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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진각종 大韓佛敎眞覺宗
진각종은 진각성존 회당대종사가 이 땅의 풍토성(風土性)과 혈지성(血智性)에 맞는 전통종교인 불교를 이 시대 대중들의 근기에 맞도록 새롭게 한 밀교중흥 종단이다.
진리의 당체이신 법신 비로자나부처님의 밀법(密法)은 금강살타보살(金剛薩陀菩薩)에게 전해져 용맹보살(勇猛菩薩)에게 이어졌으며, 그 이후 밀법은 인도 전역에 퍼져 갔고 티벳을 넘어 중국과 몽고로 전해지면서 신라도 밀법의 햇살을 받게 되었다. 이는 밀교 조사들의 몸을 아끼지 않는 전법(傳法)과 법을 구하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였으며, 중생을 부처의 세계로 인도하고자 하는 대자비의 발로였다.
선무외삼장(善無畏三藏)과 금강지삼장(金剛智三藏)에 의해 밀교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해지자, 일행선사(一行禪師)와 불공삼장(不空三藏) 그리고 혜과화상(惠果和尙)에 의해 중국의 밀교는 당밀시대(唐密時代)라고 하는 화려한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신라의 명랑(明朗)은 선덕여왕 때 2회에 걸쳐 문두루법(文豆婁法)을 행하여 당나라 군사를 물리친 기록이「삼국유사」에 전하며, 그와 함께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창건하고 신인종(神印宗)이라는 밀교종을 탄생시켰다. 그의 법은 안혜(安惠), 낭융(狼融) 등으로 이어져 김유신 등과 함께 원원사(遠源寺)를 세운 기록이 있다. 그리고 혜통(惠通)은 입당하여 밀법을 수용하고 신라에 귀국하여 신주행법(神呪行法)을 행하며 총지종(總持宗)을 창종하였다. 당에 유학하여 밀법을 전수하고 신라에 귀국하여 밀교를 전파한 승려로는 의림(義林), 현초(玄超), 불가사의(不可思議), 혜일(惠日) 등이 있다. 그 가운데 혜일은 당나라에 건너가 장안의 동탑원(東塔院)에서 밀법을 융성시키고 있던 혜과화상의 문하에서 체계적인 밀교를 배웠으며,『대일경』,『금강정경』,『소실지경』의 삼부비법(三部秘法)과 제존유가(諸尊瑜伽)를 전수 받아 신라로 돌아와 밀법을 펼쳤다.
고려시대에는 신인종의 밀승인 광학(廣學)과 대연(大緣)이 태조의 건국과 더불어 해적의 내습을 문두루비법을 통하여 물리쳤는데, 이러한 인연으로 936년(태조 9년)에는 현성사(現聖寺)가 세워져 이 도량을 중심으로 각 종의 법회불사가 행해졌다. 『조선왕조실록』에 신인종의 근본도량인 현성사와 총지종의 사찰인 총지사에 사신을 보내 부처님께 재를 올려 천변(天變)을 제거했다는 기록을 보아 조선 초기까지는 두 밀교종파가 각각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1406년(태종 6년) 불교의 11종파가 7종파로 통합되면서 총지종은 남산종(南山宗)과 합하여 총남종(摠南宗)이 되고, 신인종과 중도종(中道宗)이 합하여 중신종(中神宗)이 되었다. 또 1424년(세종 6년)에는 7종이 선교양종(禪敎兩宗)으로 폐합되면서 총남종은 조계종(曹溪宗), 천태종(天台宗)과 함께 선종(禪宗)으로, 중신종은 화엄종(華嚴宗), 자은종(慈恩宗)과 함께 교종(敎宗)이 되었다. 이처럼 밀교는 선종과 교종으로 각각 나누어 통합되었다. 그 이후 밀교는 국가의 소재도량(消災道場), 문두루도량(文豆婁道場), 공작재(孔雀齋) 등의 진호국가불사를 위하거나 세간적인 실지(悉地)를 위한 방편으로 계속 이어졌다. 또한 승가에서는『천수경』독송 등 의례는 대개 밀교의례였으며, 수행에 있어서도 선밀쌍수(禪密雙修)적 경향이 강하였다.
