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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굽이굽이를 하느님과 함께 걸어온 한교공소
한교공소를 찾아갔던 날, 미사가 시작되기 꽤 한참 전이었는데도 공소 사랑방에는 이미 자매님들 대여섯 분이 앉아서 담소를 나누며 뭔가를 열심히 준비하고 계셨다. 인사를 드리고 옆에 앉았다. 예전에는 공소미사 날이면 다들 나와 맛난 것도 만들어먹고 했는데 이제는 사람도 없고 다들 나이가 들어서 뭘 하기도 힘들다고 하시면서, 신부님이 오시는데 미사만 드리고 보내드리기도 섭섭하고 해서 신부님이 좋아하시는 삼겹살과 직접 농사짓는 과일과 야채 몇 가지 놓고 먹는다고 쑥쓰러워하신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자리에 계시던 자매님들 연세를 물으니 제일 큰언니 이순자 세실리아 자매(82세)부터 시작해서 막내도 어느새 70세가 되었다고 한다. 최동주(도미니코, 전임 공소회장)형제가 살아 계실 때만 해도 나름대로 활기 있던 공소였는데 이제는 노인들만 남았다고 속상해하신다.
한교공소는 1920년경 화산 나바위성당의 신자였던 교우 몇 가구가 정착하여 지내다가 1947년 공소를 설립하고 이경원 회장의 가정집을 공소로 사용하였다. 한국전쟁 직후 여러분의 도움으로 거처를 마련하기도 하였지만 제대로 된 건물을 짓지 못하고 있다가 우여곡절 끝에 제4대 공소회장인 김 발도로메오 형제가 주축이 되고 한교공소 주위의 공소신자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었고 낮에는 논밭에서 일하고, 밤에는 성당의 돌을 하나하나 직접 쌓아 현재의 공소성당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설립당시 시기동성당 관할이었던 한교공소는 1985년 1월 연지동성당이 신설되어 신평, 노송공소와 함께 연지동성당 관할 공소가 되었다.
이태신 신부(연지동성당 주임)는 공소 신자들에게 “워낙 열심히 신앙생활도 하시고 공소에 대한 애정도 많으셔서 잘 가꾸시니 특별히 드릴 말씀은 없지만, 어디 공소나 마찬가지로 여기도 연세는 많아지시는데 새로운 사람은 오지 않고 계속 돌아가시고 늙어 가시니까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니 공소를 잘 유지해서 어르신들이 편안하고 건강하게 신앙생활을 하실 수 있는 공소가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당부하셨다.
현 공소회장 허경렬(이시도르) 형제의 걱정도 마찬가지였다. 한교공소 회장은 공소에서 가장 젊으신데 올해로 65세이다. 객지 생활을 하시다가 이제 귀농 8년차이시고, 귀농 후 이곳에 터전을 잡으시면서 세례를 받으셨다. 회장님 표현을 빌리자면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이지만, 신앙심 두터운 어르신들이 잘 돌봐주셔서 공소를 이끌어 가고 계시다고 한다. 그러나 젊은 사람은 없고, 새로 들어오는 신자도 거의 없는데다가 그나마 자리를 지키시던 분들께서 자꾸 노쇠해지고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시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긴 한교공소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교구 내에 어느 공소나 고령화의 문제는 심각하다. 그러나 건축물의 의미는 그 외형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공간이 가지고 있는 역사와 기억이 가지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한교공소 안에는 하느님과 함께 희로애락을 겪으며 인생의 굽이굽이를 걸으셨던 신자분들의 기억이 녹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공소를 찾는 누구에게든 찾아갈 것이다. 찾아가 하느님께 한 발짝 다가서게 하는 힘이 되고 용기가 될 것이다. 그러니 이제와 열 명도 안 되는 신자들이 모여 한 달에 한번 미사를 봉헌한다고 해서 우리가 공소를 잊어버릴 수는 없는 이유이면서 경제적인 것이 최고의 가치인양 여겨지는 시대에 우리가 공소를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글 : 김동옥 기자(교구 기자단), 사진 : 김창식, 원금식(교구 가톨릭사진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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