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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1. 종남산송광사 대웅전(大雄殿)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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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광사 대웅전은 1996년 5월29일 보물 제1243호로 지정되었다.

    대웅전은 석가여래를 큰 영웅 즉 대웅(大雄)이라 일컫는데서 유래한 것으로, 석가여래를 모신 전각을 말한다. 송광사 대웅전에는 조선후기에 유행한 석가여래·약사여래·아미타여래 즉 삼세불상(三世佛像)이 봉안되어 있다.

    중앙에는 사바정토의 교주인 석가여래, 향우측에는 중생들의 병고를 다스리는 동방약사유리광정토의 교주인 약사여래, 향좌측에는 서방극락세계의 교주인 아미타여래가 배치되어 있다. 또한 불단에는 왕· 왕비· 세자의 축원을 위한 용도로 제작된 조선후기 최대의 목공예품인 삼전패(三殿牌)가 있다.

    정면 5칸, 측면3칸의 대웅전은 「송광사사적기」에 의하면 초창 당시인 1622년에는 2층건물이었으나, 1857년에 건물이 기울어져 제봉선사에 의해 중수되면서 단층이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외부 기단은 가공된 장대석을 두르고 있는데, 최근 대웅전 주위의 흙을 걷어내 기단의 높이가 높아졌다. 지붕은 겹처마의 팔작지붕으로 추녀의 처짐을 보완하는 활주를 모서리마다 세워두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불상 크기에 비해 내부공간이 좁지만 천장부에 파격적인 장엄을 하여 천장 전체가 천개인 것처럼 꾸민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요소이다.

    대웅전 현판의 글씨는 선조의 아들인 의창군(義昌君)이 썼는데, 구례 화엄사 대웅전 현판 역시 의창군의 글씨여서 두 사찰과 의창군 그리고 벽암각성대사의 관계가 주목된다.

  2. 종남산송광사 종루(鐘樓)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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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광사 종루는 1996년 5월29일 보물 제1244호로 지정되었다.

    종루는 범종(梵鐘)·법고(法鼓)·목어(木魚)·운판(雲板) 등 사찰에서 의식 때 사용하는 불전사물을 봉안한 곳이다. 송광사 종루는 중앙의 1칸에서 사방으로 1칸씩 돌출된 아(亞)자형 평면의 2층 누각 건물로, 십자형 평면 위에 팔작지붕을 교차시켜 세웠다. 일반적으로 종루나 종각이 사각형으로 지어지는데 반해 송광사 종루는 보궁(寶宮)에 주로 채택되는 십자형이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2층의 누마루는 우물마루로 구성되고 주위를 계자난간을 두르고 계단이 있는 쪽만 개방되어 있다.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사진에는 기둥 바깥으로는 마루가 설치되지 않고 계자난간도 없어 지금과 같은 마루와 계자난간은 『조선고적도보』 에 실린 사진 촬영 이후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송광사의 종루는 현재까지 그 연혁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없어 건물의 연대를 명확히 알 수 없지만 1814년 혹은 1857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종루에 걸린 범종·법고·목어·운판 등은 1977년에 조성된 것이고, 바닥에 놓인 범종은 1716년(숙종 42)에 무등산 증심사에서 조성되어 1769년(영조 45)에 중수된 것이다.

  3. 종남산송광사 나한전(羅漢殿)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6-04
    송광사 나한전은 석가삼존상과 16나한 및 500나한을 모신 전각으로, 1999년 7월 9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72호로 지정되었다.

    나한전은 깨달은 성자인 나한을 모신 전각인데 송광사 나한전에는 석가삼존상과 16나한 및 500나한을 봉안하고 있다. 석가삼존상은 중앙에 석가여래, 향우측에 미륵보살, 향좌측에 제화갈라보살로 구성되어 있다. 나한전은 1999년 7월 9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72호로 지정되었다.

    나한전은 대웅전 뒤쪽의 향우측, 즉 대웅전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오백나한전이라고도 불린다. 나한전 뒷부분이 산비탈이어서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송광사 나한전은 1656년(효종7)에 벽암각성대사가 송광사를 중창할 당시 건립되었으며, 1934년 해광스님이 중수하였다고 전한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으로 옆면 지붕선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건물이다. 또한 지붕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되어있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짜맞추어 천장 윗부분을 가리게 꾸민 우물천장이다.

    내부에는 목조 석가여래삼존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16나한과 오백나한·금강역사·동자상·사자상 등이 봉안되어 있다.
    송광사 나한전은 영험한 나한기도처로 유명하다.


  4. 종남산송광사 금강문(金剛門)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6-04
    송광사 금강문은 1999년 7월 9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73호로 지정되어 보호 관리되고 있다.

    금강문은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역사를 모시는 문인데, 조선후기 금강문에는 중앙 통로 좌우로 두 명의 금강역사와 문수보살·보현보살이 함께 봉안되어 있다.

    송광사 금강문은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건물이다. 지붕 천장을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이고, 천장은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연등 천장이다. 앞면 3칸 중에 가운데칸이 출입구이고, 양 옆칸에는 금강역사와 동자 모습의 사자를 탄 문수보살상과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현보살상이 배치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금강문은 새날개 모양으로 장식된 익공양식의 공포와 지붕 옆모습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되어있어 규모도 작고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송광사 금강문은 다포계 팔작지붕인 점이 특징이다.

    벽암각성(1574~1659) 대사가 중창한 충북 보은 법주사· 전남 구례 화엄사· 경남 하동 쌍계사, 그리고 완주 송광사는 일주문 → 금강문 → 천왕문의 가람배치를 이루고 있어, 임진·정유 양란 이후 신중신앙이 호국신앙과 연결된 가람 배치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5. 종남산송광사 일주문(一柱門)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6-04

    일주문은 1971년 12월 2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었다.

    일주문은 송광사의 입구에 세워 속세와 불계(佛界)의 경계 역할을 하는 상징물로 조선 후기에 지은 것이다. 원래 지금의 위치에서 약 3㎞ 떨어진 곳에 세웠던 것인데, 절의 영역이 축소되어 순조 14년(1814)에 조계교 부근으로 옮겼다가 1944년에 현재 자리로 옮긴 것이다.

    건물은 2개의 원기둥을 나란히 세우고 그 위에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간결한 맞배지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공포는 용 머리를 조각하는 등 조선 중기 이후의 화려한 장식적 수법을 엿볼 수 있다. 기둥의 앞뒤로 연꽃무늬를 장식한 보조기둥을 세워 안정감을 주고 있으며, 앞면 중앙에는 ‘종남산송광사(終南山松廣寺)’라는 현판이 걸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