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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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1. 영산성지 영산원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17

    명칭 : 영산성지 영산원(靈山聖地 靈山院)
    번호 : 성보 제3호
    소재지 : 전남 영광군 백수읍 성지로 1357
    지정일 : 원기 91년(2006) 5월 9일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1891~1943)가 대각을 이룬 후 첫 사업으로 저축조합을 설립하고 그 자산으로 창립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간척사업(일명 방언공사)을 하면서 관리사무소와 법회장소로 활용하기 위해 원기 3년(1918) 제자들과 함께 옥녀봉 아래에 지은 원불교 최초 건물입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이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버려진 개펄을 정관평 옥토로 바꾸는 간척사업을 이루었으며 파란고해의 일체생령을 구원하겠다는 기도를 올려 법계의 인증을 얻는 법인성사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지대가 낮은데다가 공간이 협소하여 많은 사람들이 내왕하기가 불편하다는 의견에 따라 원기 8년 현재의 장소로 이축하였습니다.
    옥녀봉 아래에 있을 당시에는 구간도실九間道室로 불렸으나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면서 3천 년 전 석가모니불의 영산회상을 재현한다는 의미로 '영산원靈山院'이라고 하였습니다.

    원기 9년(1924) 원불교 중앙총부가 익산에 건설되자 인근에 거주하는 청소년들을 교육하는 영산학원 활용되었으며 영산학원은 오늘날 영산선학대학교의 발전했습니다.
    원기 95년(2010) 전면 개보수 공사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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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영산성지 옥녀봉 제명바위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17

    옥녀봉 제명바위(玉女峰 題名岩)
    번호 : 성보 제4호
    소재지 : 전남 영광군 백수읍 길용리 산 5
    지정일 : 원기 91년(2006) 5월 9일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는 깨달음을 얻은 후 그 첫 사업으로 제 자들과 함께 저축조합을 설립한 후 간척사업으로 원불교 창립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제명바위는 간척사업으로 2만 6천여 평의 간척답을 마련한 후 그 준공을 기념하여 원기 4년(1919) 3월 세운 원불교 최초의 금석문金石文이자 가장 오래된 기록문記錄文입니다.
    칠산 유건 종사의 제안으로 간척답 정관평이 내려다보이는 옥녀봉 중턱 3m 높이의 자연석 바위에 시멘트를 발라가로 90cm 세로 45cm의 판석을 만든 후 팔산 김광선 종사의 글씨로 간척사업 참가자들의 이름을 음악으로 새겼습니다.

    원기 75년(1990) 세월의 흐름에 따라 시멘트가 마모되어 비문이 희미해져 감에 따라 그 아래쪽에 글을 탁본해 새긴 모형비를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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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영산성지 학원실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17

    명칭 : 영산성지 학원실(靈山聖地學院室)
    번호 : 교보 제1호
    소재지 : 전남 영광군 백수읍 길룡리 2-2번지
    지정일 : 원기 91년(2006) 5월 9일

    원기 8년(1923) 10월(음), 옥녀봉 아래 있었던 구간도실을 범 현동 현 위치로 옮겨 영산원을 지으면서 함께 건축한 집입니다. 8칸 2동(식당채와 학원실)의 ㄱ자형 초가 우진각지붕으로 지었습니다. 학원실은 원기 21년(1936) 12월 영산 대각전이 건축되기 직전까지 영산지역의 교도들의 법회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원기 17년 정산 종사가 영산지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인근 청소년들과 교단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영산학원단'을 결성할 때 교실과 숙소로 사용되면서 '영산학원실靈山學院室'로 불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영산학원실은 학원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영산지역 교도들의 동ㆍ하선의 장소로도 사용되었으며, 원기 41년(1956) 정관평 재간척사업이 시작되자 일부 공간이 방언 공사 사무실로 3년간 사용되었습니다.
    원기 49년 영산선원이 개원을 하면서는 선원생들의 교실 및 기숙사 등 교단의 인재양성 기관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영산학원실은 건축 당시에는 초가였으나 관리상의 문제로 원기 89년(2004) 3월 아영강판지붕으로 개조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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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영산성지 정관평 방언사무소터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17

    명칭 : 정관평 방언사무소터
    번호 : 교적 제1호
    소재지 : 전남 영광군 백수읍 길용리 170, 170-1
    지정일 : 원기 91년(2006) 5월 9일

    소태산 대종사는 원기 2년(1917)에 8인 제자와 더불어 저축조합을 창설한 후 조합원들이 저축한 자금과 가산을 정리하여 마련한 사재와 일부 차용금으로 바탕으로 숯을 사들여 적지 않은 이득을 보았습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목탄 사업을 통해 얻은 수익금으로 원기 3년부터 길룡리 해안 갯펄을 막아 농토로 만드는 대규모 간척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영촌마을 앞 개펄가에는 길룡리 인근에서 나오는 숯이며 장작, 연초 등을 거룻배에 싣고 법성포에 드나드는 작은 나루와 강변주점江邊酒店이 있었는데, 소태산 대종사는 이 강변주점을 집회 장소와 방언공사 임시사무소로 이용하였다. 이 방언공사 임시사무소에서는 사타원 이원화가 머물며 간척사업에 참여한 인부들에게 새참 등 먹거리를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간척사업을 하면서 임시사무소로 쓰던 강변주점은 좁고 불편하였으므로 원기 3년(1918) 옥녀봉 아래에 조합실 건축을 건축하고 방언관리소를 이사했습니다. 방언공사가 마무리 된 후에도 와탄천에서 들어오는 바닷물이 길룡천까지 드나들었으므로 나룻배들이 다녔으나 원기 41년(1956) 정관평 재방언공사를 착공하면서 길룡천 물길을 옥녀봉 아래로 돌리게 되자 강변나루는 자연히 폐쇄되었습니다. 방언사무소 터는 그 후 길룡리 170번지(하천)와 170-1번지(도로)로 분할되어 재단법인 원불교로 소유권이 이전되었으나 그 후 도로가 확장되면서 도로에 편입되었습니다.

    교단에서는 원기 86년 강변주점 터 옆 171-1번지 답을 매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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