 삼신불 복장을 넣은 의식도 봉행 되었다.
    2021년 6월 5일 대웅전 삼신불복장불사 회향날을 낮 12시부터 대웅전에서 삼신불 재복장 점안의식을 봉행했다.
    2021년 6월 23일 문화재청은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을 보물에서 국보 제 336호로 승격한다고 발표했다. 최근 발견된 기록에는 1634∼1635년에 17세기 대표 조각승으로 꼽히는 청헌(淸憲), 응원(應元), 인균(印均)이 제자들과 함께 만들었다고 적혀 있다. 임진왜란으로 피해를 본 사찰의 중창을 주도한 승려인 벽암 각성(1575∼1660)이 불상 제작을 주관했고, 선조의 여덟째 아들인 의창군 이광(1589∼1645) 부부와 선조 사위 신익성(1588∼1644) 부부 등 왕실 인물과 승려를 포함해 1320명이 시주자로 참여했다.

  5. 화엄사 영산회괘불탱(국보 301호)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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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목 : 국보 301호
    명칭 : 화엄사영산회괘불탱(華嚴寺靈山會掛佛幀)
    분류 : 불화 수량 : 1폭
    지정일 : 1997.09.22
    소재지 :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12 화엄사
    시대 : 조선 효종
    소유자 : 화엄사
    관리자 : 화엄사

    석가모니불이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모습인 영산회상을 그린 괘불이다.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화엄사에 있는 이 괘불의 크기는 길이 11.95m, 폭 7.76m, 무게가 200Kg이 넘는다. 석가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보현보살과 사천왕상 등이 배치되었다. 화면 중앙의 석가불은 높다랗게 만들어진 단의 연꽃받침 위에 앉아 있으며, 마귀를 물리친다는 의미의 손가락을 땅으로 향한 손모양을 취하고 있다. 둥근 얼굴과 어깨에서 부드럽고 원만한 느낌을 주고 필선은 매우 섬세하고 치밀해 세련미를 더한다. 석가불 좌우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석가를 모시며 서 있다. 사천왕 중 2구는 그림의 하단에, 2구는 상단에 배치해 마치 네 모서리를 지키는 것처럼 보인다. 각 상들의 얼굴은 둥글고 커다란 눈에 작은 코와 입, 길다란 귀를 가지고 균형잡힌 모습으로 서 있다. 홍색과 녹색을 주로 사용하였고 중간색을 사용해 은은하면서도 밝은 느낌을 주며 채색무늬와 금색무늬가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조선 효종 4년(1653)에 만들어진 이 괘불은 각 상들의 늘씬하고 균형잡힌 형태, 밝고 선명하며 다양한 색채, 치밀하고 화려한 꽃무늬장식 등에서 17세기 중엽의 불화에서 보이는 특징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괘불은 마(麻) 바탕에 채색한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로서 효종 4년(1653) 5월에 지영․탄계․도우스님 등이 조성하였으며 1976년 대웅전 왼쪽 계단옆 도량에 괘불을 모셔 세워 초파일 의식 도중에 하단부분이 찢어지는 파손을 입어서 1977년에 명선스님이 텡화 뒷면을 배접하여 보수, 1989년 4월에 종원스님이 탱화보수를 하였다.

    ※ 괘불은 국가에 천재지변이 생겼을 때나 기우제(祈雨 祭),영산재(靈山齋),예수재(豫修齋),수륙재(水陸齋)같은 것을 행하기 위해 신도들이 야외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할 때 모시는 신앙의 대상물이다. 티베트는 괘불을 당카라고 부르며 석가탄신일,성도일,열반일에 큰 축제을 열고 이 때 당카를 내어 모시고 소원을 빌거나 예배를 드린다. 연중 행사로 내어 모시는 것을 ‘거불(巨佛) 햇볕쬐기’ 라고 하며, 부처님이 현세에 나타나서 고통을 덜어 주는 날이라고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