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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정보
상세설명
예수 성심 전교 수녀회
주보 : 성 토마스 사도
신자수 : 755
공소수 : 3머루산교우촌
구머리(포산, 머루산)는 본래 진보군 석보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의 폐합에 따라 영양군 석보면에 편입되었다. 임진왜란 때의 피난지였던 이곳에 1801년(신유)박해 후에 충청도의 홍주, 예산 등 여러 곳에서 피난 온 신자들이 숨어 들어와서 교우촌을 이루어 살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1815년 청송 노래산 신자들이 체포된 지 며칠 후에 포졸들이 이곳까지 덮쳐서 모든 신자들을 체포하여 안동진영으로 끌고 갔다. 『일성록(日省錄)』의하면, 박사행 등 20명은 즉시 석방되었고 김시우 등 13명은 용감히 신앙을 증거 하였다.왕피리(신암리)갈전교우촌
영양군 수비면 신암리 갈전마을. 1995년에만 해도 이곳은 울진군 서면 갈전리였다. 영양군과 울진군의 경계지역으로 ‘나그네 고개’를 넘으면 바로 수비면 신암리 땅이다. 이 고개는 옛날부터 산을 넘어갈 나그네들이 쉬어 갔다고 해서 ‘나그네 고개’라고 부른다. 이곳에 천주교 신자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문헌상으로 1801년 신유박해 때 충청도 서산지방의 중인(中人)출신으로 머루산으로 피난 온 김강이(여생, 시몬) 형제 가정이 농사를 지으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중 그가 입교시킨 새 신자 몇 사람과 함께 이곳으로 이사를 와서 따로 교우촌을 이루어 삶으로써 신자촌이 형성되었다. 1815년 을해박해 때 그의 집 하인의 밀고로 포졸들에게 붙잡혀 안동진영으로 압송되었다. 그리고는 그해 5월에 그의 아우 김 타대오와 함께 원주감영으로 이송되어 그곳에서 6, 7명의 신자들과 함께 옥중생활을 하다가 감옥에 갇힌 지 8개월 만인 1815년 11월 5일 50세의 일기로 옥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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