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굴사는 신문왕 10년(690)에 창건되었다. 화광당 한옥희대사가 주석할 때 옥천암, 천성암, 청룡암 등 산내외 12군데 암자가 있었다. 조선조 중기만 하더라도 500동의 건물과 12암자, 8대의 물래방아를 갖춘 큰 사찰이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당시 왜구들에 의해 법당과 요사가 불타버린 뒤 여러차례 중창 불사를 펼쳤으나 중수 관계는 잘 아려지지 않고 있다. 거기다 영조 12년(1736) 병진 대홍수로 불굴사의 사찰이 거의 대파되었고
삼층석탑과 법당내 약사여래불만이 남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 불굴사는 송광사에서 온 노스님이 중건하였다고 전해진다. 불굴사는 일명 '팔굴사'라 불리기도 하였다. 절 위의 암벽에 신비스러운 석굴이 있다. 이 석굴의 원효대사가 무애(無碍) 득도한 석굴이라 해서 원효암(元曉岩), 또는 불암(佛庵) 이라 불린다. 이 석굴은 또한 김유신 장군의 삼국통일 성취 기도처로도 알려져 있다.
신라 성현들의 영험한 기도처로 알려진 석굴 앞에 독성전을 짓고 독성전 안에 부처님을 모셔 두자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 적멸보궁, 약사보전,독성전, 산신각, 요사채가 있다. 특히 적멸보궁 앞의 삼층석탑은 보물 제 429호로 지정되어 있다.
추천0 비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