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慶州 感恩寺址
감은사는 동해안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사찰로 지금은 3층석탑 2기와 금당 및 강당 등 건물터만 남아있다. 신라 문무왕은 삼국을 통일한 후 부처의 힘을 빌어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이곳에 절을 세웠다. 절이 다 지어지기 전에 왕이 죽자, 그 뜻을 이어받아 아들인 신문왕이 682년에 완성하였다. 문무왕은 “내가 죽으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니 화장하여 동해에 장사지낼 것”을 유언하였는데, 그 뜻을 받들어 장사한 곳이 절 부근의 대왕암이며, 그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절 이름을 감은사(感恩寺)라 하였다고 전한다. 발굴조사를 통하여 강당·금당·중문이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고, 금당 앞에는 동·서쪽에 두 탑을 대칭적으로 세웠음을 밝혔다. 이 건물들은 모두 회랑으로 둘러져 있는데, 이러한 배치는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금당의 지하에는 배수시설이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죽은 문무왕이 바다용이 되어 이 시설을 통해 왕래하였다고 전해진다. 금당 앞의 탑 2기는 우리나라의 석탑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석탑의 모범이 되고 있다.
감은사는 황룡사, 사천왕사와 함께 나라를 보호하는 호국사찰로 알려져 있으며, 언제 절이 무너졌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종목 : 사적 제0호
수량/면적 : 28,846㎡
지정(등록)일 : 1963년 01월 21일
시대 : 통일신라 신문왕
소유자 : 경주시 등
관리자 : 경주시
감은사는 문무대왕릉과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통일신라시대의 사찰로, 건물은 모두 허물어지고 현재는 동서3층석탑 2기와 금당 및 강당 등 건물터만 남아있다. 신라 문무왕은 삼국을 통일한 후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이곳에 절을 세웠다. 절이 다 지어지기 전에 왕이 죽자, 그 뜻을 이어받아 아들인 신문왕이 682년에 완성하였다. 감은사의 금당터에는 독특한 구조가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문무왕은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며 화장하여 동해에 장사지내라고 유언했다. 해룡이 된 문무왕이 언제든 감은사를 드나들 수 있도록 금당 아래에 지하 공간을 만들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뒷받침하는 지하 석조유구를 확인할 수 있다. 발굴조사를 통하여 강당·금당·중문이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고, 금당 앞에는 동·서쪽에 두 탑을 대칭적으로 세웠음을 확인하였다. 이 건물들은 모두 회랑으로 둘러져 있는데, 이러한 배치는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금당 앞의 탑 2기, 감은사지 동서삼층석탑은 우리나라의 석탑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2단의 기단 위에 3층 몸돌을 올린 모습이다. 서로 같은 규모와 양식을 하고 있으며, 옛신라의 1탑 중심에서 삼국통일 직후 쌍탑가람으로 가는 최초의 배치를 보이고 있다. 또 이 탑의 특징은,각 부분들이 하나의 통돌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개의 부분석재로 조립되었다는 것이다. 탑을 세운 시기는 신문왕 2년(682)으로, 1960년 탑을 해체 수리할 때 서쪽탑 3층 몸돌에서 금동 사리기(보물 제366-1호)와 금동 사리외함(보물 제366-2호)이 발견되었다.
관람료 : 무료
문화관광해설시간 : 10:10-16:30 (성수기 17:00까지)
주차정보 : 감은사지동서삼층석탑 주차장(용당리 52-3, 무료)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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