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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1. 원불교 수계농원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17

    명칭 : 원불교 수계농원(峀溪農園)
    번호 : 교적 제9호
    소재지 : 전북 완주군 삼례읍 수계리 417-1
    지정일 : 원기 91년(2006) 5월 9일
    연락처 : 영산사무소 061-352-6344

    전북 완주군 삼례읍 수계리 417번지에 소재한 원불교 산업기관입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삼례과원, 한국전쟁 이후에는 삼창과원으로 불리다가, 삼창공사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원기 37년(1952) 수계농원이라는 이름으로 체제를 재정비했습니다.
    본디 삼례과원은 각 지방 교당 및 중앙총부 유지 대책의 일환으로 세운 기관입니다. 그러나 삼례과원은 해방과 함께 통조림 생산을 목표로 했던 복숭아 과원이 판로를 잃게 되면서 운영난을 겪게 되었고, 이를 수습하기 위해 발족한 삼창공사마저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더욱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에 교단에서는 원기 37년 삼창과원을 수계농원으로 개명하고 근산 지해원을 원장으로 파견하여 주력사업을 전작 및 양계 양돈 사업으로 전환했습니다.

    원기 43년 근산 지해원이 건강상 이유로 휴무를 하게되자 그 후임으로 송일환 이사가 인삼 경작을 시작했는데 당시 목포교당인 염전사업가 김현관이 정산종사의 법문에 크게 감복하여 육영사업을 하기로 하고 적극 지원에 나섰습니다. 이로 인해 운영난에 허덕이던 수계농원에 활로가 트이기 시작했으며 본격적인 인삼 경작이 시작되었습니다.

    원기 46년 김현관이 그동안 수계농원에 투자한 투자금 전액을 희사할 것을 밝힘에 따라 중앙총부에서는 육영재단인 ‘은산재단’을 설립하고 용양 중인 근산 지해원을 다시 원장으로 보내 초급교무 산업훈련장으로 발전시켰습니다.

    1980년에 이르러 농원 일부가 전주 제3공단 부지로 편입됨에 따라 총 6만 7천여평 가운데 2만 7천 2백평을 공단부지로 내주고 현재는 3만 9천 6백여평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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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원불교 서울 남산 정각사터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17

    명칭 : 서울 남산 정각사터(正覺寺址)-서울보화원터
    번호 : 교적 제10호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726-157번지
    지정일 : 원기 91년(2006) 5월 9일
    연락처 : 문화사회부 063-850-3262

    이른바 문화통치를 표방하며 우리나라를 통지한 사이토 미노루 총독의 업적을 기리는 송덕비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본이 패망을 하자 약초관음사 주지 오오쿠보가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불교신문사 사장 나가무라 겐타로를 통해 불법연구회 서울지부장 최명부와 연결이 닿아 불법연구회에서 이를 매입하였습니다. 당시 서울지부 주무 황정신행과 성의철이 정보를 입수하고 사재 1천원을 건네주고 사들였던 것입니다.
    불법연구회는 이곳에 전재구호사업의 일환으로 전재고아를 돌보는 시설인 서울보화원을 설치하고 운영했으며, 절 이름을 정각사로 개칭하고 이곳에 서울출장소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황정신행이 이곳에서 서울보화원을 운영한 인연으로, 이승만 박사와 하지 장군의 고문으로 있던 쿠펠로가 한남동 서울출장소로 찾은 것이 인연되어 서울출장소에는 이승만, 김구, 여운영, 박헌영, 김성수 등 광복 후 많은 정객들의 모임장소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정각사는 1951년 인천상륙 개시 후 법당이 폭격을 당하여 파괴되었으며, 이듬해 10월, 국방부가 일방적으로 3,840평과 와가 1동에 대하여 징발조치를 하여 현재까지 미군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부지에는 한때 한남동 서울수도원과 원불교 예술인교당이 운영되어 왔으나 지금은 폐쇄되고 부지만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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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원불교 하섬 교서 편수터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17

    명칭 : 하섬 교서 편수터(荷島 正化社編修址)
    번호 : 교적 제11호
    소재지 : 전북 부안군 변산면 마포리 757
    지정일 : 원기 91년(2006) 5월 9일
    연락처 : 하섬해상훈련원 010-9229-3844

    하섬은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마포리 102번지에 위치한 3만 5천여 평의 작은 섬입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원기 4년 이곳 변산으로 들어와 정산 송규 종사 등과 함께 월명암 옆 쌍선봉에 올라 법인기도를 해제했습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이때 서해를 바라보다가 하섬을 발견하고, 저 섬 참 잘 생겼다. 꼭 연잎이 떠 있는 모습이구나!라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후 부안교당 하타원 정양진 교무가 변산면 마포리에 출장교화를 하던 중 우연히 섬주인 정원국의 안내로 하섬을 알게 되어 원불교 수양시설을 목적으로 매입을 추진해 여러 가지 원기 54년 원불교에 귀속되었습니다.

