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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 되자 미군이 진해에 주둔하기 시작하였고 군종신부도 있었다. 군종소속 드레그 신부는 경화공소에서 미사를 봉헌하면서 한국인 신자들에게도 관심을 가졌다. 신자들은 드레그 신부와 협의하여 현재의 성당부지에 있던 안국사라는 일본 절을 인수하기로 하였다.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당시 경찰청장인 박명제와 해군 중위로 있던 최병해(마르코)의 도움으로 무사히 인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추가로 지금의 유치원 건물이 있던 자리에 있었던 금융조합 건물과 함께 인근의 집들도 매입하였다. 그리고 1946년 3월 당시 대구교구장이었던 주재용 신부는 당시 신자수 150명 정도였던 진해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키고 김경우(알렉시오) 신부를 초대 주임신부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당시 전국적으로 콜레라가 번지던 시기였기 때문에 김 신부는 3월에 임명을 받고도 곧바로 부임하지 못하고 정식 부임은 4월 10일에 이루어졌다. 이렇게 하여 본당이 설립되었고 김 신부는 안국사 내에 살고 있던 난민들을 이주시키면서 본당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가기 시작하였다. 이후 1957년 제4대 장병화 신부 재임 시에 당시 진해에서 군종신부로 사목하고 있던 김창석(타데오) 신부의 후원과 본당 내 모든 신자들의 정성어린 헌신으로 안국사 절을 헐어내고 지금의 성전을 신축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제5대 김충무(클레멘스) 신부 시기에 성전 봉헌식이 이루어졌고, 1965년 12월 제8대 정삼규 신부 시기에 경화동본당이 분리되어 설립되면서 진해본당은 현재의 동명을 따라 중앙동성당으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른다.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
주보 : 예수 성심
신자수 : 4,069
중앙동성당 무료급식소 만나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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