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리산성(화개산성)은 교동면 고구리 산145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화개산은 산세가 우뚝 솟아 마치 뚜껑을 활짝 벌려 놓은 것과 같다 하여 화개라는 명칭이 붙었다. 교동도에서 가장 높은 고지로서 사방이 완전히 조망되는 관측상 매우 유리한 고지이다. 이 산성은 전체 둘레가 2168m에 이르는 규모가 큰 석성이며, 내성과 외성의 2중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내성은 그 둘레가 1013m로서 화개산의 정상부를 감싸고 있는데, 이곳은 절벽을 자연 성채로 활용하고 있으며, 내성의 일부를 북쪽으로 길게 빼어 긴 용도를 형성하고 있는 것 등이 특징이다. 외성은 전체 둘레가 1155m 정도이며, 외성의 석축은 대부분 무너져 잡석만이 성벽 선을 따라 흩어져 있다.
외성의 성벽이 이처럼 많이 붕괴된 것은 1591년(선조 24)에 지현 이여양이 외성을 철거하여 읍성을 축조하는 데 사용하였고, 또 교동이 수군의 중심지로서 부각되었던 까닭에 육상의 산성은 그 규모에 비하여 전략적으로 크게 중요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737년에 산성을 개축하여 통어영의 신지(信地)로 삼았다는 기사로 미루어 볼 때, 화개산성은 적의 침입시 방어를 위하여 사전에 준비된 병력 집결지였으며, 해상에서 적을 격파하지 못하였을 경우를 대비한 육상 예비 진지의 역할도 겸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산성이 언제 처음 축조되었는가를 알려 주는 기록은 없고 증개축에 관한 기사만이 전해지고 있다. 이에 따르면 1555년(명종 10)에 왜구의 침입을 당하여 지현 최제운이 증축하고 성내에 군량고를 두었으며, 1591년(선조 24)에는 지현 이여양이 외성을 철거하여 읍성을 축조하는 데 사용하였고, 1737년에 다시 개축하고 군창을 두었다.
화개산성은 축성 재료와 규모의 차이가 나타나기는 하지만 문헌기록을 종합해 볼 때 꽤 규모가 큰 산성이었던 듯하다. ≪세종실록≫ 지리지에서는 “석성으로서 둘레는 1565보이며 그 내부에 연못과 샘이 각각 1개소씩 있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지리지들에서는 석축의 둘레가 3543척, 높이는 18척인 산성으로 표기하고 있다. 한편, ≪전국유적총람≫은 산성의 둘레를 2km로 표시하고 있어서39) 육군박물관의 실측 결과인 2168m와 가장 유사하다.
강화군 문화재 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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