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총 14 건

소개
  1. 영산성지 소태산 대종사 최초법어터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17

    명칭 : 소태산 대종사 최초법어터
    번호 : 성적 제5호
    지정일 : 원기 85년(2000) 7월 6일

    소태산 대종사가 대각 후 노루목 오두막집에 허물어져 거처할 곳이 마땅치 않자 팔산 김광선 종사의 주선으로 임시 거처하던 곳입니다. 팔산 김광선 종사는 소태산 대종사의 첫 제자로 당시 전주 이씨의 세장산과 제각을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대각 후 40여 명의 제자를 모은 뒤 이곳에서 최초법어를 설하고 처음 교화를 시작하였습니다.

    소태산 대종사가 최초로 설한 법어는 수신의 요법, 제가의 요법, 강자 약자 진화의 요법, 지도인으로서 준비할 요법 등이었습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이곳에서 믿고 따르는 사십여 명의 제자 가운데서 신심이 굳은 여덟 사람을 먼저 골라서 표준 제자로 삼고 옥녀봉 아래 구간도실이 신축되기 전까지 이씨 제각과 강변주점을 오고 가며 저축조합과 간척사업을 이끌었습니다.
    현존하는 이씨 제각은 한국전쟁 이후 새로 지은 것이며 소태산 대종사가 최초법어를 설한 최초 교화지는 누전으로 완전 소실되어 현재는 빈터만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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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영산성지 영산 정관평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17

    명칭 : 영산 정관평
    번호 : 성적 제6호
    소재지 : 전남 영광군 백수읍 길용리 180-1, 2-2
    지정일 : 원기 85년(2000) 7월 6일

    소태산 대종사가 제자들과 함께 원기 3년(1918) 5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약 1년 동안 길룡리 앞바다 버려진 갯벌을 막아 간척한 농지입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대각을 이룬 후 따르는 제자들과 함께 저축조합을 결성하고 그 자본금으로 바다를 막는 간척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습니다. 당시에는 구호농장九虎農場으로도 불렸는데 구인제자가 이루어낸 농장이란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고 구호동이란 지명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하지만 원기 19년(1934) 회보에 ‘정관평’이란 이름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소태산 대종사 당대에도 정관평이란 이름이 함께 통용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정관평이란 명칭은 중국 당나라 태종의 연호 ‘정관’에서 따온 것으로 평화 안락한 지상 극락을 건설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정관평 간척 사업은 두 차례에 이루어졌는데 2차 간척사업은 후계 종법사인 정산 종사가 원기 40년(1955)부터 3년에 걸쳐 2만 7천 4백 82평의 간척답을 조성한 것입니다.

    정관평은 초기교단의 경제적 기반을 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소태산 대종사와 구인 제자가 자작자급, 주경야독, 영육쌍전의 창립정신을 이끌어 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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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영산성지 영산 구간도실터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17

    명칭 : 영산 구간도실터
    번호 : 성적 제7호
    소재지 : 전남 영광군 백수읍 길용리 산 11
    지정일 : 원기 85년(2000) 7월 6일

    소태산 대종사가 깨달음을 얻은 후 제자들과 함께 간척사업을 진행하면서 집회 장소로 이씨제각과 강변주점을 빌려 사용해 오다가 장소가 협소하고 내왕이 불편하므로 이를 해소하기 위 해 제자들과 함께 직접 지은 교단 최초의 건물입니다.

    원기 3년 음력 10월에 옥녀봉 아래에 터를 정한 뒤 썰물 때는 갯벌에 나가 간척사업을 하고 밀물 때는 나무를 베고 땅을 녹여 지은 집입니다. 초가지붕에 가로 세 칸 세로 세 칸으로 아홉 칸 방이 있어서 도(道)를 공부하고 기도하는 집이라는 의미를 더하여 구간도실이라고 하였습니다. 소태산대종사는 그 상량에 ‘사원기일월 직춘추법려 송수만목여춘립 계합천봉세우명梭圓機日月 織春秋法呂 松收萬木餘春立 溪合千峯細雨鳴’이라고 썼고, 기둥에 ‘대명국영성소 좌우통달 만물건판양생소大明局靈性巢 左右通達 萬物建判養生所’라는 글귀를 써 붙여 그 포부를 드러 냈습니다. 간척사업이 마무리 될 무렵 전국 각지에서 3.1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소태산 대종사는 “개벽을 재촉하는 상두소리니 바쁘다 어서 방언 마치고 기도드리자.”라며 제자들과 함께 사무여한 무아봉공의 정신으로 기도를 올려 법계의 인증을 받는 법인성사를 이루었습니다.

    구간도실은 원기 8년(1923) 지대가 낮고 장소가 협소하여 대중 모임에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에 따라 영산출장소로 옮겨졌으며, 건물명도 영산원으로 변경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구간도실이 있었던 자리에는 구간도실과 구인제자를 상징하는 기념물이 조성되어 순례객들의 참배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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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영산성지 소태산 대종사 탄생가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17

    명칭 : 소태산 대종사 탄생가(少太山大宗師誕生家)
    번호 : 성보 제1호
    소재지 : 전남 영광군 백수읍 성지로 1279-65
    지정일 : 원기 85년(2000) 7월 6일

    원불교를 창시한 교조敎祖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1891~1943)가 1891년 5월 5일 태어난 곳이자 1905년경까지 거주하며 유년기를 보낸 곳입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이곳에서 어린시절을 보내며 하늘의 이치와 인간사에 대한 의심을 발하였고 산신령을 만나기 위해 삼밭재를 오르내리며 5년간 기도 생활을 하였습니다.

    소태산 대종사가 1905년 구호동으로 이사한 뒤에도 한동안 사람이 거주했으나 어느 해 봄 뜻하지 않은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습니다.
    한때 구인제자 중 한 명인 칠산 유건 종사가 집을 짓고 살았으나 원기 44년(1959) 교단에서 이를 인수해 관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원기 66년(1981) 5월 19일 성지 장엄사업의 일환으로 1차 복원하여 건물이 노후화됨에 따라 원기 104년(2019) 4월 24일 2차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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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영산성지 대각전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17

    명칭 : 영산성지 대각전(靈山聖地 大覺殿)
    번호 : 성보 제2호(등록문화재 481호)
    소재지 : 전남 영광군 백수읍 성지로 1357
    지정일 : 원기 85년(2000) 7월 6일

    원불교 신앙의 대상이자 수행의 표본인 법신불 일원상이 모신 영산성지의 중심 건물입니다.
    정면에는 일원상을 봉안하였으며 그 왼쪽으로는 소태산 대종사의 진영을 모셨습니다.

    함석지붕을 올린 일본식 목조 건물로 내부는 기둥을 세우거나 공간을 구획하지 않고 탁트인 공간으로 구성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직접 감역해 지은 강당형 법당으로 건축 당시 만해도 영광 군내에서 가장 큰 건물로 꼽혔습니다. 원기 21년(1936) 12월 준공하여 법회 및 강연 등 종교 집회 장소로 활용하였으며, 현재는 원불교 영산성지를 찾는 순례객들의 참배 및 훈련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원기 72년(1987) 아시아 종교인평화회의 참석자들의 내방을 앞두고 한 차례 보수를 하였으나, 원기 84년(1999) 성지장엄사업의 일환으로 전면 재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원기 96년(2011) 10월 19일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48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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