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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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1. 원불교 영산 법인기도봉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17

    명칭 : 영산 법인기도봉
    번호 : 성적 제7호
    소재지 : 전남 영광군 백수읍 길용리, 장산리, 청정리, 법성면 입암리
    지정일 : 원기 85년(2000) 7월 6일
    연락처 : 영산사무소 061-352-6344

    소태산 대종사를 따르는 아홉 명의 제자들이 법인기도를 올렸던 전남 영광 구수산에 위치한 아홉 개의 기도봉을 말합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간척사업을 마친 뒤 9명의 제자들에게 일자와 방위를 지정하여 기도를 올리게 하였는데 이것을 일러 법인기도라 합니다.

    원기 4년(1919) 4월 26일에 시작한 기도는 매월 삼 육일(6일, 16일, 26일)에 거행하였으며, 기도 당일 오후 8시에 구간도실에 모여 소태산 대종사의 교시를 받고 오후 9시에 각자의 기도 장소로 출발했습니다. 기도는 오후 10시부터 12시까지 하였으며 팔괘로 만든 단기團旗를 중앙에 세우고 촛불을 켠 후 청수기를 진설한 뒤 축원문을 올리고 사배를 올리는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당시 구인 제자들이 기도봉은 중앙봉(정산 송규), 설레바위봉(일산 이재철), 장다리봉(이산 이순순), 밤나무골봉(삼산 김기천), 눈썹바위봉(사산 오창건), 상여바위봉(오산 박세철), 옥녀봉(육산 박동국), 공동묘지봉(칠산 유건), 대파리봉(팔산 김광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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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원불교 정읍 화해제우터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17

    명칭 : 정읍 화해제우터(花海際遇址)
    번호 : 성적 제13호
    소재지 : 전북 정읍시 북면 화해성지길 54-13
    지정일 : 원기 85년(2000) 7월 6일
    연락처 : 화해교당 063-535-0447

    소태산 대종사와 정산 종사가 처음 만난 김해운의 집입니다. 정산 종사는 원기 2년(1917) 스승을 찾기 위해 전라도에 도착한 후 여러 사찰과 새로 일어난 신흥종교를 순력했습니다.
    정산종사가 모악산 대원사에 머물 때 정읍 북면 화해리 김해운이 왔다가 그의 인품에 반하여 ‘만국양반’이라 부르며 자신의 집에 머물기를 청하므로 잠시 그 집에 의탁을 하게 되는데, 소태산 대종사가 이때 천기를 살펴보신 후 때가 이르렀음을 알고 원기 3년(1918) 팔산 김광선 종사와 함께 직접 이곳을 찾아와 운명적 만남을 이룬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소태산 대종사와 정산 종사는 이 자리에서 형제 결의를 맺은 뒤 두 달 뒤 다시 영광에서 부자의 결의를 맺었습니다.

    교단에서는 원기 71년(1986) 소태산 대종사와 정산 종사의 이 운명적인 만남을 기념하여 김해운의 집터에서 50m 남짓 떨어진 마을 입구에 ‘화해제우지花海際遇址’비를 건립하고 이를 기념해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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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원불교 이리 보화당터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17

    명칭 : 이리 보화당터(裡里普和堂址)
    번호 : 교적 제6호
    소재지 : 전북 익산시 인화동 1가 105
    지정일 : 원기 91년(2006) 5월 9일
    연락처 : 문화사회부 063-850-3262

    이리보화당은 원기 9년 중앙총부 건설 이전부터 병원濟衆院,제중원 설립 및 중앙총부 유지기관으로 구상된 사업입니다. 하지만 보화당약방普和堂藥房이 개설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흐른 뒤인 원기 19년 5월 경의 일로, 소태산 대종사의 뜻에 따라 중앙총부 공익부가 자본금 1만여 원을 투자하여 이리읍 본정 1정목(인화동)에 있던 치심당 약방을 인수하여 건재약방을 개업하면서부터라 할 수 있습니다.
    대표 이사는 일산 이재철, 실무 이사는 도산 이동안, 한의사는 박이석朴理碩이 담당했습니다.

