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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1. 종남산송광사 대웅전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 유물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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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8월 8일 보물 제1274호로 지정되었다.

    송광사 대웅전에 모셔진 이 삼불좌상은 본존불인 석가여래를 중앙에 모시고, 좌협시(향우측)로는 약사여래를, 우협시(향좌측)로는 아미타여래를 배치하고 있다.

    무량사 소조아미타불상(540cm)과 함께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거대한 소조불상(565cm)으로, 신체 각 부분이 비교적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장중하고 원만한 얼굴과 두껍게 처리한 옷은 당당한 불상 양식에 걸맞는 표현 기법을 보여준다.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 표현은 강한 인상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조선 후기 양식이 나타나기 시작한 시대적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다.

    본존불인 석가여래상에서는 세 불상의 조성기와 『묘법연화경』을 비롯한 불경류, 후령통(喉鈴筒) 등 다수의 복장품이 발견되었다. 불상 조성기에 의하면 숭정 14년(인조 5년, 1641) 6월 29일 임금과 왕비의 만수무강을 축원하고,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있던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조속한 환국을 기원하면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명나라와 청나라의 연호를 함께 사용하고 있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당시의 극심한 혼란기를 극복하기 위한 국난 극복의 의지와 역사 의식의 반영과 함께 당시의 문화적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 불상은 만든 연대가 확실하고 역사 의식이 반영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로, 불상과 함께 복장유물 12종 중 불상조성기 3점과 후령통 3점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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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종남산송광사 지장전 소조지장보살삼존상 및 권속상 일괄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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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4월 23일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68호로 지정되었다.

    지장전은 지옥에 있는 모든 중생을 구제할 때까지 성불하는 것을 뒤로 미룬 대원본존(大願本尊) 지장보살과 도명존자, 무독귀왕을 모신 전각을 말한다.

    당나라 때 개원사 스님이었던 도명존자는 동명이인으로 잘못 판단한 저승사자에 의해 지옥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지장보살을 만난 후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무독귀왕은 『지장보살본원경』에 의하면 어떤 브라만의 딸이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찾으러 지옥에 갔을 때, 그녀의 어머니가 있는 지옥 세계를 보여주었다는 인연으로 지장보살의 협시로 등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명부전은 지장삼존상과 명부세계의 재판을 담당하는 10명의 왕인 시왕(十王)을 함께 모신 전각을 말한다.

    송광사 소조지장보살삼존상 및 권속상 일괄은 1999년 지방문화재로 지정될 당시에는 명부전에 봉안되어 있었으나, 명부전이 협소한 까닭에 지장전을 신축하고 지장전으로 옮겨 봉안하게 되었다.

    현재 지장전에는 지장삼존상을 비롯하여 시왕상 10구, 판관상 6구, 사자상 6구, 동자상 8구, 금강역사상 2구 등 총 31구의 존상이 봉안되어 있다.

    조성기에 의하면 1640년에 승명(勝明) 스님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17세기 명부신앙 연구에 귀중한 자료임을 알 수 있다. 이후 명부전의 존상들은 2005년에 보수·개채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에도 송광사 지장전은 우리나라 3대 지장성지로 유명하다.

  3. 종남산송광사 나한전 목조석가여래 삼존상 및 권속상 일괄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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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4월 23일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69호로 지정되었다.

    송광사 나한전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석가여래와 그 제자들이 설법 듣는 장면을 압축하여 표현한 것이다. 나한은 아라한(阿羅漢)을 줄인 말로, 중생에게 복덕을 주고 소원을 성취시키는데 독특한 능력이 있는 분을 말한다. 중국에 와서는 16나한 및 500나한 신앙이 성행하게 되었고, 이러한 나한신앙이 우리나라에도 전해지게 되었다.

    송광사 나한전에는 석가삼존상을 비롯하여 16나한상과 500나한상, 사자상, 제석범천상, 동자상 등이 봉안되어 있다. 중앙에는 석가여래상을 중심으로 좌협시(향우측)로는 미륵보살상이, 우협시(향좌측)로는 제화갈라보살상이 각기 높은 연화좌 위에 자리하고 있다. 16나한상은 본존을 중심으로 좌우 각 8구씩 배치되어 있으며, 오백나한상은 높이 25~40cm 정도의 작은 상으로 기둥 사이의 벽면에 봉안하고 있다.

    <조성기>에 의하면 오백나한상 역시 석가삼존상 및 16나한상과 함께 순치 13년, 즉 조선 효종 7년(1656) 조성한 것을 알 수 있다.

    송광사 나한전의 조각상들은 전각의 규모에 비해 그 규모가 당당하고 조각 솜씨가 우수하다. 또한 1656년의 제작 연대가 확실히 밝혀진 작품이라는 점에서 조선후기, 특히 17세기 불교조각사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손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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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종남산송광사 범종(梵鍾)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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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 6월 20일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38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십자형 종루 바닥에 놓여있는 송광사 범종은 전체높이 104.5㎝, 몸체높이 84.0㎝, 입지름 72.0㎝로, 종 몸체에 새겨진 기록에 의해 숙종 42년(康熙 55년, 1716년)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1977년 범종이 새로 조성되기 전까지 사용해 왔으나 이후 범종에 균열이 생겨, 1981년에 두 차례에 걸친 균열방지 작업 후 타종이 불가능해져 현재와 같은 상태로 보관되어 있다.

    몸체 중앙부의 배부분에는 네모꼴 연곽(蓮廊)을 비롯하여 보살상과 위패(位牌) 모양이 장식되어 있다. 거의 수직을 이루는 몸체의 하단부에는 연곽 바로 아래에, 범종을 조성한 시기와 봉안사찰· 봉안장소· 조성에 참여했던 스님들과 사주자 등을 기록하고 있다.

    범종에 새겨진 기록에 의하면 강희 55년인 숙종 42년(1716년)에 조성되어 광주 무등산 증심사 대웅전에 봉안되었는데, 어느 시기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송광사로 옮겨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또한 영조 45년인 1769년에 범종을 중수했다는 기록도 추가로 새겨져 있다.

  5. 종남산송광사 목조 삼전패(三殿牌)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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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4월 23일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70호로 지정되었다. 완주 송광사의 목패는 대웅전 안 석가여래상 옆과 약사여래상 및 아미타여래상 앞에 놓여 있다.

    당시 왕과 왕비 그리고 세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부처님 명호를 기록한 불패(佛牌)와 구분하기 위해 삼전하(三殿下)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삼전패(三殿牌)라고 일컫는다.

    높이가 약 230cm에 달하는 거대한 목패는 모두 3점인데,이들은 기본적으로는 동일한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세부의 문양에서 약간씩 차이가 있다. 여러 장의 나무판을 엮어서 만든 것으로 구름과 용을 뚫어새긴 것이 특징이다.

    석가여래상 옆의 목패는 임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고 있으며, 인조 때 조성된 것이라는 제작 연도가 기록되어 있다. 또한 왕과 세자를 위한 전패에는 정조 16년(1792)에 수리했다는 묵서명이 있어, 목패 연구에 기준작이 되고 있다.

    조각이 정교하고 크기가 거대하며 조성된 연대와 수리한 연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대다수 연대를 알 수 없는 조선시대 불교 목공예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