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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1. 무위사 수월관음벽화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6-06

    불벽(後佛壁) 뒷면에 그려진 수월관음벽화. 아미타삼존 후불벽화와 같은 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두광(頭光)과 신광(神光)을 지고 선 수월관음이 관음보살을 예배하는 선재동자(善財童子)를 내려다보고 있다. 머리에는 아미타불이 묘사된 보관(寶冠)을 썼으며, 왼손에는 정병(淨甁)을 들고 오른손에는 버들가지를 잡고 있다. 얼굴은 넓으며, 목은 굵고, 넓은 어깨가 강건함을 느끼게 한다. 주위에 물결을 묘사하여 바다 위에 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하였으며, 천의(天衣) 자락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이러한 모습이 화면 전체에 표현된 파도의 곡선과 더불어 긴장감과 생동감을 불러일으킨다.

    보통 선재동자의 모습은 작은 동자의 모습이지만 여기에서는 승복을 입은 노비구(老比丘)의 모습이다. 무릎을 꿇고 합장하는 자세에서 구도자의 모습, 간구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후불벽화에 관한전설은 극락보전 건립 후 어느 날 노승 한사람이 사찰을 찾아와 벽화를 그리겠다며 100일동안 법당분을 열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99일째 되던 날 궁금증이 많은 한 승려가 창살을 통해 법당안을 들여다보자 한 마리의 새가 입에 붓을 물고 날아다니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날아가 버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현존 후불벽화 중 가장 오래된 무위사 후불벽화는 관음보살의 눈동자가 그려지지 못한 미완성의 그림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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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무위사 아미타삼존불도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6-06

    후불벽화(後佛壁畵)로 그려진 아미타삼존도. 흙벽에 채색. 210 × 270 cm. 1476년 작. 후불벽화로 그리기 위하여 따로 세워진 벽면에 그려졌다. 구도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앞의 좌우에는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배치하고 뒤쪽으로 6명의 나한(羅漢)을 배치하여 원근감을 표현하였으나 상하로 구분하는 2단구조의 고려 불화나 16세기의 조선 불화와도 다른 것이다.

    아미타불의 뒤에 표시된 광배(光背)의 모양은 키를 연상케 하는 것으로 15세기부터 사용되었다. 착의법(着衣法)은 고려 후기의 단아양식(端雅樣式)을 계승한 것이며, 가슴 아래까지 올라온 군의(裙衣)의 상단을 주름잡아 고정시킨 매듭끈을 대좌(臺座) 좌우로 길게 드리운 것은 조선 초기의 특징이다. 내용상에서도 변화가 있다. 곧 고려시대의 삼존형식에 자주 등장하던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대신 지장보살이 배치된 것은 고려 후기의 신앙대상의 변화를 말해주고 있다. 화기(畵記)에 의하면 아산현감을 지낸 강노지(姜老至) 등 수십명의 시주로 혜련(海連) 대선사 등이 그렸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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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무위사 소개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6-06

    무위사는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출산에 있는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 말사이다. 무위사는 본 절에만 23동 건물과 35개 속암을 거느릴 정도의 대찰에 속했으나 거듭된 화재로 규모가 축소되었다. 현재 경내에는 극락보전을 중심으로 전각 앞에 1678년에 세운 <괘불대>가 있고 서쪽에 성보박물관이 있으며 946년에 세워진 <선각대사탑비>와 고려시대 <삼층석탑>이 있다. <선각대사탑비> 북쪽으로 미륵전과 산신각이 자리하고 있으며 경내에서 떨어진 독립된 공간에 천불전이 남동향하여 위치하고 있다.

    1739년 무위사 주지 극잠이 쓴 『전라좌도강진월출산무위사사적』(이하『무위사사적』이라 칭함) 기록에 따르면, 617년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관음사’라고 불렀으며 대광명전, 미타전, 비로전, 동선당, 서승당 등 전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원효 스님의 생몰년과 사찰 창건 시점이 맞지않아 신빙성이 떨어진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946년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하나 생몰년과 건립 시기가 맞지 않다.