    이리보화당은 ‘늘 정진하자. 늘 쇄신하자. 늘 봉사하자’라는 당훈을 내걸고 영육쌍전·이사병행·제생의세의 정신을 생활 속에서 실현하는데 앞장서 왔습니다. 특히 이리보화당은 중앙총부 후원기관으로서 교단의 대들보 역할을 담당해 왔고, 원기 35년 북일진료소, 원기 49년 보화당제약사, 원기 57년 보화당역전한의원, 원기 59년 서울보화당, 원기 61년 전주보화당을 설립하며 교단 벌전에 크게 기여해 왔습니다. 하지만 설립 초기에 약포로 운영하던 양약방은 광복 이후 보화당양약국으로 운영되어오다가 원기 62년 재정난으로 폐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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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불교 왕궁 영모묘원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17

    명칭 : 왕궁 영모묘원(王宮永慕廟園)
    번호 : 교적 제7호
    소재지 : 익산시 왕궁면 동봉리 산 111
    지정일 : 원기 91년(2006) 5월 9일
    연락처 : 왕궁 영모묘원 063-836-4311

    원불교 역대 조상을 추모하고 기리기 위해 교단에서 조성한 묘원으로 전북 익산군 왕궁면 동봉리 654번지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곳 일대 12만평의 부지 위에 정갈하게 조성된 영모묘원은 원불교 예법정신에 바탕해 역대 조상들에게 추원보본의 도리를 다하게 하고, 국토를 효율적으로 개발 관리하게 하고 가정의례 준칙의 기본정신을 선양해 국민의 도의함양에 기여할 목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원기 65년에 묘지법인 허가를 취득하고, 원기 67년 10월 익산시 왕궁면 동봉리 산 109번지에 41,520평을 매입을 시작하여 10만여 평을 매입 원기 68년 6월에 묘지 변경허가를 받고 시설묘지 및 시설허가를 취득, 원기 69년부터 알봉묘지(현 원불교 자선원 자리) 이장작업을 시작하여 마무리했습니다. 영모묘원은 묘역은 전무출신 묘역, 법훈 묘역, 일반교도 묘역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묘지난이 다시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가시화 되자 원기 82년 영모묘원 내에 납골당 ‘대원전’을 건립하고 2만여 명의 사자들을 안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영모묘원 개발을 이끈 대산 종사는 영모묘원을 “일원 사당이요, 대 세계 사당이니 천불만성과 전 선열 전 생령을 위한 숭덕존공崇德尊公의 대 불사지로 대불공의 성지이다”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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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원불교 동산선원터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17

    명칭 : 동산선원터(東山禪院址)
    번호 : 교적 제8호
    소재지 : 전북 익산시 동산동 402-3
    지정일 : 원기 91년(2006) 5월 9일
    연락처 : 원불교동산수도원 063-841-5768

    동산선원 터는 소태산 대종사가 직접 내방하여 사방을 둘러보신 후 그 기지를 잡아준 터라고 전합니다.
    원기 20년 이리지역에 교당 설립을 염원하던 대타원 이의인화 종사는 어느날 소태산 대종사께 교당 기지를 정해 줄 것을 간청했습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이의인화와 몇몇 제자를 데리고 이곳 동산동에 올라 사방을 관망하더니 “내 오늘 여기에 교단 만년의 기초가 되는 땅을 정하였노라. 앞으로 이곳에서 대도인이 상주 설법을 하게 되고 천여래 만보살이 배출되리니 화피초목 뇌급만방의 불보살 세계를 이루리라” 하며 터를 정해 주었습니다.
    이에 이인의화는 크게 기뻐하며 이곳 일대의 터를 매입하였으나 당시 이곳에는 이리신사가 자리하고 있어 교당 설립의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물러가고 해방이 되면서 이리신사를 불하받아 이리교당을 설립할 수 있었고 원기 38년에 이르러서는 이리고등성원이 병설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원기 40년 교단의 3대 선원 설립공고에 따라 이리고등선원이 동산선원으로 개편되었다가, 원기 46년에 운영난으로 휴원하고 중앙선원과 병합하였습니다.
    원기 48년 5월 다시 중앙선원에서 분리되어 동산선원이라는 이름으로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와 더불어 교무양성기관으로 역할을 다했습니다.
    원기 58년 9월에 동산선원 본관을 신축 낙성하고 원기 60년에 이리교당이 시내로 이전하면서 동산선원만의 교육공간으로 활용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원기 71년 선원 교육과정 개편과 함께 제25회 졸업생을 끝으로 동산훈련원으로 개칭되면서 초급교무 훈련기관으로 변화되었다가, 이마저도 대학원 과정으로 편입되자 원기 79년부터 동산수도원을 개원하여 정년퇴임한 원로교역자들의 수양기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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