조선의 억불정책과 일제의 암울한 시대를 지나 근대화의 물결 속에 불교는 또한 스스로의 혁신을 통해 거듭나고자 통합불교적인 조선의 불교는 드디어 종파불교(宗派佛敎)로 방향을 틀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시점에서 진각성존 회당대종사는 뚜렷한 종지(宗旨)와 종풍(宗風)을 내세워 교화하는 것이 오늘날 복잡 다양한 이 사회에 알맞은 방편임을 관찰하시고 밀교종단인 '대한불교진각종'을 창종하게 되었던 것이다.
진각성존 회당대종사는 육자대명왕진언 '옴마니반메훔'을 통하여 비로자나부처님으로부터 금강살타보살, 용맹보살을 거쳐 중국으로 몽고로 한국으로 전해졌던 정통밀교의 법맥을 심인(心印)으로 전수하여 깨치고, 그 자내증(自內證)한 경지에서 법계를 살펴보고는 이 시대에 알맞은 방편을 제시하였다. 그리하여 한국의 불교는 이원자주상대원리(二元自主相對原理)에 입각한 불이적(不二的) 불교정신(佛敎情神)이어야 함을 통찰하고, 유상방편(有相方便)에 대하여 무상방편(無相方便)을, 계율방편(戒律方便)에 대하여 진리각법(眞理覺法)을, 삼보사불(三寶事佛)에 대하여 삼신이불(三身理佛)을, 현교(顯敎)에 대해서 밀교(密敎)를 세우게 된 것이다. 이러한 두 상대가 다시 한국사회에서 조화를 이루어 불이적(不二的) 정신으로 승화(昇華)될 때 한국의 불교는 더욱 발전하게 될 것이고, 고해에 허덕이는 중생 제도의 무진서원(無盡誓願)이 이루어질 것임을 꿰뚫어 본 것이다.
대한불교진각종은 진각성존이 육자진언을 통하여 깨친 과정이나, 그 이후에 펼친 교화방편(敎化方便)이 곧 사표(師表)가 된다. 이는 49일 염송에 이어 100일 염송 중에 나타난 모든 허물을 그 자리에서 대참회의 눈물로써 씻어냈으며, 밝게 드러난 심인을 바로 깨치고 곧 자성법신(自性法身)을 깨쳤으며, 이어서 자성법신이 법계법신불(法界法身佛)임을 깨치어 온 우주 법계법신과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는 교화방편을 열어 중생들을 제도하니 그 길은 곧 당신이 깨친 과정을 그대로 보인 것이다. 곧 참회원(懺悔院)을 열고 심인불교(心印佛敎)를 제창하고 진각밀교(眞覺密敎)를 서원하였으니 곧 그것이며, 한국밀교 중흥의 중흥조로서 그 기치를 높였다.
이러한 자취를 사표로 삼아 대한불교진각종은 청정법신 비로자나불로부터 흘러나오는 진리의 당체를 우러르고 육자대명왕진언 '옴마니반메훔'을 수행의 방편으로 삼아 삼밀관행(三密觀行)을 닦아 스스로 지니고 있는 불성(佛性)을 드러내어 즉신성불(卽身成佛)을 이루어 현실 속에서 일체중생을 제도하여 현세를 정화함을 교화이념으로 한다.
대한불교진각종의 신교도들은 법신 비로자나부처님, 금강살타보살, 용맹보살, 진각성존 회당대종사로 이어져 온 밀법을 심인으로 전수 받아 법을 펼치는 정사(正師)님, 전수(傳授)님의 인도하에 용맹정진을 거듭하며, 매 자성일(自性日; 일요일)마다 전국에 펴져있는 금강법계궁(金剛法界宮)인 심인당(心印堂)에서 공식불사를 진행하면서 마음을 닦는 수행을 하고 있다. 스승과 신교도는 한 마음으로 화합하여 육자관행법(六字觀行法)과 육행실천(六行實踐)으로 신심의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고, 복덕과 지혜를 길러 대지혜와 대자비로써 현세정화에 힘써 일체중생을 이익하게 하고 안락하게 하여 자비와 평화가 넘치는 밀엄국토 건설을 서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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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새소식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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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불교진각종 신행단체 및 산하기관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4-16
총금강회
총금강회는 굳은 단결과 신심으로 심인정법의 구현으로 구국제민과 복혜쌍수의 윤원대도를 성취케 하신 종조 회당대종사님의 창교이념을 받들어 진각종의 종지를 봉행하고 정법을 수호 실천하며 삼보를 호지하여 이 나라 불교를 중흥시키 는데 선봉자가 되어 이 역사적 과업과 불자로서의 사명을 다하고자 서원합니다.
