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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1. 서동사 소개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13
    사동마을은 서동사가 있어 '절골'로 부르며 구전에 의하면 임진왜란때 피난민이 서동사에 대피해와 이곳의 울창한 칡넝쿨이 사람들을 보호해 주었다고 하며, 1730년 무렵 목관(牧官) 강필경(姜弼慶)이 부임해와 동헌에 북통을 만들 때 칡넝쿨이 진상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때문인지 서동사에는 오래 전부터 내려온 칡북이 있어 매우 흥미롭다. 원통형의 나무에 구멍을 뚫고 양쪽에 가죽을 데어 만든 이 북은 나무의 원형을 따라 만든 탓인지 북의 모양이 다소 삐뚤어진 타원형의 모습을 하고있다.
    지름이 약 50cm 가량인 이 칡북은 나무의 안쪽을 파고 만든 한 나무라고 해서 굉장히 거대한 칡나무로 만들어 졌음을 알게 한다.
    서동사의 창건과 관련하여 절에서는 887년 무렵 신라 진성왕때 최치원이 창건했다고 하나 이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으며 현재의 유적와 유물로 볼 때는 조선시대 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서동사는 대웅전.종각.요사.건물이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약간 경사진 지형을 3단으로 정지하고 두 번째 단에 대웅전과 요사를 배치했다. 이밖에도 경내에는 석조와 용왕상이 있으며 전에는 오층석탑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없어졌다고 한다.

    절에는 또한 상용권공문이라는 책이 전한다. 책 끝부분에 1849년(현종)에 해당하는 연도가 적혀있어 (범자다라니경목판)보다 시기가 빠른 고서라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대웅전 안에는 목조삼세불상과 관음상 및 삼세후불탱화.칠성탱화.신중탱화.산신도 등의 불화, 그리고 중종과 1879년 중수 때 감역을 맡았던 최명륜의 영정이 있다.


  2. 이색 칡북 전한 서동사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13

    서동사(瑞洞寺)는 화원면 금평리 573번지 사동(寺洞)마을의  운거산(雲居山)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대흥사의 말사이다. 사동마을은 서동사가 있어 ‘절골’로 부르며 구전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피난민이 서동사에 대피해와 이곳의 울창한 칡넝쿨이 사람들을 보호해 주었다고 하며, 1730년 무렵 목관(牧官) 강필경(姜弼慶)이 부임해와 동헌에 북통을 만들 때 칡넝쿨이 진상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 때문인지 서동사에는 오래전부터 내려온 칡 북이 있어 매우 흥미롭다. 원통형의 나무에 구멍을 뚫고 양쪽에 가죽을 데어 만든 이 북은 나무의 원형을 따라 만든 탓인지 북의 모양이 다소 삐뚤어진 타원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 지름이 약 50cm 가량인이 칡 북은 나무의 안쪽을 파고 만든 나무라고 하여 굉장히 큰 칡나무로 만들어 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서동사의 창건과 관련 887년 무렵 신라 진성왕 때 최치원이 창건했다고 하나 이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으며 현재의 유적과 유물로 볼 때는 조선시대 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 대웅전은 1779년(정조 3)에 복원된 건물로 1870년 의윤, 정기, 진일 등 3인의 스님이 발원하여 중수하였으며 최근 년에는 정랑스님이 주지로 부임한 후 요사채, 칠성각, 천불전, 화장실 등을 개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3. 서동사 역사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13

    조선시대 후기 이절의 역사는 절에 보관되었던 범자다라니경(梵字陀羅尼經)및 1870년(고종7)의 <서동사중수서>를 통해 연혁을 살펴볼 수 있다. 다라니경판은 1858년(철종9)에 만들어졌는데 끝부분에 보면 월여(月如)스님이 1858년 9월 화원목장(花源牧場)의 서동사에서 수명과 복덕을 기원하는 「다라니경」을 조성, 간행한 것으로 되어있다. 19세기 후기에 들어와서는 <서동사중수서>를 통해 1870년(고종7)당시 대웅전의 대대적인 보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근래에 들어와서는 1924년, 1945년과 1946년에 청학스님이 대웅전을 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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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서동사 건축물과 문화재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13

    현재 서동사는 대웅전·종각·요사 건물과 함께 최근 복원된 누각 등이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약간 경사진 지형을 3단으로 정지하고 단에 대웅전과 요사를 배치했다. 이밖에 경내에는 석조와 용왕상이 있으며 전에는 오층석탑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없어졌다고 한다.
    절에는 또한 <상용권공문(常用勸供文)>이라는 책이 전한다. 책 끝부분에 1849년(현종15)에 해당하는 연도가 적혀있어 <범자다라니경목판>보다 시기가 빠른 고서라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문화재로는 서동사 목조삼존불 좌상 보물 1715호와 전라남도 기념물 제245호 서동사 동백나무 비자나무숲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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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서동사 대웅전(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74호)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13

    대웅전은 팔작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의 단층 전각으로 지붕은 익공양식의 맞배지붕으로 위에 한식기와를 얹었으나 막새기와는 사용하지 않았다. 내부는 통칸으로 우물마루를 깔았다. 기둥은 윗면이 평평한 막돌 초석 위에 원통형 두리기둥을 세웠으며 기둥위로는 주두(柱頭)를 얹고 창방을 걸었다. 조선 후기에 지어진 뒤 그동안 여러 차례의 중수가 있었으며 최근에는 1990년에 보수한 바 있다.
    안에는 목조삼세불상과 관음상 및 삼세후불탱화, 칠성탱화, 신중탱화, 산신도 등의 불화 그리고 중종과 1879년 중수 때 감역을 맡았던 최명륜의 영정이 있다. 삼세불상은 가운데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가 협시하고 있으며, 조선시대 후기에 봉안된 것으로 보인다. 불화는 근래에 조성된 것이다.
    대웅전 안에는 목조삼세불상과 관음상 및 삼세후불탱화·칠성탱화·신중탱화·산신도등의 불화, 그리고 중종과 1879년 중수 때 감역을 맡았던 최명륜의 영정이 있다. 그밖에 안에는 <서동사중수서>를 비롯해 <서동사중수시주질>, <서동사노전시주질>, <제서동사> 등의 현판이 걸려 있다. <서동사중수시주질>은 끝부분의 ‘갑자‘라는 간지로 보아 1924년의 대웅전 중수를 기념하며 적은 듯하고 <서동사노전시주질>역시 간지는 지워져 보이지 않지만 그 무렵의 노전 중수를 기념한 것으로 보인다.
    <제서동사>는 천종의(千鍾宜)가 서동사에 대해 읊은 시문으로 ‘정묘’라는 간지로 보아 1927년에 현판을 새긴 듯하다. 또한 <각사찰질>, <각부날질> 등 1950년의 중수를 기념한 현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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