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품 정보
상세설명
천주교 신성공소는 1909년 사제관으로 건립한 건물로서, 고쳐서 공소성당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당시 공소성당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내부와 외부 모습을 지금과 같이 개조하였으며, 한식건물의 특성을 그대로 살렸다.
우리나라 초창기 성당 건축으로서 종교사적 가치가 크며, 건축적인 측면에서도 한옥 형태를 비교적 잘 유지한 건축물이다.
현재 공소 미사는 없으며, 순례객 방문만 가능하다.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80호로 지정된 신성공소(정읍 시기동성당 관할, 주임=박종탁 신부)를 찾았다. 공소는 꼬불꼬불한 들길과 산길 끝에 견고한 돌담장으로 둘러 싸여 있다. 입구를 따라 들어가 보니 하얀 성모상이 맞이한다.
전통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신성공소는 1903년 초대 김승연 신부가 부임하여 초가 4칸과 1,200평의 성당부지를 매입했다. 2대 프랑스의 맹 미알롱 신부가 부임하여 1909년부터 기와 굽는 공장을 설치하여 2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전통한옥 양식의 여덟 칸의 성당, 네 칸의 사제관, 여섯 칸의 사랑채를 건축하였다. 현재는 당시 성당 건물은 1936년 매각되어 없어지고 사제관 건물을 성당으로 이용하고 있다.
본래 사제관 모습은 평면이나 외관이 많이 개조되어 정면 4칸, 측면 3칸의 한식 목조 구조 팔각지붕에 기와를 얹은 건물이며, 지금의 건물은 잡석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사각기둥을 세워 정면 가운데 2개의 평주는 두리기둥을 사용했다. 출입문은 삼면에 내고 창호는 유리 미세기창이나, 일부 창은 안쪽에 유리 미닫이창을 달고 밖으로는 나무로 만든 루버창을 시설하여 빛을 조절하였다. 내부는 장마루가 깔려 있으며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서까래가 노출되어 목조구조의 특성을 살려 1903년에 건축된 우리나라 초창기 한옥 형태 건물로 종교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2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사제관 왼쪽에 있는 회합실은 사랑채 역할과 동시에 외지 교우의 숙소 역할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6.25 전쟁 때에는 이곳이 인민군 치안대로 사용되어 폭격을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제관 아래쪽에는 움푹 파인 곳이 있는데, 임춘남 베드로 형제(현 공소회장)의 증언에 따르면 “음식물을 보관하는 냉장고 역할을 했던 곳”이라고 하였으며, “병인박해 때 이곳으로 오신 할아버지 때부터 3대째 이곳에 살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를 통해 당시 신자들의 생활양식까지 생생하게 전달되는 듯했다. 또한, 신성공소를 빙 둘러싸고 있는 견고한 담장은 전남 담양의 교우들이 자신들이 먹을 식량을 갖고 와서 직접 쌓은 것이다. 조선시대에 천주교를 탄압하자, 신자들은 관군의 기습에 대항하여 담장을 만든 것이라고 한다. 100년이 훌쩍 넘은 세월을 처음 모습 그대로 간직한 담장을 보며, 선조들의 깊은 신앙의 뿌리를 느낄 수 있었다.
공소 곳곳에서 옛 신자들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 만큼, 이곳 신성공소는 역사가 깊다. “신성마을의 순교성인 황석두 루카(1813~1866년), 다블뤼 주교와 위앵 신부, 오 메트로 신부, 장주기 요셉의 순교 사실을 故황 막달레나, 故서 알베르또가 증언하였다.”고 임 베드로 형제가 말했다.(천주교 전주교구사Ⅱ p856 참조)
신성마을에 천주교 교우가 살고 있었던 것은 1866년 병인박해 이전부터이며, 병인박해 이후에 본격적으로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조선시대 당시 병인박해를 피해서 타지의 많은 교우들이 박해가 비교적 적은 전라도 산간지역으로 이주하여 신성마을에 정착했다고 한다. 이렇게 정착한 신자들은 산등성이에 화전을 일구며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였다. 1894년 신성리공소가 설립되었고 1903년에는 신성리본당으로 승격되었다. 교우촌이 형성되고 본당이 설립되기까지 30여 년의 기간 동안 신자들이 겪었을 어려움이 느껴진다. 당시 신성리본당은 교구 최초로 본당 월보를 발간하고 청년회를 창립하여 활성화하는 등 활발한 모습을 보였다. 신자수도 100여 명이 넘었다. 1928년에 들어 본당을 신성리에서 읍내로 이전하고 그곳이 현재 정읍 시기동성당이다.
현재 공소의 신자 12가구 38명의 신자들은 대부분 연로하여 한적한 모습을 보인다. 공소에는 미사가 없어 주일에는 차량운행을 한다.
박종탁 신부는 “숨겨진 보석과 같은 공소들이 신자들에게 많이 알려져 자연 안에서 하느님을 찾아 평화를 얻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한국 천주교회와 함께 긴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신성공소를 보며, 옛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간접적으로 접해볼 수 있었다. 그분들의 신앙을 본받아, 현세대의 우리들도 하느님께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취재 : 이진주 기자
-
새소식
-
변경/수정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