총금강회 서울특별시 성북구 하월곡동 22
서울지부 서울특별시 성북구 하월곡동 22
대구지부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 156-1 진각문학회관 6층
부산지부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 2동 841-2
대전지부 대전광역시 중구 선화 1동 238-1
경주지부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99
포항지부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대흥동 664
청년회
청년회는 대한불교 진각종 교리를 신봉하는 청년회원들로 하여금 삼밀관행 및 육행실천을 바탕으로 불자로써의 참된 수련을 쌓는 동시에 수련 활동을 통한 교리연찬과 전국회원들 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나아가 본 종단의 교화사업에 적극 기여함으로써 생활 속에 진리를 구현하여 사회정화를 실현함에 그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전국청년회 서울특별시 성북구 하월곡동 22 선우관
서울청년회 서울특별시 성북구 하월곡동 22 선우관
대구청년회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 3동 584-1
부산청년회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 2동 841-2
대전청년회 대전광역시 중구 선화 1동 238-1
경주청년회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99
포항청년회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대흥동 664
안강청년회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양월 5리 1262-15
서울학생회
회당학회
본 학회는 회원들의 공동체적 연대를 통하여 회당사상과 불교 및 밀교의 교리, 수행, 의식체계에 대하여 조사, 연구, 발표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다음의 사업을 전개한다.
회당학회 서울특별시 성북구 하월곡동 22
회당사상을 체계화하기 위한 연구
밀교연구
불교연구
심포지엄 및 학술발표회 개최
학술지 "회당학보" 발간
학술활동 뒷받침을 위한 재정 확보 및 관리
회당정신의 실천 보급
관련단체와의 교류
이상의 사항에 부대되는 사업 -
- 대한불교진각종 종단연혁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4-16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종교이다.
부처님은 2,600여 년 전 인도의 북동쪽 석가족이 다스리던 조그만 부족국가인 카필라밧투에서 태자로 태어났다.
29세에 출가한 그는 6년만의 수행 끝에 35세가 되던 해 자신이 원하던 깨달음을 얻었다. 부처님을 우리말로 ‘깨달은 사람’ ‘진리에 눈뜬 사람’이라고 하는 뜻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이룬 이후 45년 동안 자신의 진리를 많은 사람에게 전하였다. 그 법은 제자들에 의해 계승되었고 초기불교(初期佛敎), 부파불교(部派佛敎), 대승불교(大乘佛敎)의 시대를 겪으면서 발전하였다.
7C 중엽부터 인도사회에서 인도교로 부흥과 대승불교의 형식화가 만연되자 민중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밀교(密敎)가 등장하였다. 이 때부터 불교의 신앙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비밀의 교의와 의례를 스승이 제자에게 은밀하게 전달하여 간직하는 비밀스러운 신앙을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내용을 중점적으로 전해주는 경전이 바로 대일경(大日經)과 금강정경(金剛頂經)이다. 이 경전들은 이 세상 속 어느 곳이나 항상 부처님이 계신다고 하는 진리의 부처님인 법신불 생각하고 기도한다면 바로 현재의 몸으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을 전해주고 있다.
우리나라에 있어서 밀교는 신라시대부터 전해져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한국불교 신앙에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밀교는 병을 고치고, 외적을 물리치는 등 현세이익적인 신앙관에 두드러졌다.
이와 같은 초기의 단계를 거쳐 법맥이 강조되는 시기에 오면 대일경과 금강정경 등 경전의 전래가 이어지고 종파가 형성되었다. 그 후 극난극복과 민생의 안녕이라고 하는 통치이념과 일치되어 많은 도량이 개설되었다. 여기에 13C 초부터 원나라로부터 전해지기 시작한 티베트의 밀교는 육자진언을 강조하는 육자진언신앙법이 형성되었다.
