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시 주전론을 주장하던 삼학사 중 한사람인 홍익한(1586-1637)의 옛 집터이다.
선생의 자는 백승, 호는 화포, 운옹, 본관은 남양이며 진사 이성의 아들이다.
이정귀의 문인으로 인조 2년(1624) 정시 문과에 장원한 이후 사서, 장령이 되었으며 인조 14년(1636)청나라의 사신이 모욕적인 조건을 내걸자 참사를 청했으며 병자호란시에는 주전론을 주장 하였다.
화의가 성립된 후 평양부 서윤을 지냈으나 오달재, 윤집과 함께 청나라에 잡혀가서 피살 되었다.
후에 영의정에 추증되고 시호는 충정이다.
저서로는 「화포집」 「북행록」 「서정록」 등이 전한다.
선생이 살던 택지에 세워져 있던 비는 1963년에 파손되어 자연석의 대석만이 남아있다
강화군향토유적 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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