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사 대장전 > 경상북도 Gyeongsangbuk-do, 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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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각]  용문사 대장전

054-655-1011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용문사길 285-30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내지리 391 용문사

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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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전은 용문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각이다. 용문사의 주불전인 보광명전과 나란히 서 있는 대장전은 경전을 봉인하는 전각으로, 안에 안치된 2좌의 윤장대로 더욱 유명하다. 대장전은 초창부터 중창까지 기록이 잘 남아있다. 이 건물의 이력을 알려주는 기록으로는 <중수 용문사기>(1185)와 「속용문사적기」(1688), <예천용문산창기사대장전중수상량문>(1767, 이하 <중수상량문>) 등이 있다. 이중 <중수상량문>은 기록이 현존하지 않고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간행한『한국의 고건축』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중수용문사기>를 보면, 1173년에 2좌 윤장대를 안치할 3칸까지 건물을 지었다고 하나, 현 건물의 모습은 초창 당시의 건물이 아니고 조선시대에 중수가 거듭되어 새롭게 지어진 건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1767년 대장전 중수 때 적은 상량문에는 1173년의 초창뿐만 아니라 1467년, 1534년, 1597년, 1665년의 중수 연대가 순차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중 1665년 중수 기록을 「속용문사적기」에서는 1670년으로 적고 있어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옮기는 과정에서 생긴 착오라기 보다 1665년과 1670년에 거듭된 보수의 기록으로 추정된다. 「속용문사적기」에서 당시 대장전 수리 내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와 같은 표현은 적묵당의 '構' 범종루의 '建', 광명전의 '立', 지장전의 '作', 응향각의 '成', 삼강당의 '設', 만월당의 '起' 등 과는 엄연히 다른 표현으로 건물 전체의 중수가 아니라 부분적인 수리를 의미한다. 두 기록에 무게를 둔다면, 1665년에 대대적인중수를 하고 나서 1670년에 기와의 이완으로 빗물이 들어가서 서까래를 교체하고 기와를 고르는 수준의 공사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까지 대장전은 「속용문사적기」의 수리 기록에 근거해 정교하고 수준 높은 치목과 장엄, 그리고 내부에 봉안된 아미타삼존불과 목각탱의 조성시기인 1684년과 연결해 17세기 건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세부 부재를 살펴보면, 공포의 쇠서가 유연하게 올라가기 시작하고, 공포를 비롯해 건물의 내·외부에 연꽃의 장식요소가 강조되었으며, 측면의 칸수와 고주의 처리가 후대에 주로 쓰이는 수법이라는 점에서 18세기에 조성되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본 아미타삼존불과 목각탱이 1683년에 세워진 금당에 봉안하기 위해 제작되었다는 사실이 새로 밝혀져,

불상과 연계한 조성시기 추정은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2001~2004년도 해체수리과정에서 시도된 연륜연대조사방법에 의하면, 19세기에도 보수가 있었다. 또한 기단 공사를 위한 간이시굴조사 중 현 기단 속에서 자연석으로 쌓은 기단이 노출되었는데, 창건당시의 대장전 유구일 가능성이 높다.
대장전은 윤장대와 건축적 수법 외에도 건물 외·내부의 용과 물고기 장식이 눈길을 끈다. 용과 물고기는 물과 관련된 상징물로, 이는 "일찍이 서역의 구담씨가 팔만대장경 전장을 용궁에 안치하였는데 이로 인해 대장전이 세워졌다."는 <중수상량문> 내용과 상통한다.
건물의 현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전형적인 다포계 맛배집으로 처마는 겹처마이다. 측면의 칸수도 2칸으로 계획된 것으로 보면, 1767년 중수시 완성된 형태로 보인다. 공포는 내·외로 2출목이고 삼분변작에 가까운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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