14C 말에 건국한 조선은 불교를 배척하는 정책으로 일관하였다. 그 결과 고려시대 많은 영향을 미쳤던 밀교는 국가의 인위적인 통합으로 본연의 모습이 상실되어 종지와 종풍이 훼손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후 한국의 밀교는 이름도 없이 전해지다가 진각종의 창종으로 인해 다시 세간에 중흥되었다.
진각성존 회당 손규상(1902-1963) 대종사는 1947년 달성군 성서면 농림촌에서 육자진언(六字眞言)을 통해 불법의 도리를 깨달았다. 대종사는 우리들의 일상적인 현상들이 모두 법신부처님이고 여기에 우리들의 동작 하나하나가 부처님의 동작이라고 생각하고 활동한다면 우리가 직접 부처님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고 설하였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생활이 곧 법신불과 같음을 뜻하는 것으로 법신부처님의 가르침을 직접 전수받을 수 있다는 사상체계이다.
한국의 밀교를 중흥한 진각종의 역사는 첫째 참회원과 심인불교의 시대, 둘째 교법의 정립시대, 셋째 창종정신의 계승시대, 넷째 도약의 시대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참회원과 심인불교의 시대
이 시대는 진각성존 회당 대종사가 대각을 이룬 1947년 5월에서 심인불교건국참회원으로 교명을 정한 1951년 7월에 이르는 시기이다.
1947년 5월 대각을 이룬 대종사는 최초의 교화도량을 경북 영일군 기계면 이송정에 마련하여 진각종의 서막을 열었다. 이때 도량의 명칭을 참회원(懺悔園)이라 하였다. 그 후 1948년 8월 교명이 교화단체 참회원으로 정해졌다가 다시 1951년 심인불교건국참회원(心印佛敎建國懺悔園)으로 하였다.
이와 같이 개종 초기 종단의 방향은 도량의 도심건설과 참회와 실천의 심인불교운동을 전개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이는 지금까지의 한국불교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였다. 기복적인 불교에서 마음을 닦는 깨달음의 불교로 방향을 제시하면서 그 근원이 자신의 참회에 있음을 제시한 것이다.
이런 대종사의 불교관은 새로운 불교관으로 당시 불교계가 처한 현실에 대해 입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한 새불교 운동이었다. 그것은 기존 불교의 장·단점을 긍정적으로 수용한 뒤 그 경계를 넘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불교계의 민주적이고 자유가 보편화된 종교로 진일보 할 수 있다고 보았다.
교법의 정립시대
이 시대는 1951년 7월 이후 진각성존 회당 대종사가 열반한 1963년 10월에 이르는 시기로 종단의 정체성과 사회적 역할이 두드러진 시대였다.
안으로는 1953년 8월 종단의 체제 완성을 위해 대한불교진각종보살회 헌법이 제정되었고, 그 해 12월 대종사의 유법에 따라 종명을 ‘진각종'으로 명명하였다. 여기에 1954년 1월 대한불교진각종보살회 유지재단을 설립하여 법적인 토대가 완성되었다.
밖으로는 1955년 4월 대구에 심인중, 고등학교를 설립하여 육영사업에 힘쓰는 한편 1958년 방콕에서 개최된 제5차 세계불교도 우의회에 참가하는 등 한국불교의 세계화에 힘썼다.
이와 같이 대종사는 종단 초기의 내실을 기하고 밖으로의 활동을 전개하면서 전국적으로 심인당을 설립하고 교화에 전념하다가 1963년 10월 16일 대중들에게 ‘옛날에는 의발(衣鉢)이요 이제는 심인법(心印法)이라'는 법을 부촉하고는 62세로 영원한 법신의 품으로 돌아갔다.
창종정신의 계승시대
이 시대는 1963년 10월 진각성존 회당 대종사 열반 이후 30년이 지난 1993년 10월에 이르는 시기이다. 대종사 열반 후 새로운 집행부를 구성한 종단은 진각성존의 정신을 계승하는 사업을 다각적으로 행하였다.
