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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설명
도봉산 만장봉 동쪽 기슭에 자리한 천축사는 깎아지른 듯 아름다운 만장봉을 배경으로 삼고 있어 풍경이 아름다우며, 맑고 깨끗한 석간수가 유명하고, 백년 묵은 보리수나무가 샘물 위쪽에 있다. 천축사는 서울시 도봉구 만장봉 동쪽 기슭에 자리한 사찰로, 이 절을 천축사(天竺寺)라고 이른 것은 고려 때 인도승려 지공(指空)이 나옹화상(懶翁和尙)에게 이곳의 경관이 천축국의 영축산과 비슷하다고 한데서 유래되었다.
천축사의 연혁은 신라 673년(문무왕 13)에 의상대사가 의상대에서 수도할 때, 제자를 시켜 암자를 짓게 하고, 옥천암(玉泉庵)이라 한 것에서 출발하였으며, 그 뒤 고려 명종 때에 근처 영국사(寧國寺)의 부속암자로 맥을 이었다.
이후 조선시대인 1398년(태조 7)에 태조가 옛날 이 곳에서 백일기도하던 것을 상기하여 절을 중창하고 천축사라는 사액을 내렸다. 근대에는 1911년에 화주 보허축전(寶虛竺典)이 관음ㆍ신중탱을 봉안하고, 1931년에 주지 김용태(金瑢泰)가 천축사로 오르는 길을 확장하였으며, 이후 수많은 신도들이 천축사 도량에 불사하여 1936년에 현재의 모습을 갖춘 가람이 조성되었다.지금의 가람은 주지 용태스님 이후인 1959년에 중수된 것으로, 현재 주지 현공(玄公)스님이 주석하며,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대웅전을 비롯하여 독성각ㆍ산신각을 중수하고 요사채와 공양간을 신축하여 천축사 가람을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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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새소식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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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축사 창건설화 및 연혁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4-17
도봉산을 품어 안은 천사 도량에서 근심은 바람되어 맴돌다 사라진다.
천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 교구로 조계사에 속해 있으며, 북한산국립공원의 도봉산 선인봉 남쪽에 있다. 678년에 의상(義湘 수도하면서 현재의 자리에 옥천암(玉泉庵이라는 암자를 세웠고, 고려 명종 때 영국사(寧國時가 들어섰다. 1398년 조선 태조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렸다 하여 절을 새롭게 고치고 천축사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1474년 왕명으로 중창하였고, 조선 명종 때 문정왕후(文王后가 화류용상(種體을 절에 바치고 불당 안에 부처를 모시는 불좌(座를 만들었다. 그 뒤 여러 번 다시 고쳐 지었으며, 법당 안에는 석가삼존상과 지장보살상을 비롯해 삼세불화 · 지장탱화 · 신중탱화가 모셔 두었다. 대웅전 · 원통전 · 독성각 · 산신각 · 요사채 · 무문관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맑고 깨끗한 석간수가 유명하고 백년 묵은 보리수나무가 샘물 위쪽에 있다.
천축사는 서울의 명산 도봉산 동쪽에 자리한 천년고찰로, 서울의 관음 영험기도도량으로 알려진 유명한 곳이다.
천축사의 지형은 깍아지른 듯한 만장봉(萬峰를 배경으로 소나무 · 단풍나무 · 유목(木) 등이 울창한 수림을 이루고 있어 마치 닭이 계란을 품은 포근한 정경을 연출하며, 계곡을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자연스런 가람은 보는 이로 하여금 눈에 보기 좋은 기도처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천축사로 모르는 길은 서울 시민들이 즐겨 찾는 평탄한 코스로 여름이면 울창한 수풀과 푸르른 수림이 산을 찾는 이들을 반기며, 가을이면 단풍나무들이 절경을 이룬다.
또 겨울이면 서울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설경이 암벽 곳곳에 펼쳐져, 정말 이곳이 지공이 말한 천축국의 영축산을 본딴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
천(天)의 난(蘭若)가 꽃을 피운 영험기도도량, 천축사(天竺寺)
천축사는 서울시 도봉구 만장봉 동쪽 기슭에 자리한 사찰로, 이 절을 천축사( 寺)라고 이름한 것은 고려 때 인도승려 지공(指空) 이 나옹화상(SA)에게 이곳의 경관이 천축국의 영축산과 비슷하다고 한데서 유래되었다.
천축사의 연혁은 신라 677년(문무왕 13에 의상대사가 의상대에서 수도할 때, 제자를 시켜 암자를 짓게 하고, 옥천암(玉泉庵)이라 한 것에서 출발하였으며, 그 뒤 고려 명종 때에 근처 영국사(寧國寺)의 부속암자로 맥을 이었다.
이후 조선시대인 138년(태조 7)에 함흥에서 돌아오던 태조가 옛날 이곳에서 백일기도하던 것을 상기하며 절을 중창하고 천축사라는 사액을 내렸다고 한다. 또 1474년(성종 5)에 성종의 왕명으로 천축사가 중창되었고, 명종 때에는 문정왕후(文定王后가 화류용상을 하사하며 불좌를 만들었다고 한다.
1812년(순조 12)에는 경학(學)스님이 절을 중창하였으며, 1815년(순조 16)에는 신도 김연화( 두락을 절에 희사하며 절의 사세가 넓어졌다. 이후 1986년에는 상공(相公) 김홍근(金根), 판서(判書) 김보근, 참판(參判) 이장호 등이 불량을 희사하여, 19세기 말 천축사는 수많은 신도들에 의해 중수 · 중창되었다. 1853년에 주지 순(順이 칠성탱, 독성탱, 산신탱을 조성하고, 1885년에 화주 성암응부(星應夫)가 민왕후 및 상궁 박씨등의 시주를 얻어 후불탱, 신중탱, 지장탱를 조성하였다. 하지만 현재는 삼신불탱과 신중탱만이 전해진다. 근대에는 1911년에 화주 보허축전 (寶庫 이 관음탱을 봉안하고, 1931년에 주지 김용태(金泰)가 천축사로 모르는 길을 확장하였으며, 이후 수많은 신도들이 천축사 도량에 불사하였으며, 1964년에 무문관을 신축하여 년 수행결사의 장으로 만든 것이 현재의 모습을 갖춘 가람으로 조성되었다. 현공(玄公)스님이 2006년부터 대웅전를 비롯하여 독성각 · 산신각, 요사채를 중수하고, 공양간을 신축하여 옛 천축사 가람을 복원한 것이다.
근래 도봉산의 관음기도도량으로 알려지며, 수많은 신도들이 절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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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축사 비로자나 삼신괘불도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4-17
삼신불을 그린 구성과 약식 등이 19세기 서울, 경기지방 괘불 야식을 잘 계승하고 있으며 금어인 하운당 유경의 독특한 부로하 양식 규명과 19세기 불화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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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축사 비로자나 삼신불도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4-17
19세기 서울 경기 지방의 대표적 화승인 경선당 응석이 주관하고 대선사 하은 예가(1828~1898)가 증명한 불화로 독특한 도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명성황후를 위해 상궁들이 시주하여 제작하였다는 시대적 상황과 역사적 의미도 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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