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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1. 보문사의 문화재 - 연수식(輦垂飾)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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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수식(輦垂飾)
    제작년도 : 조선시대 제작
    크기전체 250x43cm, 술길이 250

    보문사에는 조선시대 후기 왕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음을 극락보전 상량문내용을 통하여도 알 수 있다. 이 연 수식은 어느 왕비가 하사했다고 전하는데, 궁중 매듭의 빼어난 솜씨와 우아한 품격을 원형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유물이다. ‘연 수식’이란 연에 달았던 장식을 말한다. 연은 사찰에서 불교의식이나 불상을 옮길 때 사용하는 가마 형태로서, 장식적 요소를 많이 가미하여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수식은 장식을 말하는데 연의 화려함을 나타내는데 필수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94개의 수식을 구성하는 주체는 그 재료에 따라 자수품, 유리구슬, 옥류, 향의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특히 자수 장식의 형태들은 주로 무병장수를 상징하는 복숭아, 칠보의 하나인 호리병 모양 여의보주, 부채 등 다양하다. 황색, 적색, 청색, 녹색, 백색 계열의 동다희 끈으로 매듭을 맺고 끈술을 길게 드리우고, 끈술의 하단에는 도래매듭을 맺었다. 이처럼 화려한 수식을 연에 달았던 배경에는 부처님께 공양하여 높은 공덕을 쌓고자 했던 조선 여인들의 간절한 마음이 있다.


  2. 보문사의 문화재 - 인로왕보살번(引路王菩薩幡)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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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로왕보살번(引路王菩薩幡)
    제작년도 : 19세기 제작
    크기전체 204.8x59, 유소 길이 162cm, 술 길이 22cm

    번이란 불보살의 위덕과 무량한 공덕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깃발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전각내의 기둥이나, 야외에서 법회를 열 때는 마당에 세운 당간 혹은 탑 상륜부에 매달기도 하였다. 장엄수라고도 한다. 보문사의 인로왕보살번은 조선 왕실에서 하사한 것으로 전한다.

    붉은색 단 바탕에 금사로 ‘나무대성인로왕보살(南無大聖引路王菩薩)’이라는 명문을 수놓았으며 금사로 서원문과 당초문을 수놓고, 번미에는 연꽃과 연밥무늬를 섬세하게 수놓았으며 유소를 드리웠다. 유소는 오방색 동다희로 석씨, 난간매듭을 두른 네벌감개, 도래, 삼정자, 가지방석 매듭 등으로 장식하였으면, 오방색 방망이술을 달아 화려함을 더했다.

    부산 범어사에 이와 동일한 특징을 갖춘 장엄수 두 폭이 소장되어 있다. 1902년 범어사 계명암에서 황실의 번영을 위한 국제를 거행할 때 황실에서 하사한 것으로, 19세기 말 조선 왕실의 자수 기법과 매듭 경향을 볼 수 있는 중요한 편년 작품이다. 이 번은 범어사의 장엄수와 똑같은 자수 기법을 사용했다는 점, 그리고 유소를 이루고 있는 매듭의 종류와 색상 등이 거의 일치하는 점 등으로 미루어, 그 제작 시기를 19세기를 추정할 수 있다.


  3. 보문사의 문화재 - 한복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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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장유물(腹藏遺物) - 의복(衣服)

    이 한복은 두루마기의 일종으로, 중치막(中致莫)이라는 것이다. 이 중치막처럼 옆선을 덧붙여 폭이 큰 것은 전통의복 양식으로 볼 때 17세기 말에 유행했던 형태이므로 제작시기를 알 수 있다. 소매 부분이 길어서 접은 상태인데 이는 곧 이 옷이 실제 입었던 것임을 말해준다. 전체적으로 정교하고 섬세한 바느질이 돋보인다. 옷깃에 발원문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임진년에 태어난 이씨 모(某)와 갑진년에 태어난 구씨 희임 양위(兩位)가 올립니다. 부처님 제가 원통하게 남편을 여의었습니다. 이렇게 보시하오니 부디 저희 두 사람 후세에 좋은 곳에 환생하여 다시 만나 두 몸이 오랫동안 백 년 함께 살며 아울러 부처님도 만나게 해주시기 청하옵니다.

    비록 현세에는 남편과 사별했지만 후세에 다시 만나서 백년해로 하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기원하는, 홀로 남겨진 아내의 갈망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글이다. 정교하고 섬세한 바느질이 돋보이는 이 옷은 의류학자들에 의해 17세기 후반에 남성이 실제로 입었던 옷으로,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여인이 남편이 평소 입었던 옷을 시주한 것이고 옷의 크기도 성인이 입었던 것임에 분명하다는 결론이 났다.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좀 더 연대를 좁혀 볼 수 있다. 발원문 속에 명확하게 언급된 건 아니지만 자식에 관한 말은 없고 오로지 금생에 다하지 못한 부부의 해로의 기원이 주로 강조 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여인의 나이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사이가 아니면 50대 이상의 나이일 것으로 추정된다. 만일 이런 짐작이 맞는 다면 남편 이씨가 태어난 임진년은 1652년, 부인 구씨가 태어난 갑진년은 1664년으로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옷이 복장으로 넣어진 시점은 대체로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반일 것이며, 이는 곧 이 한복을 복장에 넣은 극락보전 불상이 제작된 시기이기도 할 것이다.