먼저 종단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사업을 살펴보면 먼저 종단의 근간이 되는 종헌종법이 1964년 3월 26일 제정되었고, 종단의 상징인 금강륜상은 1964년 7월 15일 제정되었다. 그리고 대종사의 유계였던 총인원의 서울 이전도 1966년 1월 지금의 통리원 자리로 옮겨졌다. 이 당시 종단 내의 제도도 많이 보완되었다. 총인원 내에 기로원(耆老院)이 부설된 것은 1969년 5월이다. 이것은 1986년 9월 대구로 신축 이전되었다.
이 시기 심인당 역시 전국적으로 많은 수가 개설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특이한 것은 1990년 11월 미국 L.A에 해외 포교원인 불광심인당을 헌공하여 진각종 국제포교의 서막을 시작하여 진각종의 위상을 높였다.
다음으로 대종사의 유지를 받들어 교육과 사회적 실천면에서도 많은 활동이 행해졌다. 1976년 서울 진선 여자중고등학교의 개교를 시작으로 종단의 스승 교육기관인 강원이 1982년 중앙교육원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진각대학으로 개편하여 1989년 제1회 입학식을 거행되었다. 어린이 교육에 있어서도 획기적인 전환이 이루어진 시기이다. 대종사 때부터 강조해온 어린이 포교의 일환으로 종단 최초인 유치원이 1984년 3월 탑주심인당에서 개원하였다.
이 밖에도 종단 내 학술단체인 회당학회가 1992년 창립되어 대종사의 생애와 사상을 조명하기에 이르렀고, 1993년 3월 종조열반 30주년 기념으로 청정국토가꾸기운동을 전국적으로 거행하여 종조의 정신을 계승하는데 최선을 다하였다.
도약의시대
이 시대는 1993년 10월 진각성존 회당 대종사 열반 30주년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기이다. 대종사 열반 후 30년 동안 내적 성장에 주력한 종단은 이후 교세확장과 함께 진각종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는 데 주력하였다.
내적 성숙에 관한 활동으로는 먼저 1996년 12월 17일 종헌종법이 전면 개정되어 새로운 시대에 맞는 종단의 법령을 마련하였다. 외적으로는 오래된 심인당의 개축과 함께 해외 심인당의 개설도 계속되었다. 1997년 5월 중국 흑룡강성 해동심인당의 헌공과, 1999년 10월 미국 워싱톤에 법광심인당의 개설, 그리고 캐나다 토론토에 성불심인당 개설은 진각종의 세계화에 초석이 되었다.
교육사업도 꾸준히 지속되었다. 1996년 1월 종립대학인 위덕대학교의 헌공불사가 봉행되었고 이어 3월 개교 및 제1회 입학식이 봉행되어 유치원에서 대학에 이르는 교육체계가 이루어졌다.
종단의 사회활동도 비약적으로 확대되었다. 1998년 3월 사회복지법인인 진각복지회가 설립되어 복지시설 수탁운영, 자원봉사센터 및 지부조직의 구축운영 등 초기사업에 성공하여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구현하였다. 그 외에도 종단의 국제포교를 담당하는 국제불교연구소의 북한과의 교류와 2000년 7월 사단법인 비로자나 청소년 협회의 각종 문화사업과 수련사업도 청소년 포교에 발전을 가져왔다.
종단의 교법체계를 위한 학술적 성과도 크게 돋보였다. 교육원을 비롯하여 회당학회 그리고 종립대학의 연결로 회당사상과 밀교에 대한 연구 그리고 법어록의 정리와 진각의범의 정리 등 종조와 교법에 대한 연구가 진척된 시기이다. 이런 연구를 바탕으로 2002년부터 시작한 세계 각국과의 밀교관련 학술연구 및 밀교의식시연법회를 총인원에서 개최하여 종단의 사상적 연원을 탐구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
- 대한불교진각종 진각성존회당대종사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4-16
말법시대末法時代의 성인,
회당悔堂 손규상孫珪祥 대종사大宗師
진각성존(眞覺聖尊) 회당(悔堂) 대종사(大宗師)는 근현대 한국불교계에서 새불교운동을 일으킨 인물 중의 한 분이다. 회당대종사께서는 새불교운동의 터전으로 진각종이라는 불교종단을 세우고 불교정신으로 사회정화운동을 펼치셨다.
