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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설명
김대건기념관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이며 순교자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가 성소(聖召)의 씨앗을 받아드렸던 곳이자 그 열매가 가장 풍성 하게 열렸던 곳이 은이(隱里)이다. 이곳에 그가 사제서품을 받았 던 상해 김가항 성당의 이전 복원과 함께 김대건 신부를 현양하는 기념관을 건립하여 김대건 신부의 영성 연구와 신앙 체험의 중심이 되게 하였다.
김대건 신부의 생애 주요사건을 탄생 - 성장 - 세례와 신학생 선발 - 유학 - 서품 - 사목활동 - 순교 등 7단계로 구분할 때 은이성지 는 김가항 성당의 복원건립으로 인해 성장, 세례와 신학생 간택, 서품, 사목 활동 등 4단계의 직접적인 장소로서 김대건 신부와 관련된 그 어떤 성지 보다도 의미가 크다.
전시내용
1. 김대건 신부의 생애와 발자취 : 패널과 관련자료(친필서한, 서적, 문서 등)로 구성
① 출생과 어린 시절(1821년~1836년)
② 중국에서의 유학과 사제서품(1836년~1845년)
③ 귀국 후 사목활동과 순교(1845년~1846년)
④ 순교 후 시복과 시성(1846년~1984년)
2. 박해시대 은이 교우촌 : 고지도, 교우촌, 박해시대 신앙생활상 을 보여주는 천주가사, 십자가, 상본 등 역사자료와 유물
3. 김가항 성당의 복원과정 : 실측 및 복원설계 도면, 김가항성당 철거부재, 사진 등 관련자료 패널
4. 김대건 신부와 성상미술 : 김대건 신부를 주제로 한 성상화 및 성상조각 전시
5. 기타 교회사 자료, 유물 : 은이성지가 보유하고 있는 교회 서적류, 제의류, 제구류, 전례 기물
6. 세례터와 서품장소(김가항성당 복원)를 연계한 공간
김가항성당
김대건 신부가 사제 서품을 받았던 중국 상해의 김가항 성당은 명말(明末) 숭정 년간(1628~1644)에 김씨 성을 가진 교우들에 의해 황포강 건너 김가항에 처음 세워졌다. ‘김가항(金家巷)’은 ‘김씨 성을 지닌 사람들의 골목’이란 뜻이다.
김가항 성당은 그 후 증축되어 서쪽에 세웠던 작은 성당이 동쪽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커졌고, 다시 좌우 공간을 한 칸씩 증축하여 출입구의 축을 바꿈으로써 정면 3칸 측면 5칸의 규모가 되었다. 1841년에는 남경교구 주교좌 성당 으로 되었는데, 김대건 신부가 사제 서품을 받았던 845년 8월 17일 당시는 물론이고 적어도 1847년까지는 주교좌성당으로 남아 있었다. 1872년에는 700~8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성당을 별도로 짓고 김가항 성당은 학교로 사용하였다. 1937 년 일본군의 포화로 대성당이 붕괴되자 1849년 그 자리에 1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고딕양식의 대성당을 건축 하였다.
그러나 고딕 양식의 대성당이 문을 연지 한 달도 안 되어 국민당 정부군에 의해 폭파되자 다시 옛날 김가항 성당을 수 리하여 본당으로 사용하였다. 이 성당은 철거될 때까지 그 외관이 계속 유지되었다.
김가항 성당은 1990년에 그곳을 방문한 오기선 신부에 의 해 국내에 다시 알려지게 되었으나, 2000년 7월에 상해 정 부의 도시 개발 정책에 따라 성당 철거계획을 통보받았다.
2001년 3월 30일 김가항 성당이 철거되자, 수원교구는 주 교회의 승인을 거쳐 은이성지에 김가항 성당 복원계획을 수립하였고 2013년 7월 5일 옛 공소터 매입 후 2016년 9월 에 김가항 성당을 복원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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