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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인천교구
대표전화 032-765-6961
팩스 032-836-8008
  주소 인천 옹진군 백령면 백령로254번길 66
   인천 옹진군 백령면 진촌리 807-1 백령천주교회
   66 Baengnyeong-ro 254beon-gil, Baengnyeong-myeon, Ongjin-gun, Incheon
  • 상품 정보

    상세설명

    1846년 김대건 신부가 페레올 주교의 지시로 중국에 와 있는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들에게 서한을 전하기 위해 백령도에 와서 중국 어선 선주에게 서한을 주고, 순위도(巡威島)에 돌아와 관헌에게 잡히게 된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해로를 통하여 김대건 신부의 안내로 입국에 성공한 페레올 주교는 조선에 들어올 선교사들이 국경을 넘어 육로로 들어오는 입국로가 1839년 기해박해로 앵베르 주교,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가 잡혀 순교하게 되자, 김대건 신부에게 서해를 통한 선교사 입국로를 개척하게 하였던 것이다.

    백령도 인근 해역에 어군의 형성으로 중국에서 모여드는 어선들을 활용하여 백령도에 잠입하고, 백령도로 안내하러 온 교우들을 만나 입국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백령도는 선교사들의 조선으로의 입국에 도움을 주는 천혜의 위장지가 되었다. 현재 백령도 인근 해안 중 중국 어선이 많이 모였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은 관련 문헌이 없어 확실히 알 수 없지만, 구전과 주민들의 기억으로 백령도 서쪽 중화동과 연화리 근해가 선교사들이 조선 안내 교우를 만날 수 있었던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한종오)

    1795년 중국인 선교사 주문모 신부 입국부터 1880년까지 방인 신부인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 그리고 파리 외방선교회 소속 선교사 28명 중 입국시 백령도와 인연을 갖은 선교사가 19명이고, 그중 성인이 된 선교사는 7명이나 된다.

    박해시 선교사 입국에 ‘약속 장소’로 큰 몫을 한 백령도는 심한 박해 와중에서도 순교를 각오한 선교사들의 입국에 도움이 되어 한국 천주교회의 발전에 기여하였고, 한민족에게 그리스도의 복음과 동서 문화와 사상을 만나게 해준 역사적인 장소이다. 그러므로 백령도는 한국 천주교회의 문화 유적지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동서 문화와 사상적 의미로 재조명되어야 할 장소인 것이다. (한국천주교회사, 한국교회사연구소 참조)

    박해시 선교사 입국에 ‘약속 장소’로 큰 몫을 한 백령도

    1846년 김대건 신부가 페레올 주교의 지시로 중국에 와 있는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들에게 서한을 전하기 위해 백령도에 와서 중국 어선 선주에게 서한을 주고, 순위도(巡威島)에 돌아와 관헌에게 잡히게 된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해로를 통하여 김대건 신부의 안내로 입국에 성공한 페레올 주교는 조선에 들어올 선교사들이 국경을 넘어 육로로 들어오는 입국로가 1839년 기해박해로 앵베르 주교,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가 잡혀 순교하게 되자, 김대건 신부에게 서해를 통한 선교사 입국로를 개척하게 하였던 것이다.

    백령도 인근 해역에 어군의 형성으로 중국에서 모여드는 어선들을 활용하여 백령도에 잠입하고, 백령도로 안내하러 온 교우들을 만나 입국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백령도는 선교사들의 조선으로의 입국에 도움을 주는 천혜의 위장지가 되었다. 현재 백령도 인근 해안 중 중국 어선이 많이 모였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은 관련 문헌이 없어 확실히 알 수 없지만, 구전과 주민들의 기억으로 백령도 서쪽 중화동과 연화리 근해가 선교사들이 조선 안내 교우를 만날 수 있었던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한종오)

    1795년 중국인 선교사 주문모 신부 입국부터 1880년까지 방인 신부인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 그리고 파리 외방선교회 소속 선교사 28명 중 입국시 백령도와 인연을 갖은 선교사가 19명이고, 그중 성인이 된 선교사는 7명이나 된다.

    1795년∼1880년 입국로에 따른 방인·외국인 선교사 인원
    육로로 입국한 선교사 : 6명
    육로와 해로로 입국한 선교사 : 1명
    해로로 입국한 선교사 : 24명
    백령도를 통해 입국한 선교사 : 13명
    백령도로의 입국 시도에 실패한 선교사 : 6명
    ※ 입국 시도 시 백령도와 인연을 맺은 선교사 : 19명
    ※ 백령도와 인연을 맺은 성인 : 김대건 신부, 베르뇌 주교, 오매트르 신부, 위엥 신부, 볼리위 신부, 도리 신부, 브르트니에르 신부

    박해시 선교사 입국에 ‘약속 장소’로 큰 몫을 한 백령도는 심한 박해 와중에서도 순교를 각오한 선교사들의 입국에 도움이 되어 한국 천주교회의 발전에 기여하였고, 한민족에게 그리스도의 복음과 동서 문화와 사상을 만나게 해준 역사적인 장소이다. 그러므로 백령도는 한국 천주교회의 문화 유적지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동서 문화와 사상적 의미로 재조명되어야 할 장소인 것이다. (한국천주교회사, 한국교회사연구소 참조)


    백령도성당 순교신심 순례지 1박2일 코스

    † 첫째날 : 성당 – 관창동 – 신화동 – 가을리 – 두무진
    성당 – 관창동 : 브뤼기에르 주교길(조선초대 대목구장) : 관창동 (브뤼기에르 주교 기록관)
    관창동 – 신화동 : 엥베르 주교길(조선2대 대목구장) : 신화동 (엥베르 주교 기록관)
    신화동 – 가을리 : 페레올 주교길(조선3대 대목구장) : 가을리 (페레올 주교 기록관)
    가을리 – 두무진 : 베르뇌 주교길(조선4대 대목구장) : 두무진 (베르뇌 주교 기록관)

    † 둘째날 : 연화리 – 소가을리 – 장촌 – 화동 – 사곶 – 용기포

    연화리 : 오매트르 사제길 (오매트르 사제 기록관)
    연화리 – 소가을리 : 위엥 사제길 : 소가을리 (위엥 사제 기록관)
    소가을리 – 장촌 : 볼리위 사제길 : 장촌 (볼리위 사제 기록관)
    장촌 – 화동 : 도리 사제길 : 화동 (도리 사제 기록관)
    화동 – 사곶 : 브르트니에르 사제길 : 사곶 (브르트니에르 사제 기록관)
    사곶 – 용기포 : 김대건 사제길 : 용기포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기록관)


    찾아가는 길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배 승선
    인천항 → 백령도 : 07:50 / 08:30 / 13:00
    백령도 → 인천항 : 07:00 / 12:50 / 13:30
    (성수기, 비수기 운항의 변동이 있습니다. 인천연안여객터미널사이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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