진각성존 회당대종사께서 일으킨 새불교운동은 바로 진각밀교운동이다. 진각밀교는 밀교정신을 날줄로 하고, 회당대종사의 자증교설과 직접 체험하고 재해석한 종조정신을 씨줄로 한다. 그 때문에 진각밀교는 전래의 불교형태, 특히 외형적 양식에서 신선한 충격을 줄 만큼 혁신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밀교(韓國密敎)의 중흥조(中興祖)요, 진각종(眞覺宗) 입교개종조(立敎開宗祖)인 회당대종사께서는 1902년 5월 10일 밝아오는 20세기의 여명(黎明)과 함께 동해(東海)의 정토(淨土)인 울릉도에서 법신불(法身佛)의 대 화현(化現)으로 탄생(誕生)하셨다.
출중(出衆)한 용모(容貌)와 지용(知勇)을 겸비(兼備)한 회당대종사께서는 어려서부터 주위의 신망(信望)을 한 몸에 받으며 자랐다. 일찍이 동서고금(東西古今)의 제(諸) 전적(典籍)들을 섭렵(涉獵)하여 10세 때 "마음 하나 천만을 당적하고 흰 바탕에 단청을 그린다(心一當千萬 質白畵丹靑)"라는 성구(聖句)를 지어 장차 성인(聖人)으로서의 진면목(眞面目)을 짐짓 세상에 드러내 보이셨다.
회당대종사께서는 불연(佛緣)이 무르익어 전국(全國)의 명산대찰(名山大刹)과 일본 등지 동방(東方)의 밀교(密敎) 사적(史蹟)들을 두루 살피시고 1946년 가을부터 누겁(累劫)의 인연지(因緣地)인 경상북도 달성군 성서면 농림촌(현재 대구광역시 달서구)에 도량(道場)을 개설하시어 숙야(宿夜)로 정진(精進)하시다가 1947년 5월 16일 마침내 동천(東天)에 솟는 여명을 보시고 심신(心身)이 상연(爽然)함을 느끼시며 육자진언(六字眞言)의 대지(大智)를 얻어 대각(大覺)을 성취(成就)하시었다. 이어 6월 14일 육자심인(六字心印)의 대각(大覺)을 성취한 첫 법문(法門)으로 진각종단(眞覺宗團)의 개종(開宗)을 선포(宣布)하신 후 대구 남산동에 금강도량(金剛道場)인 희락심인당(喜樂心印堂)을 세우시고 서울의 호국성전(護國聖殿) 밀각심인당(密覺心印堂)을 비롯한 전국 방방곡곡(坊坊曲曲)에 심인성전(心印聖殿)을 세우시니 교세(敎勢)는 전화(戰火)에 아랑곳없이 욱일승천(旭日昇天)의 세(勢)로 발전(發展)하였다.
회당대종사께서는 법신불(法身佛)의 대(大) 지덕(知德)과 권지방편(權知方便)으로 새로운 시대(時代)를 다스릴 이원진리(二元眞理)와 심인진리(心印眞理)의 정법(正法) 광명(光明)을 밝히시며, 오직 중생구제(衆生救濟)와 국가진호(國家鎭護)를 위해 진력(盡力)하시다가 문득 세연(世緣)이 다하여 1963년 10월 16일 대구 침산동 불승(佛乘) 도량(道場)에 이르러 "옛날에는 의발(衣鉢)을 전했고 이제는 심인법(心印法)을 전한다."는 열반송(涅槃頌)을 남기시고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드시었다. 세수(世壽) 62세요, 개종(開宗) 17년이었다.
회당대종사께서 심인법(心印法)을 위시한 약불(藥不), 서남(西南)의 비밀(秘密)스런 법(法)을 제자들에게 부촉(咐囑)하시고 법신(法身)의 만다라(曼茶羅) 궁전(宮殿)으로 새 인연(因緣)을 맺으시니 모든 진언행자(眞言行子)와 후학(後學)들은 생활불교(生活佛敎), 밀교중흥(密敎中興), 현세정화(現世淨化), 심인현현(心印顯現)의 창교이념(創敎理念)을 받들어 오늘도 그 높은 법력(法力)과 위덕(威德)을 길이 추존(追尊)하면서 영원(永遠) 무궁(無窮)한 신행(信行)의 귀명처(歸命處)로 따르고 있다. -
- 대한불교진각종 종지, 종요, 종풍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4-16
종지
진각종은 시방삼세에 하나로 계시는 법신 비로자나부처님을 교주(敎主)로 하고 부처와 종조의 정전심인(正傳心印)인 옴마니반메훔[六字心印]을 신행의 본존(本尊)으로 받들어 육자관행(六字觀行)으로 즉신성불(卽身成佛)하고 현세정화(現世淨化)함을 종지(宗旨)로 한다.
