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보사는 신라 문무왕 13년(서기 673)에 의상대사가 창건 하였다.
보물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지보사라 명했다 하나, 지금은 통일 신라시대 때 축소된 3층 석탑과 법당에 계신 삼존불만 유일하다. 신라시대 청동향로와 많은 대중이 사용했던 가마솥, 아무리 써도 닳지 않는 맷돌등 많은 보물은 임진왜란당시 소실되었다고 전해지며 선방산 어디에선가 오색흙이 있어서 이 흙을 단청의 안료로 썼다한다.
1980년 보물 제 682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은 2층 기단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신라양식이며, 기단부에는 장엄조각이 가득 채워진 높이 4.2m의 화강암 석탑이다. 확실치는 않지만 무염당으로 쓰인 부도가 한기 있는데, 신라시대 무염선사의 부도사 아닌지 알아보고 있고, 1999년 대웅전 해체당시 나온 상량문에는 지보사의 '지(持)'가 '땅(地)'로 쓰여있어 의상대사가 창건한 이 터 자체가 보물이 아닌가 한다.
지금은 대웅전도 말끔히 단장되어 비로소 사격을 갖춘 고찰로서 면모를 갖춘듯 하다.
성보문화제
지보사 삼층석탑 ( 持寶寺三層石塔 )[보물 제682호]
보물 제682호. 높이 4.2m. 기단은 균열되고 지리석(地履石) 1부가 없어졌으며 1층 옥개석과 2층 옥개석 일부가 파손되었으나, 나머지는 비교적 양호하다. 이중기단 위에 3층을 올린 형식으로 상하기단 면석에 팔부신중(八部神衆)과 12지상(十二支像)이 조각되어 있다. 상층기단 갑석과 1층 옥신 사이의 별석에는 연화문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장식성이 가미되었다. 하층기단 면석에는 2개의 우주, 1개의 탱주를 새기고 그 사이에 12지상을 양각하였으나 마멸이 심하다. 3층기단 면석에도 2개의 우주, 1개의 탱주 사이에 팔부신중을 정교하게 양각하였다. 옥신은 우주를 모각하고 1층 옥신면석에는 감실(龕室)을 새겼다. 옥개석받침은 4단, 괴임은 2단으로 구성되었고, 상륜에는 사각형 노반(露盤)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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