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교는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 백성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해서 국가에서 세운 지방교육기관이다.
고려시대 과거제의 실시와 학교제도의 정비 과정에서 설치되기 시작한 향교는 조선시대 유교 이념의 보급과 중앙집권체제의 정비과정에서 전국적으로 확대 설치되었다.
교육기관이자 교화의 중심지로 시작된 향교는 조선후기 신분제의 변동과 향촌사회의 변화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향촌 사회 권력 변동의 중심에서 신분상승과 부역을 회피하는 통로로, 양반신분 유지의 수단으로 기능하는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교동향교는 고려 인종 5년(1127)에 화개산 북쪽에 지었으나, 조선 영조 17년(1741)에 조호신이 현재의 위치로 옮겼으며 1966년에 수리하였다.
고려 충렬왕 12년(1286)에 안향이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공자상을 들여와 모셨다고 전하며, 이후 지방의 각 군현에 성현의 위패를 모시는 문묘를 설치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고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올리고 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여러 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교육공간인 명륜당과 동재·서재가 있고, 제사공간을 형성하는 대성전과 동무·서무가 있다.
이외에도 내삼문·외삼문과 제기고 등이 있다.
[참고문헌]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교동향교지』, 교동향교, 2012. 인천시립박물관, 『교동향교소장자료조사보고』, 인천시립박물관 조사보고 제16집, 인천시립박물관, 2007 강화군사편찬위원회,『신편 강화사』, 강화군, 2003. 한국정신문화연구원,『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웅진출판, 1997. 문화재청 홈페이지
유형문화 제28호
주요시설 : 대성전, 명륜당, 동무, 서무, 동재 서재, 제기고, 내삼문, 외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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