종요
진각종은 불법의 심수(心髓)인 밀교정신을 본지로 하고 밀교의 법맥을 심인(心印)으로 전수한 회당대종사의 자증교설(自證敎說)을 종지로 삼아서 교법을 세우고 종문을 열어서 시대에 맞는 교화이념과 방편을 펴는 불교종단이다.
종풍
진각성존 회당 대종사의 무진서원에 귀명하여 육자진언을 신행의 본존으로 받들고 사교이상(事敎二相)을 겸비하여 즉신성불의 바른 길을 여는 밀교의 가르침을 전하며 현세정화를 실천하는 승속동행의 종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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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불교진각종 개종 이념과 배경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4-16
진각종의 개종이념은 밀교중흥, 생활불교, 현세정화, 심인구현이다.
밀교중흥
한반도에 밀교가 전래된 것은 신라 선덕여왕 4(635)년이다. 그후 조선 초기까지 크게 흥황하며 민중의 생활 속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 우리의 문화유산 속에는 이렇게 융성한 밀교문화가 배어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접어들어서 숭유배불정책의 회오리 속에 점차 쇠하게 됐다. 이후 진각성존 회당대종조께서 불교의 흥왕을 위해서는 생활불교, 실천불교인 밀교를 중흥시켜야 한다고 판단하시며 밀교종단으로서의 진각종을 개종하셨다.
생활불교
불교는 자기반성과 자기비판으로 정도를 걸어가게 하는 실제적 가르침이다. 정도는 상구보리(上求普提), 하화중생(下化衆生)으로 형상화되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이 생활화되면 하화중생하는 것이고, 생활자체가 불교가 되는 것이 상구보리이다. 진각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로 이를 구현한다.
현세정화
불교는 원래 이 세간과 떨어진 가르침이 아니므로, 세간이 더러우면 이를 정화하는 것이 그 본지이고, 특히 밀교에서 이에 앞장서야 한다. 진각종은 현세정화를 성불의 바탕으로 삼는다.
심인구현
불심인(佛心印)은 말이나 글로써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심인은 대지혜의 종자이며, 삼매왕(三昧王)이다. 이 심인의 구현없이 <밀교중흥, 생활불교, 현세정화>의 성취 또한 멀 수 밖에 없다.
개종배경
오늘날 인류는 급속한 과학문명의 발달로 물질적 풍요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물질적 풍요 속에서 탐심(貪心), 진심(嗔心), 치심(癡心)의 치성으로 인한 정신적 빈곤현상이 날로 심각해지고 살도음(殺盜淫)의 범죄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인류의 미래가 위협받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이러한 때에는 물질과 정신을 함께 발전시켜야 만족한 생활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역사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진각종은 정신문화를 선도할 방편으로 우주의 보편적 진리이며 인간의 구체적 생활실천법인 불교를 시대에 맞는 새로운 실천불교로 계승 발전시키고자 한다. 그래서 온 우주에 충만하여 법계에 상주불변하는 우주진리[법신불]의 비밀한 경지를 내 마음에서 체험으로 증득하여 즉신성불코자 하는 밀교의 교리를 바탕으로 1947년 6월 14일 개종됐다.
이에 따라 진각종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가진다.
① 산중, 은둔불교에 대해 - 재가중심의 불교
② 형식적 의례중심의 불교에 대해 - 실천 위주의 불교
③ 형식적 계율중심의 불교에 대해 - 깨달음 중심의 불교
④ 불상중심의 장엄불교에 대해 - 무상진리(無相眞理) 중심의 불교
⑤ 내세 극락, 현세 기복불교에 대해 - 현세정화의 불교
⑥ 사찰 안의 불교에 대해 - 시시불공(時時佛供) 처처불공(處處佛供)의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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