    원기 46년 여름 대산 종사(당시 수위단 중앙단원)가 이곳에 와 휴양을 하면서 <정전대의>를 초안하며 <교리실천도해>를 구상했습니다.
    원기 47년 9월에 < 정전 > 과 < 대종경 >으로 된 < 원불교교전 >이 완정 발간되자, 교서 편수 업무를 총괄하던 범산 이공전이 이곳 하섬으로 들어와 < 불조요경 >, < 예전 >, <원불교성가>, <정산종사법어>, <세전>, <원불교교사>, <원불교교헌>의 7종교서(7대교서)와 < 정전 > < 대종경 >을 합하여 원불교 9종교서가 결집 마무리 하였습니다. 정화사는 < 교고총간 >과 < 원불교전서 > 등을 발간하고 원기 62년 11월에 해체되었습니다.
    원기 72년에 하섬이 원불교 교서편수도량임을 기념하는 뜻으로 하섬 원음탑을 조성하였으며, 하섬은 하섬수양원, 하섬훈련원, 하섬해상훈련원으로의 변천 과정을 거치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하섬은 성천마을까지 1㎞정도 바닷길이 한 달에 두 번씩 음력 1일, 15일을 전후해서 각 5일 정도씩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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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원불교 대산 종사 탄생가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17

    명칭 : 대산 종사 탄생가(大山宗師誕生家)
    번호 : 성보 제15호
    소재지 : 전북 진안군 성수면 원좌길 33-10
    지정일 : 원기 85년(2000) 7월 6일
    연락처 : 좌포교당 063-432-1914

    원불교 3대 종법사인 대산 김대거 종사(1914~1998)가 탄생하고 성장한 곳입니다. 대산 종사는 원불교 3대 종법사로 원기 47년(1962)부터 원기 79년(1994)까지 33년간 재임하며 원불교 교단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탄생가는 1904년 지어진 한옥 건물로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원기 99년(2014) 대산 종사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현재의 모습으로 정비 보수되었습니다.

    원기 15년(1930)부터 대산 종사의 조모인 현타원 노덕송옥이 교무를 모셔와 이곳에서 법회를 보아오다가 원기 17년(1932) 팔산 김광선 교무가 '마령출장소'에 부임하면서 좌포에서 출장 법회를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소태산 대종사가 좌포출장소가 설립되기 전 좌포 지역 교도들에게 '피는 피로써 씻지 못한다.'라는 법문을 했던 사적지이기도 합니다.

    대산 종사는 원기 14년(1929)에 출가하여 익산 중앙총부에서 생활하다가 원기 18년(1933)에 의타원 이영훈과 결혼한 후 원기 21년(1936)에 사가를 정리하고 총부 구내로 이사하였습니다.
    이후 아우인 황산 김대설이 부모를 모시고 살다가 원기 96년(2011) 그의 부인 보타원 양보훈이 탄생가와 대지(1,144m2)를 교단에 희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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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원불교 상산 종사 탄생가(남원 몽심재)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17

    명칭 : 상산 종사 탄생가(남원 몽심재)(南原夢心齋)
    번호 : 성보 제16호(중요민속자료 제149호)
    소재지 : 전북 남원시 수지면 내호곡 2길 19
    지정일 : 원기 97년(2012) 1월 10일
    연락처 : 원불교몽심재성적지사무소 063-631-3844

    원불교의 대각여래위大覺如來位 중 한 분인 상산 박장식 종사(1911 ~ 2011)가 태어난 곳이다. 상산 종사는 원기 21년(1936) 원불교에 입교하여 원기 26년(1941) 교무가 되었습니다.

    상산 종사는 출가 이후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를 보필하며 원불교 초기경전인 '불교정전'의 편찬과 발행에 참여하였고, 원기 47년(1962)에는 교정원장에 추대되어 각종 법규 제정과 교단 행정 체제 확립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원기 96년(2011) 5월 4일 열반에 들자 대각여래위로 추존되었습니다. 상산 종사의 탄생가인 몽심재는 지리산 서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조선 시대 후기의 집으로 연당 박동식(1753~1830)이 세웠다고 합니다. 그의 집안에서 2명의 재상과 55명의 문과 급제자가 나왔는데 몽심재는 그 가문의 종가로써 상징적인 집입니다.

    원기 69년(1984) 중요민속자료 제149호로 지정되었고, 원기 85년(2000) 전라북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80호로 지정되었다. 원기 89년(2004) 종손 철산 박인기가 교단에 희사해 관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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