  4. 보문사 은영유치원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6-11

    은영유치원은 아이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꿈을 키워나가는 곳 입니다!!
    보문사 은영유치원은 1987년에 설립하여, 부처님의 자비와 생면종중 사상에 바탕을 두어 교육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성장발달에 적합한 교육환경을 만들어 인성교육에 중점을 두고있는 교육관을 은영유치원의 자랑입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유치원으로서 보문사를 대가람으로 일구어 내신 송은영 스님의 교육이념을 이어받아 유아와 교사 및 학부모가 삼위일체가 되어
    행복한 유치원, 신나는 유치원, 즐거운 유치원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육상담 02-926-9278
    https://cafe.daum.net/dmsdud9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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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보문사 소개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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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문화재와 역사적 전통성을 지닌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도량”

    서울의 전통사찰로 등록된 보문사는 서울특별시 성북구 보문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려 예종 10년(1115)에 담진국사(曇眞國師)에 의하여 창건되었다.

    특히, 퇴경 권상로(退耕 權相老, 1879~1965)가 저술한 「퇴경전서-보문사일신건축기(普門寺一新建築記)」에는 옛 부터 비구니스님들이 상주하며 국가의 안녕과 왕실의 번성을 기원하는 비구니 사찰로 기록하고 있다. 그 사이의 내용은 전해지지 않다가 2017년 극락보전 중수 불사를 진행하던 중 온전한 상태의 상량문이 발견되어 역사적 사실이 입증되었다.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된 극락보전은 건륭12년(1747. 조선 영조 23년) 최초 중건되었으며, 도광4년(1824. 순조 24년) 1차 중수, 동치4년(1865. 고종 2년)에 2차 중수되었음이 밝혀졌다. 퇴경전서에 의하면 1826년에 수봉법총(秀峰法聰)스님이 만세루를 신축하였으며, 1827년에 정운(正雲)스님이 좌우 승당을 건축하였다고 한다. 1842년에는 영전(永典)스님이 만세루를 수리하고, 1872년에 금훈(錦勳)스님이 좌우 승당을 중수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극락보전 상량문의 발견으로 보문사는 1800년대부터 줄곧 비구니 스님들이 상주하며 수행·정진하였으며, 특히 동치4년 상량문에서는 왕실발원 사찰로 조선왕조의 왕실의 시주를 받아 불사를 진행하고 후궁과 상궁 등 궁인에서부터 사대부, 평민에 이르기까지 불사에 동참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상량문과 더불어 그 어느 건축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상량복장물도 함께 발견되어 문화재적 가치뿐만 아니라 역사성과 전통성을 모두 갖춘 총본산으로서의 면모를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이와 더불어 보문사에는 왕실에서 하사한 연(輦)수식과 인로왕번(引路王幡)을 비롯하여 조선 후기에 제작한 석가불도, 신중도, 지장보살도 등 서울시 유형문화재, 조선 전기에 제작된 묘법연화경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밖에도 다수의 유·무형의 문화재들이 남아있다.

    서울 지역에 몇몇 남지 않은 비구니 도량 – 보문사!

    보문사에는 조선후기부터 불리워 온 탑골승방이라는 별칭이 있다. 조선후기 한양지도인 「수선전도(首善全圖)」에도 승방(僧房)으로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탑골승방은 서울의 낙산 아래 동망봉을 경계로 청룡사, 미타사 등 비구니 도량이 군집해 있어 생긴 이름이다. 보문사는 옥수동의 두뭇개승방, 석관동의 돌곶이승방, 숭인동의 새절승방(청룡사)과 함께 비구니 스님들이 거처하는 성 밖의 네 니사(尼寺)중 하나로, 단종의 왕비 송씨와 연관된 동망봉과 청룡사, 미타사가 이웃해 있어 이곳이 왕비와 후궁들의 기도처 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보문동이란 동명(同名) 또한 보문사에서 유래되었다. 보(普)는 몸체에 온갖 덕을 갖춘 것을 말하고, 문(門)은 쓰임이 나타나는 곳을 말한다. 따라서 보문은 곧 보살이 일체의 성덕(性德)을 모두 갖춘 상태에서 기회와 시기를 따라 그 묘용을 보임을 말하는 것으로 관세음보살의 넓은 구세화신(救世化身)의 원력행을 말한다. 1980년 7월 서울특별시조례에 의해 보문제1동과 보문제2동이 통폐합되어 보문동으로 조정되어 오늘에 이른다.

    일제 강점기에는 절이 황폐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광복과 함께 주지 은영스님이 취임하면서 30여 년간을 불사의 중흥과 건물 중창에 전력하여 대사찰의 면모를 갖추었다. 은영스님은 석굴암을 비롯한 많은 건축물을 새롭게 짓고, 보문종이라는 독립된 종단을 설립함으로써 비구니스님들만의 고유한 수행 풍토를 유지하고자 하였다. 또한, 보문사는 세계 유일의 비구니 종단인 대한불교보문종의 총본산이자 수사찰(首寺刹)로 도심 속에 큰 숲을 품고 있으며, 어른 스님때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스님들의 범패(梵唄)는 예로부터 알려진 무형자산이다.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처인 만큼 정갈하고 단아한 가람. 그리고 정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수행도량으로 많은 참배객과 외국인들이 찾아오는 관광의 명소이기도 하다. 보문사 대중스님들은 한국 불교 발전을 위해 포교, 사회복지, 교육 활동에 오늘도 전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