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총 19 건

소개
  1. 익산성지 배치도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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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익산성지 정기훈련터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17

    명칭 : 익산성지 정기훈련터(定期訓練址)
    번호 : 교적 제2호
    소재지 : 전북 익산시 익산대로 501
    지정일 : 원기 91년(2006) 5월 9일

    익산에 불법연구회 중앙총부가 건설되자 혜산 전음광 일가가 제일 먼저 집을 건축하여 이사했습니다.
    당시 중앙총부 건물은 초가집인데 비해 전음광의 집은 반든한 기와집이었습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원기 10년 봄에 정기훈련법을 제정 발표한 뒤 훈련법에 의한 첫 정기훈련(을축 하선乙丑夏禪, 6월 15일(음 5.6) ~ 9월 15일(음 8.6))을 개최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중앙총부에는 마땅한 훈련 장소가 없었으므로 전음광의 집 한쪽을 빌려서 임시선방으로 사용했습니다.
    전음광 가는 원기 47년 5월에 교단에서 매입하여 관리를 해오다가 건물의 노후화에 따라 원기 80년 기존 건물을 해체하고 그 터에 한옥 와가를 신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전음광 가의 본채가 있던 곳에 건축한 건물은 세심원, 창고터에 건축한 건물을 서정원이라 이름하였으며, 현재는 남자 교무들의 숙소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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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익산성지 익산총부 식당터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17

    명칭 : 익산총부 식당터
    번호 : 교적 제3호
    소재지 : 전북 익산시 신용동 344-2
    지정일 : 원기 91년(2006) 5월 9일

    익산 중앙총부 건설 당시 소태산 대종사와 제자들이 엿장사와 소작농으로 근근이 생활하는 형편을 알게 된 오타원 이청춘이 원기 10년 농토 70여 두락을 희사하고 본격적인 공동체 생활 을 위해 총부 구내로 이사를 단행하였습니다.
    이청춘은 원기 11년 세탁부 아래에 터를 잡고(현 공덕원 자리) 가옥을 신축한 뒤 모친 김설상화와 함께 이사하고 출가를 단행했습니다.
    이청춘의 사가는 이후 이청춘이 전주지부 교무로 부임함에 따라 한동안 환자들의 치병실 등으로 이용되다가 한 차례 개축 과정을 거쳐 중앙총부에 근무하는 전무출신들의 식당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서 건물이 퇴락하여 더이상 활용하기가 어려워짐에 따라 원기 80년 그 터에 한옥 와가를 신축하고 공덕원으로 명칭하였습니다.
    공덕원 건축 후 총부 호상소로 사용하다 내부시설을 사무에 적합하도록 재구성하고, 원기 94년부터 '원불교100년기념성업회'와 '대산종사탄생100주년기념사업회' 사무실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감찰원사무처 사무실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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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익산성지 만석평사적비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17

    명칭 : 익산 만석평(萬石坪)
    번호 : 교적 제4호
    소재지 : 전북 익산시 북일면 만석리
    지정일 : 원기 91년(2006) 5월 9일

    소태산 대종사는 원기 9년(1924)에 전라북도 익산군 북일면 신용리 344-2번지에 새 회상의 전진기지인 원불교 중앙총부를 건설하고, 이듬해 총부 유지와 생활 대책으로 인근 동양척식회사 소유 답 3,000여 평을 빌려 그 수익으로 공부 비용과 운영 경비 일부를 충당하였습니다.
    당시 선진들은 낮에는 폭염 속에 농사를 짓고 밤에는 감각 감상과 심신 작용 처리 건을 토론 하며, 소태산 대종사의 법설로 공부길을 지도받는 공동생활을 통하여 생활 종교의 토대를 굳건히 세웠습니다.

    만석평 소작농이 언제까지 이루어졌는지 자세한 기록이 전해지지는 않으나 원기 10년 오타원 이청춘이 70여 두락의 논을 교단에 희사하여 작농을 하게 되면서 그만둔 것으로 추측됩니다.

    성가 117장 '공덕탑의 노래' 중 2절 '익산 총부 건설 당시 엿장사이며 만석평의 밭 갈기도 눈물겨워라'는 당시의 어려웠던 정황을 노래 한 것입니다. 교단에서는 선진들의 자취를 기리기 위해 만석평 일대의 3,500여 평의 부지를 확보하고 원기 104년 만성교당에 만석평 사적비를 세워 기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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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익산성지 대각전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17

    명칭 : 익산성지 대각전(益山聖地 大覺殿)
    번호 : 성보 제5호(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79호)
    소재지 : 전북 익산시 익산대로 501
    지정일 : 원기 85년(2000) 7월 6일

    원불교 신앙의 대상이자 수행의 표본인 법신불 일원상이 최초로 모셔진 원불교 익산성지의 중심 건물입니다.
    원기 20년(1935) 복숭아밭이 있던 언덕에 터를 다듬어 지었는데 준공 당일 500여명의 대중들이 운집할 정도로 관심을 모았습니다.

    대중 집회를 위해 지어진 원불교 최초 건물로 완공과 함께 원불교 중앙총부에서 이루어지는 법회나 좌선 등 대부분의 대중 집회가 모두 이곳으로 옮겨졌습니다.
    당시 이리 시내에도 이처럼 큰 집회장소가 거의 없어서 인근 촌로들이 도시락을 싸들고 와 구경을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건축 당시에는 84평으로 지어졌으나 원기 40년(1955) 개축 공사를 통해 현재와 같은 107평 규모로 확장되었습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재세 시 이곳에서 직접 법회 및 행사를 주관했으며 열반 후 발인식과 종재식도 이곳에서 거행되었습니다. 소태산 대종사의 뒤를 이은 정산 종사는 원기 33년(1948) 4월 27일 제20회 총대회 때 이곳에서 원불교 교명을 선포하였습니다.

    원기 90년(2005) 문화재청으로부터 근대문화 유산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원기 92년(2007)과 97년(2012) 보수 공사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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