    『무위사사적』에는 도선국사가 875년 2중창을 하고 ‘모옥사’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조선시대 무위사는 1407년 천태종 17개의 자복사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이후 1555년 태감선사가 4중창을 이루고 ‘무위사’라고 불렀다고 하며 이때 비로전, 미타전, 영산저, 문수전 등 전각과 35개 처에 달하는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근대 이후 무위사 기록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 문서 가운데 『사찰고』에서 간략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1909년 내무부 소속 지방국사사과에서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무위사는 안주면 월출산에 있으며 본존불명은 ‘阿彌陀佛아미타불’로 표기했다. 관리자는 ‘정성희’로 군수가 차임한 인물이었으며, 사찰 소유 논밭이 4마지기가 있어 그 수입으로 유지했다. 연혁 부분에는 ‘月比菩薩이 一次修葺함’이라 기록했다.

    1934년 8월 27일 조선총독부는 극락보전을 보물 제67호 ‘무위사 극락전’으로 지정했다. 이후 1935년 해체수리를 진행하고 1943년에는 우천시 누수로 인한 지붕수리를 진행했다. 해방 이후 1962년 국보 제13호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으로 승격했다.
    1974년에는 성보박물관을 건립하여 극락보전에서 분리한 내부 벽화 27점을 보관하고 해탈문, 분향각, 천불전, 미륵전을 중건했다. 1982년에는 극락보전 해체 수리 과정에서 발견한 명문을 통해 1430년 극락보전 건립을 확인했다. 이후 산신각, 요사채 등이 건립되고 2001년 <극락보전 아미타여래삼존상>과 후불벽화 <백의관음도>, <내벽사면벽화> 일괄 29점 등이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연혁 (창건~조선말)
    617년(진평왕 39) 원효대사 창건
    875년(헌강왕1) 도선국사 중창
    946년(정종1) 선각대사 형미3중창
    1430년(세종12) (선각대사탑비) 건립
    1476년(성종7)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벽화>,<아미타내영도> 조성
    1478년(성종9) <극락전 아미타삼존불상> 조성
    1526년(중종21) 극락보전 단청
    1555년(명종10) 태감선사 4중창
    1678년(숙종4) <괘불대> 조성
    1739년(영조15) 미타전, 천불전, 시왕전 보수

    연혁 (근대 이후)
    1934년 <무위사 극락전>보물 지정 제67호
    1935년 극락보전 해체 수리
    1943년 극락보전 수리
    1956년 극락보전 해체 수리
    1962년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문화재 지정
    1969년 <강진 무위사 선각대사탑비> 문화재 지정
    1974년 성보박물관 건립, 해탈문, 분향각, 천불전, 미륵전 중건
    1979년 성보박물관 증축
    1982년 극락전 수리 공사
    1984년 극락전 벽화표면 채색 및 경화처리, 벽화 단청 문양 모사, <무위사 삼층석탑> 문화재 지정
    1987년 미륵전 번와, 바닥 강화 다짐
    1991년 산신각 신축
    1993년 선원 건립
    1995년 화장실 개축
    1997년 주차장, 배수로 공사
    2000년 요사채 개축
    2001년 <강진 무위사 아미타여래삼존좌상> 문화재 지정, <무위사 극락전 백의관음도> 문화재 지정, <무위사 극락전 내벽사면벽화> 문화재 지정
    2002년 명부전 보수
    2009년 <강진 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벽화> 문화재 지정

  4. 무위사 성보문화재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13

    건축 강진무위사 극락보전 1430년 1동 국보 제13호 1962.12.20
    조각 강진 무위사 아미타여래삼존좌상 1478년 3존 보물 제1312호 2001.08.03
    회화 강진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벽화 1476년 1점 국보 제313호 2009.09.02
    회화 무위사 극락전 백의관음도 조선시대 1점 보물 제1314호 2001.08.03
    회화 무위사 극락전 내벽사면벽화 조선시대 일괄 보물 제1315호 2001.08.03
    석조 강진 무위사 선각대사탑비 946년 1기 보물 제507호 1969.06.16
    석조 무위사 삼층석탑 고려시대 1기 문화재자료 제76호 1984.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