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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1. 종남산송광사 천왕문(天王門)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6-04
    천왕문은 사천왕을 모시는 곳이다.

    송광사는 사천왕을 모신 곳을 천왕문으로 하지 않고 천왕전으로 건축하여 이곳은 여닫는 문으로 되어 있다. 현판도 사찰에 들어오는 쪽에는 천왕문으로, 대웅전 쪽에는 천왕전으로 현판을 달았다.

    사천왕은 갑옷을 입고 위엄이 충만한 무인상을 하고, 동·서·남·북의 사천국을 다스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 초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는 사찰입구에 사천왕문을 세워 모시고 있다.

    서방 광목천왕상 왼쪽 머리끝 뒷면에는 조선 인조 27년(1649)에 조성된 것을 알 수 있는 글이 있으며, 왼손에 얹어놓은 보탑 밑면에는 정조 10년(1786)에 새로이 보탑을 만들어 봉안한 기록이 있다.


  2. 종남산송광사 사적비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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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1년 12월 2일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다.

    송광사 약사전에서 승탑원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으며, 절의 개창(開創)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높이 240cm, 폭 94㎝이다. 형태는 거북받침돌 위에 비신(碑身)을 올리고 용을 새긴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비의 앞면에는 비 이름과 비문이 새겨 있는데, 고려 보조국사가 전주 종남산을 지나다가 절터를 잡아놓고 제자들에게 절을 지을 것을 당부하였다는 내용과, 보조국사 지눌에서 벽암각성 대사에 이르는 스승과 제자의 계보가 주된 내용이다. 뒷면에는 송광사를 짓는데 참여했던 승명(勝明) 스님의 말을 인용하여 절을 짓게 된 경위 및 벽암각성 대사의 제자와 시주한 사람, 개창 당시 장인(匠人)들의 이름을 기록하였다.

    조선 인조 14년(1636)에 세운 비로, 신익성이 비문을 짓고, 선조의 아들인 의창군 광이 글씨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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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광사 사적비 이수, 163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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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광사 사적비 비문, 1636년

  3. 종남산송광사 승탑원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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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광사 벽암대사 승탑은 1999년 4월 23일에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44호로 저정되었다.

    완주 송광사 승탑군은 대웅전에서 북쪽으로 약 130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 승탑군 주변은 돌담으로 둘러쌓여 있으며 16구의 승탑과 2기의 비가 있다. 완주 송광사 승탑들은 지붕인 옥개(屋蓋)가 있고 탑신이 둥근 형태인 승탑과, 범종 모양의 석종형(石鐘形) 등 두가지 형식으로만 조성되어 있다. 완주 송광사는 승탑원에 명문이 있는 승탑이 남아있기 때문에, 조선후기 어떤 스님들이 이곳에서 수행했는지를 알 수 있어 귀중한 역사 자료로서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

    특히 승병장으로 유명하였던 벽암 각성대사의 승탑이 이곳에 세워져 있다는 사실은 주목된다. 승탑의 형태는 둥글게 다듬은 바닥돌 위로 종모양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사각의 지붕돌을 얹어놓은 모습이다.

    탑신에는 ‘벽암당(碧巖堂)’이라는 법호를 새겨 그 주인공을 정확히 밝히고 있다. 벽암각성 대사는 조선 현종 원년인 1660년에 완주 송광사에서 돌아가셨다고 전하고 있어 승탑을 세운 것도 그 즈음으로 추측된다.

  4. 종남산송광사 보조선사 체징(普照禪師 體澄:804~880)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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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 승탑 /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 탑비


    보 체징선사는 선문구산(禪門九山) 중 가지산파의 제3조로 어려서 출가했다. 827년에 보원사에서 구족계를 받았으며, 그 뒤 설악산 억성사의 염거화상 밑에서 수행했다.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잠시 백련사에 머물며 수행하기도 했다. 837년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 840년에 귀국하여 많은 스님들에게 선(禪)을 가르쳤다.

    선사가 점지해준 절터에 1622년부터 역사를 시작해 많은 전각을 중수해 송광사를 ‘선종대가람(禪宗大伽藍)’으로 사액됐다. 전남 장흥 보림사에 <보림사보조선사창성탑비(寶林寺普照禪師彰聖塔碑)>와 <보조선사탑>이 남아 있다.

  5. 종남산송광사 대각국사 의천(大覺國師 義天 : 1055~1101)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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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각국사 의천의 진영 (순천 선암사 소장)


    대각국사 의천은 고려 문종의 넷째 아들로 속명은 왕후(王煦), 호는 우세(祐世), 법명은 의천이다. 불교 전적을 정비하고 『고려속장경』을 간행하였으며, 천태종을 세워 교단의 통일과 국가 발전을 도모하였다. 중국 송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와 천태종을 개창하자, 사명을 백련사로 다시 고치고 천태종에 귀속했다.

    화엄종 계통의 승려였던 그가 천태종을 세운 것은 천태의 근본 사상인 회삼귀일(會三歸一)과 일심삼관(一心三觀)의 교의로써 국가적 기반을 공고히 하고, 선(禪)과 교(敎)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시호는 대각국사이며, 비는 북한 영통사와 선봉사에 건립되었다. 대각국사 의천의 진영은 현재 순천 선암사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