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문화재자료 8호
조선 제25대 왕인 철종(재위 1849∼1863)의 외숙인 염보길(廉輔吉)이 살던 집이다.
1853년(철종 4)에 강화유수 정기세(鄭基世)에게 명하여 지은 이 건물은 원래 안채와 사랑채를 좌우로 두고 H자형 배치를 취하고 있었으나, 행랑채 일부가 헐려 지금은 ㄷ자 모양의 몸채만 남아 있다.
사랑채와 안채가 一자형으로 연결되어 있고 안채와 사랑채의 공간을 작은 담장으로 간단히 분리하였다.
당시 일반 사대부 집의 웅장한 규모와는 다르게 규모는 작으나 예스럽고 우아한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건물로 후원에는 염씨 집안의 묘가 있다.
철종은 정조의 아우인 은언군(恩彦君)의 손자이며, 전계대원군(全溪大院君)의 아들로 어머니는 용성부대부인(龍城府大夫人) 염씨(廉氏)이다.
1849년 헌종이 후사가 없이 죽자 대왕대비 순원왕후(純元王后)의 명으로 19세의 나이에 왕위를 계승하였다.
[참고문헌] 강화군사편찬위원회,『신편 강화사』, 강화군, 2003.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웅진출판, 1997. 문화재청 홈페이지
철종외가묘
강화군 향토유적 7호
철종외가 묘는 철종외가에서 좌측으로 약 500m 정도 떨어진 길 바로 옆에 있다. 묘역에는 염성화(廉星華)·염덕석(廉德碩)·염상임(廉尙任)의 묘역이 있다.
철종 외가는 1859년(철종 10)에 강화유수 조충식(趙忠植)이 왕실의 위신을 세운다는 의미에서 철종 외숙 3인의 묘역을 정화하고 비석을 세웠다.
이에 철종의 외가 5대의 벼슬을 추증하고, 냉정리에 전답 10여 정보를 하사하였다고 한다.
정면에서 보았을 때 제일 우측에 성화의 묘역이 있고, 가운데 덕석, 좌측에 상임의 묘역이 있고 묘역은 전체적으로 이중활개를 하였다.
묘역의 형태상을 보면 먼저 성화의 묘역을 조성한 뒷편 그 좌측의 빈 공간에 덕석과 상임의 묘역을 정비한 것으로 보인다.
즉, 계체석이 일자의 형태를 하지 않고 ‘ㄱ’자나 ‘ㄴ’자 형태로 연이어 있다.
활개 역시 성화의 묘역에서 연이은 흔적이 보인다.
3기 모두 공통적으로 묘표 음기에 ‘용담‘이란 글씨가 움푹하게 파져서 새로 새겨 놓은 흔적이 보인다.
그것은 파평 염씨가 용담 염씨를 가칭하여 철종의 외가라고 속이기 위하여 글씨를 ‘파령’이라고 새긴 것을 새로 정비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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